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난감, 이름잃은 항쟁에 바치는 때늦은 조사'

제주 토박이 박경훈 작가 세 곳서 동시 전시회

갤러리 나무아트 '백골난감' 전시장. 
갤러리 나무아트 '백골난감' 전시장. 

박경훈 4.3목판화 개인전 ‘백골난감, 이름 잃은 항쟁에 바치는 때늦은 조사’는 현대미술, 특히 목판화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작지만 큰 전시다.

이 전시는 동일 제목, 동일 작품으로 서울, 제주, 광주에서 동시에 열린다. 갤러리 나무아트(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월 2일~15일), 포지션민제주(제주 관덕로6길 17, 4월 3일~5월 31일), 오월미술관(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29-1, 4월 7일~5월 31일).

세 곳 동시 전시가 가능한 것은 판화가 얇은 한지에 여러 장을 찍어 둘둘 말아 여러 곳으로 쉽게 운반할 수 있는 특성에서 말미암는다. 오로지 한 개뿐임을 내세워 시장가치를 증폭하는 현대미술의 대척점에 있음도 큰 몫을 한다. 무엇보다 작품 판매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 무게를 두는 작가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백골난감’ 제목이 말하듯이 전시는 4.3 희생자의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견뎌내기 어려운’ 한을 풀어주고자 한다. 해마다 4.3 관련 행사와 전시가 이뤄지지만 대개는 제주도에 국한되었던 바, 정치적, 정서적 족쇄를 풀어 전국에 확산함으로써 죽어서 말 못하는 희생자, 숨죽여온 유족들, 제주도민을 대표하여 목소리를 낸다.

 

'201호 법정'.
'201호 법정'.
'어떤 모자'.
'어떤 모자'.

들머리에 배치된 ‘우리는 죄없는 사람’은 전시의 성격을 대변한다. 4.3 당시 군법회의에 의해 유죄, 투옥되었던 4.3수형인들이 2019년 1월 17일 70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감격적 순간을 담았다. “4.3 역사정의 실현 만세”를 외치는 늙은이들 사이에 백골의 인간이 섞여 있는데, 총을 메고 있는 게 특징. ‘4.3 수괴급 재심청구’ 손팻말도 보인다. 가해자인 군경을 희생자 범주에 넣어 포용하면서도 소위 ‘수괴급’이라는 4.3항쟁 주도자들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 당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작가의 이러한 작의는 법정문 밖에서 귀대기 하는 백골인간을 새긴 ‘201호 법정’, 위패 봉안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없음을 확인하는 ‘내 자리는?’, 무죄판결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어떤 모자’에서 반복된다.

작가는 그나마 이러한 성과에 이르기까지 유족들과 제주도민의 신산한 삶을 묘파한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위패봉안실2'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위패봉안실2'
'불복산'. 
'불복산'. 
'송령이골의 탈주'.
'송령이골의 탈주'.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위패봉안실2’는 이명박근혜 정부 하에서 극우들의 난동으로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소위 ‘불량위패’ 몇몇 개가 내려진 현실을 표현했다. 총을 든 백골인간들이 도열한 위패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등 뒤로 손목을 묶인 채 깊은 땅에서 백골이 된 ‘불복산’은 탐라가 고려에 복속된 뒤 일어난 최초의 민란 ‘양수의 난’ 이후 수많은 항쟁으로 점철된 화산섬의 역사를 요약한다. ‘송령이골의 탈주’는 1949년 1월 12일 토벌대에 붙들려 학살 위기에 놓인 주민을 구하기 위해 이들이 수용된 의귀국민학교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토벌대와의 교전에서 사망한 무장대 51명을 끌어묻은 무덤, 수십 년 동안 방치되다가 2004년부터 표지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된 현실을 반영한다. 달 밝은 밤, 스스로 무덤을 열고 나오는 백골들의 모습으로.

 

'백비를 세우다'.
'백비를 세우다'.
'어떤 추도비'.
'어떤 추도비'.

작가는 나아가 산 자의 도리를 이야기한다. 제주4.3평화기념관의 백비를 일으켜 세워 제 이름을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4.3인민항쟁’이다. 분단 이후 이념의 사슬에 묶여 불온한 언어가 된 ‘인민’. 작가는 당시의 언어로 당시의 이름으로 명명하는 게 옳다고 본다. 잘못된 이름은 바꿔야 한다. 선선무 후토벌을 주장하던 김익렬 9연대장 자리를 꿰찬 박진경. 부임 한 달 사이에 6000여 명의 주민을 체포해 괴롭히는 만행을 저지른 끝에 부하들에게 살해당한 인물. 추도비에 “위민 충정으로 공비 소탕를 지휘하다 장렬하게 산화하시다”라고 새겨져 있다. 2022년 시민사회가 뒤집어 씌운 철창은 열흘 뒤 제주도 보훈청에서 철거했다.

 

'키세스 시위대'.
'키세스 시위대'.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
'동학, 일백삼십년만에 남태령을 넘다'.

따라서 작가의 4.3 역사 바로세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의 시선이 12.3내란 국면에 머묾은 당연지사. 은박지로 전신을 감싸고 탄핵의 겨울을 난 키세스 시위대에서 죽은 자와 산 자,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함을 본다. 트랙터로 상경한 농민과 응원봉을 든 2030청년들이 만나 일군 ‘남태령 대첩’은 130년 전 동학농민항쟁이 겹친다.

123일 간의 시민항쟁 끝에 쟁취한 윤석열 탄핵. 사악한 정권을 꺼꾸러뜨린 기쁨을 나누고 대동세상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목판화전이 전국에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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