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 횡포·비정상적인 경영 차단 시급
상법 개정 반대는 이기적인 소수들의 저항
소액주주 권익 높이는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해 경영 감시 강화
중복상장 때 모기업 주주에 신주 우선 배정
주가 조작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엄벌
“저도 꽤 큰 개미(투자자) 중 하나였고, 정치를 그만두면 주식시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99%였습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일반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상법이 개정되면 지배 대주주의 횡포가 줄어들고 비정상적 경영 판단도 중단될 것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상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재벌기업 지배주주의 이익을 챙기느라 일반주주들이 일방적으로 손실을 입으면서 생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개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한 것이다.
상법 개정 반대는 이기적 소수들의 저항
이 후보가 이날 거론한 상법 개정안은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지난 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국회는 17일 재표결했에 나섰으나 국민의힘 반대로 최종 부결됐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간담회 참석에 앞서 페이스북에 올린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발표문’에서도 상법 개정을 포함한 여러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의 단계적 확대로 경영 감시 기능 강화 ▲‘쪼개기 상장’ 때 모회사의 일반주주에게 신주 우선 배정 ▲상장회사 자사주 원칙적 소각 등이 그것이다.
이 후보가 제시한 개혁안은 국내 증시 참여자와 거버넌스 관련 단체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온 과제다. 그러나 재벌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와 이들과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대다수 투자자가 원하는 제도 개혁을 외면하고 재계와 국민의힘 요구만 전적으로 수용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이기적인 소수들의 저항이라고 생각되는데 당연히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집안의 규칙도 안 지키면서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냐”고 되물었다.
상법 개정은 지배주주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기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재계는 이사가 일반주주의 눈치를 보면 모험적인 혁신 투자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기업의 경영이 해외 펀드에 휘둘릴 것이고 이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모두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다. 이사들이 상식 수준에서 의사결정을 했다면 소송을 당할 이유가 없다.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해도 현행법에서는 이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우리가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상충했을 때 지금처럼 이사회가 재벌가의 이익만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모기업의 알짜 자회사나 사업부를 분할해 상장하면 일반주주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기업 가치가 훼손돼 주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반면 모기업 지배주주인 재벌가는 큰 손실을 보지 않고 신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총수 가족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총수 일가에 과도한 성과 보수를 책정하는 등 유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주가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불신 사라져야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와 집중투표제 활성화도 재벌기업 체제에서 총수 일가로 과도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다. 지금은 재벌기업 이사회에서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묻히기 십상이다. 행동주의 펀드와 거버넌스 감시 단체, 소액주주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예전보다 개선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주요 의사결정은 지배주주에 의해 결정된다. 소액주주의 권익을 뒷받침할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개혁안은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주가 조작’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우리 주식시장에는 주가 조작으로 돈을 벌어도 힘만 있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깊은 불신이 퍼져 있었다”며 “불공정 거래에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한 번이라도 주가 조작에 가담하면, 다시는 주식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개혁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최소한의 정책일 뿐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활력을 되찾으려면 재벌기업 총수 일가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역대 민주 정부에서 추진했던 재벌 개혁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한다. 재벌의 사익편취 행위를 막아야 공정한 시장 질서가 확립되고, 이 후보가 목표로 제시한 주가지수 5000시대를 열 수 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