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주주 지분 희석 없이 투자금 마련 수단

SK이노, 윤활유 사업 SK엔무브 상장 추진

LS도 3세 승계 대비 주요 계열사 상장 준비

총수 일가는 지배력 유지하며 자금 조달

모기업 가치 훼손으로 일반 주주는 손해

자본시장법·상법 개정해 중복상장 막아야

경제개혁연대는 14일 ‘중복상장의 부작용 막을 제도적 장치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놨다. SK그룹이 모회사인 SK㈜, 자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 이어 윤활유 사업부문으로 손자회사 격인 SK엔무브까지 상장하겠다고 하자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쪼개기·중복상장의 실태와 역효과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E&S 사장,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왼쪽부터)이 3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열린 '주주와의 대화'에서 주주들과 경영 현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2024.3.28. 연합뉴스
추형욱 SK이노베이션 E&S 사장,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왼쪽부터)이 3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수펙스홀에서 열린 '주주와의 대화'에서 주주들과 경영 현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2024.3.28. 연합뉴스

중복상장만 없어도 한국증시 평가 30%↑

재벌기업들이 알짜 사업을 분리해 상장한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기업 쪽에서는 신사업에 투자할 자금조달과 성장 사업의 혜택을 주주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복상장은 그 혜택이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만 집중되고 대다수 일반 주주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핵심 사업을 떼어내면 모기업 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LG화학이 성장성이 큰 배터리사업부를 분리한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한 게 대표적 사례다. 중복상장 이후 LG화학의 기업 가치와 주가는 하락했다.

국내 증시 상장사 중에 재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재벌기업의 중복상장은 주주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벌기업의 쪼개기 상장만 사라져도 한국증시의 주요 지수가 30%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에서 중복상장이 반복되는 이유는 지배주주의 지분 희석 없이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3, 4세로 넘겨야 하는 재벌가로서는 요긴한 수단인 셈이다.

LS·SK…재벌기업의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

SK그룹은 모회사인 SK㈜와 자회사인 SK이노베이션이 시장에 상장된 상황에서 손자 회사인 SK엔무브의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상장 절차를 밟기 위해 주간사까지 선정했다고 한다. 중복상장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IPO 구조를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쪼개기 상장이 이루어지면 SK엔무브 지분 70%가량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이를 보완한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LS그룹은 LS파워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상장을 준비 중이다. 3, 4세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 LS파워솔루션 등의 중복상장 소식에 모회사 LS일렉트릭 주가가 하락하는 등 역풍이 불고 있으나 총수 일가는 '마이 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LS그룹 구자은 회장은 중복상장 비판에 대해 “신규 사업에 투자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방법이 제한적이라 어쩔 수 없이 상장을 선택한 것”이라며 “중복상장이 문제라면 주식을 사지 않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중복상장으로 인한 일반주주의 손실이라든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재벌가의 인식을 드러낸 발언이다.

 

LS그룹 정기 주주총회 [LS그룹 제공] 연합뉴스
LS그룹 정기 주주총회 [LS그룹 제공] 연합뉴스

중복상장, 기업 가치 부풀리고 이해 상충 초래

재벌기업들은 중복상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속셈은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효과적으로 외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다. 자회사나 손자회사에서 투자 요인이 생겼을 때 중복상장이 아닌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로 자금을 마련하면 대주주의 지배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모기업이 증자에 참여해야 하는데 자금 여력이 없어 실권하면 지배주주의 자회사나 손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은 줄어든다. 이것이 싫다면 지배주주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중복상장은 지배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고 외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장점 때문에 그동안 기업집단에서는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고도 지배주주의 지분 희석을 막는 수단으로 중복상장을 활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중복상장은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할 뿐 기업 가치를 왜곡하고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 여기에 더해 손자회사까지 상장하면 기업 가치가 중첩될 수밖에 없다. 3개 회사가 각각 1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모회사만 상장됐다면 합산 가치는 3이다. 그러나 3개 회사가 모두 상장되면 시장에서 모회사의 가치는 3, 자회사는 2, 손자회사는 1의 가치로 평가된다. 중복상장을 통해 본질 가치가 3인 모회사가 6으로 2배 ‘뻥튀기’가 되는 것이다. 각 기업은 그만큼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모기업에서 여러 회사가 쪼개져 상장되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 상충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때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상장사에 유리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이사회의 독립성이 약하다. 이해 상충 문제가 생기면 십중팔구 지배주주 이익을 앞세워 일반주주가 손해 보는 쪽으로 이사회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중복상장은 기업 가치를 부풀리고 일반주주의 이익을 희석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법 개정을 촉구하는 경제개혁연대 논평.
 상법 개정을 촉구하는 경제개혁연대 논평.

중복상장 비율 한국 18% vs 미국 0.3%

자본시장 선진국 중에 한국만큼 중복상장이 성행하는 나라는 없다. IBK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18%에 달한다. 같은 방식으로 중복상장을 계산한 결과 일본과 중국이 각각 4.3%와 1.9%, 미국은 0.3%에 불과했다. 주요국들은 엄격한 상장 심사를 통해 중복상장을 걸러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20년부터 상장 자회사를 보유하는 의의와 상장 자회사 지배구조의 실효성 확보 방안 등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그룹 전체의 기업 가치 향상과 자본효율성 관점에서 상장 자회사를 유지하는 게 합당한지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반면 한국은 중복상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만 무성할 뿐 실효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중복상장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인데 재벌가를 비호하는 경제단체들이 반발하며 번번이 무산됐다. 여당을 중심으로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 중복상장의 악습을 차단하기 어렵다. 자본시장법과 상법 개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재벌기업의 쪼개기·중복 상장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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