풀숲의 애벌레와 곤충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작은 생명체들과 눈 맞추는 시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풀 매는 일에 바친다. 시골에 사는 이상 풀 매기는 피할 수 없는 노동이다. 나는 꽃과 채소를 살리기 위해 드센 돌피와 개망초와 쇠뜨기를 뽑는다. 풀을 뽑으려면 무릎을 접고 시선을 낮춰야 한다. 빽빽한 풀숲에 쪼그려 앉아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동안, 내 주위는 작은 생명체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지면을 내달리는 길앞잡이, 윙윙 나는 꽃등에, 짝짓기하는 하늘소, 잎을 갉는 달팽이, 즙을 빠는 진딧물, 바짓자락을 기어오르는 개미들……. 풀 매는 시간은 작은 생명체들과 눈 맞추는 시간이다. 그들의 세계는 낮고 작고 조용해서, 풀밭에서 일하는 나의 하염없는 시간과 말없이 뒤섞인다.

 

흙 속에 숨은 왕구슬, 뭘까?
흙 속에 숨은 왕구슬, 뭘까?

호미질한 자리에 희고 매끈한 왕구슬이 보인다. 살살 파헤쳐 꺼내 보니 내 엄지보다 통통한 장수풍뎅이 애벌레다. 호미로 찍지 않아 다행이구나. 주변을 살살 긁으니 또 한 마리가 도르르 굴러 나온다. 더 있을까? 범위를 넓혀 조심조심 파헤치니 이번에는 어린 두꺼비가 흙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서늘한 흙에서 낮잠 자다 깬 듯 얼떨떨한 표정이다. “여긴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 곧 삽질할 자리거든.” 정신 차린 두꺼비가 어기적어기적 흙 위로 멀어진다.

 

어린 두꺼비. 장수풍뎅이 애벌레보다 작다.
어린 두꺼비. 장수풍뎅이 애벌레보다 작다.

애벌레는 곤충의 아기, 잠시 빌려 사는 몸일 뿐

장수풍뎅이 애벌레는 탱글탱글한 반투명 몸뚱이 끝에 납작한 주황색 얼굴이 새끼손톱처럼 붙어 있다. 빛나는 투구에 검은 갑옷을 입은 성충도 멋지지만, 애벌레의 외모도 나름 귀엽다. 성충에겐 성충의 아름다움이, 애벌레에겐 애벌레의 아름다움이 있다. 추함과 아름다움을 가르는 감각은 주관적이어서, 어떤 이에겐 질겁할 만한 동물이 나 같은 이에겐 매력적인 생명체로 느껴진다. 왕성한 식욕으로 식물을 먹어치우는 숙명을 타고난 탓에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 신세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벌레는 한없이 연약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트리나 폴러스의 책 《꽃들에게 희망을》은, 추한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경쟁적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이자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은유다. 의인화된 애벌레는 사람의 입을 대신해 질문하며 인생의 해답을 찾아간다. 책 속 애벌레는 외부의 충고를 받아들여 나비가 되지만, 실제 애벌레는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스스로 나비가 된다. 좁쌀 같은 알 하나가 꼬물거리는 애벌레로 변하고, 고치 속 번데기로 침잠한 끝에, 마침내 날개를 펼쳐 지상으로 날아오른다. 변화의 전 과정이 매 순간 ‘완벽’하다.

 

꿀을 빠는 호랑나비.
꿀을 빠는 호랑나비.

나는 애벌레에서 호랑나비를, 박각시나방을, 장수풍뎅이를 상상한다. 애벌레는 곤충의 아기, 어린 시절 잠시 빌려 사는 몸일 뿐이다. 자라면서 외양은 천양지차로 달라지지만, 존재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소멸하기까지 매 단계가 ‘일시적인 몸’이자 ‘동등한 육체’다. 여러 몸을 통과하며 사는 동안 어떤 몸은 싫어하고 어떤 몸은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질없는 짓이다.

삽질할 염려 없는 앵두나무 아래 장수풍뎅이 애벌레 두 마리를 내려놓고 부엽토로 다독여 덮어주었다. ‘번데기 잘 지으렴. 멋진 뿔 달린 풍뎅이로 다시 만나자.’

100℃의 방귀를 뀌는 폭탄먼지벌레

습한 풀더미 아래에서 폭탄먼지벌레가 툭 튀어나온다. 꽁무니로 뜨거운 기체를 분사하는 재주가 있어 일명 ‘방귀벌레’로 불린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폭탄먼지벌레는 숲 그늘 낙엽 아래나 바위틈에서 자주 발견된다. 위기에 처하면 돌 틈이나 풀 그늘로 잽싸게 달아나는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사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들이대니 필살기인 뽀얀 방귀를 퐁퐁(!) 쏘며 달아난다.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만큼 뜨겁다지만, 막상 눈으로 보는 먼지벌레의 방귀는 하찮고 앙증맞다.

 

보도블럭 틈새로 숨은 폭탄먼지벌레.
보도블럭 틈새로 숨은 폭탄먼지벌레.

먼지벌레가 뿜어내는 가스의 온도는 무려 100℃에 이른다. 그렇게 뜨거운 가스를 어떻게 몸에 저장할까? 폭탄먼지벌레의 몸 안에는 두 개의 분비샘이 있어 각 분비샘이 서로 다른 화학물질을 만든다. 위기 상황에서 분비되는 두 종류의 화학물질은 꽁무니 안쪽에서 섞여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끓는점까지 온도를 높인다. 열의 압력에 의해 발사되는 가스는 초당 수백 번의 연속 분사가 가능하다. 인간의 눈엔 하찮게 보여도 먼지벌레에겐 강력한 무기다.

 

왕빗살방아벌레.
왕빗살방아벌레.

왕빗살방아벌레도 보인다. 방아벌레는 어린 시절 놀잇감이었다. 방아벌레를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으면 가슴과 배 사이의 관절을 접었다 펴는 힘으로 딱!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어린 눈엔 재미있는 재주넘기 놀이였지만 붙잡힌 방아벌레로선 곤욕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갖고 놀았던 건 윤기 나는 까만 방아벌레였다. 이름이 ‘검정빗살방아벌레’라는 건 최근에 알았다. 방아벌레를 손으로 붙들면 벗어나려고 딱딱! 소리를 내며 몸을 까딱거린다. 그 모양이 옛사람들 눈엔 디딜방아 찧는 듯 보였나 보다. 디딜방아를 본 적도 없고 사용할 일도 없는 지금은 단어의 의미가 소거되고 음절의 합만 남았다.

유전자에 각인된 항거의 본능

풀을 뽑다가 나무계단에 주저앉아 잠시 쉰다. 작은 곤충 한 마리가 바짓자락을 타고 무릎 위로 올라온다. 아기 사마귀다. 크기는 모기보다 조금 큰데 갖출 건 다 갖췄다. 휴대전화를 가까이 대니 네 개의 다리를 쩍 벌리고 갈퀴 달린 앞다리를 치켜세운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위협한다. 저 어린것의 유전자에 항거의 본능이 기본옵션으로 장착돼 있다. 압도적인 상대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패기, 굽히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저 기백! 사마귀는 정면 응시,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는다.

 

내 무릎 위로 올라온 아기 사마귀.
내 무릎 위로 올라온 아기 사마귀.

대학 시절,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렀던 ‘훌라송’이 생각난다. 4분의 2박자의 단순하고 짧은 단조곡인데 가사의 클라이맥스가 비장했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길 원한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권좌에 올라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80년대 초중반이었다. 감시와 사찰, 체포와 투옥, 고문과 의문사가 일상이던 흉흉한 시대였으니 젊은이들의 투쟁가에 결기가 서릴 수밖에 없었다. “서서 죽길 원한다”는 노랫말이 과도한 허세만은 아니었던 것이, 실제로 군부독재의 폭압에 맞서 싸우다 죽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맞서는 편이 승률이 높다

사마귀가 죽을 줄 몰라서 수레를 막아섰을까. 사마귀는 몸이 날개에 비해 무거워 메뚜기처럼 빠르게 점프하지 못한다. 빛의 속도로 사냥감을 잡아채는 앞다리의 민첩성에 비해 몸 전체는 굼뜬 편이다. 사마귀는 위험 앞에서 도망가는 대신, 몸통을 곧추세우고 날개를 펼치고 갈퀴 달린 앞다리를 번쩍 치켜들어 저항한다. 사마귀는 안다. 맞서는 편이 승률이 높다는 것을.

 

갓 허물을 벗은 청년 사마귀.
갓 허물을 벗은 청년 사마귀.

“버마재비 수레 버티듯 한다”는 말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비는 무모함의 비유로만 여겼는데, 당랑거철(螳螂拒轍) 고사는 뜻밖에도 사마귀에 대한 경의로 마무리된다.

“춘추시대 초기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가던 중 사마귀 한 마리가 제장공의 수레바퀴 앞에서 앞발을 치켜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제장공이 신기하여 수레를 멈추게 하고 좌우 어자(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가로되, “저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자 “저것은 사마귀라 하는 것인데, 어떤 것이 앞에 있으면 저 날카로운 앞발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어 앞을 가로막기만 할 뿐, 도무지 뒤나 옆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놈입니다” 하였다. 이에 제장공이 “만일 저것이 사람이라면 응당 무서운 용사일 것이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귀에게 경의를 표하고 수레를 돌려 지나갔다.”​ - 《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편

만용과 용기를 가르는 건 사후적 판단일까? 수레가 돌아가면 용기가 되고 수레가 짓밟고 가면 만용이 될까? 시도하지 못한 나의 진격은 만용을 피한 현명함일까, 용기 없는 비겁함일까?

(⁕ 알림 : <시민언론 민들레>에 연재했던 ‘김혜형의 농사만감’이 《꽃이 밥이 되다》(목수책방)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연재하는 동안 응원해주시고 출간을 독려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출간 소식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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