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빅토르 위고 원작 뮤지컬 <웃는 남자>

17세기 영국 배경, 신분제 속에서 인간 존엄성 그려

호수 아래 잠긴 진정한 달 찾아서 희망으로 빚어낸다

허상 벗고 진실 마주하자고 용기 돋우는 '그 눈을 떠'

불평등 상징화 거대한 회전무대와 조명의 대비 볼만

뮤지컬 '웃는 남자'의 원작소설. 사진=황융하 시민기자
뮤지컬 '웃는 남자'의 원작소설. 사진=황융하 시민기자

지난 19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웃는 남자>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7세기 영국으로, 당시 유럽은 신분제와 귀족 사회의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던 시대다. 산업혁명을 앞둔 시점에서 빈부격차는 극심했고, 귀족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하층민을 지배했다. 빅토르 위고는 이러한 사회 모순을 작품 속에 녹여내, 인간의 존엄성과 신분제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프랑스 사회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원작 소설이 정치적 음모와 귀족 사회의 위선을 중심에 두고 있는 만큼, 뮤지컬 역시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하층민인 그윈플렌은 귀족 혈통임이 밝혀진 후에도 상류사회에서 배척당하는데, 이는 계급 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의 존재 자체가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부조리한 사회를 상징하며, 권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배척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가라는 뮤지컬이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무대는 작품의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도록 연출됐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며, 각 장면의 상황과 메시지를 깊이있게 전달한다. 거대한 회전무대는 운명에 휘둘리는 그윈플렌의 삶을 상징하며, 조명의 색과 밝기의 변화는 신분의 차이를 극적으로 강조한다. 두 개의 세계가 선명하게 대비되며, 같은 하늘 아래 극소수의 부유한 귀족과 대다수 빈민이 살아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귀족의 화려한 저택은 부와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드러내고, 유랑극단의 소박한 무대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자유로움을 담아낸다. 이러한 무대 배경 속에서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각각의 세계가 지닌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한편으로 상위 1%만이 누리는 환희와 열정이 가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광대들이 고단함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이처럼 씬에 따른 무대의 변화는 관객들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도록 돕는다.

 

뮤지컬 초반, 유랑극단의 공연 장면(그윈플렌과 데아)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초반, 유랑극단의 공연 장면(그윈플렌과 데아) 사진=EMK뮤지컬컴퍼니

하층민으로 살아가던 그윈플렌은 자신이 귀족 혈통임을 알게 되지만, 그것이 그의 삶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신분을 뛰어넘어 인간적인 정치를 실현하려 하지만, 사회의 벽은 냉혹하고 단단하다.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신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묵직한 질문은 객석으로 날아들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로 바뀐다.

소설 <웃는 남자>1928년과 2013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시대에 맞게 재해석됐다. 뮤지컬로 장르를 바꾼 <웃는 남자>는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노래와 감각적인 무대 연출이 극의 몰입감을 높이고, 라이브 바이올린 연주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계급 간의 대립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어 극적인 순간마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윈플렌과 데아의 사랑, 그리고 우르수스가 보여주는 갈등과 조화는 부유한 자들의 천국이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채워진다는 세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들의 관계는 신분과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사랑이 지켜질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조시아나와 그윈플렌의 관계가 또 다른 갈등의 축을 형성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조시아나의 공허한 사랑은 그윈플렌의 내면을 흔들어 놓는다. 귀족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조시아나는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존재로, 결국 그윈플렌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긴장감을 더한다. 이러한 감정적 갈등과 긴장은 극의 중심 흐름을 이루며, 분절된 세계를 선명하게 대비한다. 원작이 지닌 낭만주의적 정서는 무대와 조화를 이루며 한층 깊이 있게 살아난다.

 

귀족 의회에 참석한 그윈플렌(오른쪽 하단의 흰색 가발) 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귀족 의회에 참석한 그윈플렌(오른쪽 하단의 흰색 가발)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는 현실은 17세기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정의를 독점하며 개인의 존엄을 쉽게 짓밟는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려는 본능을 지닌다. 그윈플렌의 미소는 바로 그 저항과 연대의 상징이다. 그것은 잔혹한 체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이자,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자아를 향한 선언이다.

공연 감상의 결을 높이려면

뮤지컬 <웃는 남자>를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콤프라치코스라는 집단이다. 이들은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으로 변형시켜 광대로 만드는데, 이는 그윈플렌의 상처이자 운명을 결정짓는 비극의 근원이 된다타고난 신분과 신체가 변형되면 누구든 나락으로 떨어지고 철저히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윈플렌을 거둬 기른 우르수스의 존재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그윈플렌과 데아의 단순 보호자에 머물지 않으며, 인간은 행복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각인시켜준다. 역으로 그 갈망이 쉽게 현실화 할 수 없음을 말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그의 태도는 신분의 굴레를 깨려는 그윈플렌과 대조를 이루며 깊은 울림을 준다. 결국 우르수스는 냉혹한 현실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윈플렌이 나아가야 할 길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지켜보는 존재로 남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그 눈을 떠라는 노래에서 절정에 이른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간이 본래 지녀야 할 존엄을 깨닫는 순간을 담아낸다. 귀족 회의장에서 울려 퍼지는 그윈플렌의 노래는 가진 자들의 독점과 억압받는 자들의 침묵을 거부하는 몸짓이다. 우리가 허상을 걷어내고 실체적 진실을 마주하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자문하는 주문이다.

호수 위의 달빛이 아닌

광대들의 삶은 밤의 장면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귀족들의 밝은 세계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밤하늘은 무수한 별과 달을 품고 있지만, 현실 속 누군가는 진실을 체념한 채 불현듯 호수 위에 떠 있는 달빛 그림자만 좇으며 길을 잃는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깊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더라도, 수면 위를 스치는 허상에 머물지 않는다그 아래에서 진정한 달을 발견하고, 그것을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빚어낸다.

원작의 깊이를 잇는 뮤지컬 <웃는 남자>는 시대가 흐르고 상황이 변해도,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향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음을 전해준다. 눈을 뜬다는 것은 익숙한 허상을 걷어내고, 비록 거칠고 불완전할지라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의미한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어둡더라도, 우리는 빛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빛은, 그윈플렌이 남긴 미소처럼 끊임없이 되살아나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네 번째 시즌을 장식하는 배우들(그윈플렌, 우르수스, 데아, 조시아나)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 남자'의 네 번째 시즌을 장식하는 배우들(그윈플렌, 우르수스, 데아, 조시아나) 사진=EMK뮤지컬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는 20187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5년에 걸친 제작 기간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이 작품은 2020년과 2022년 재연을 거치며 주요 뮤지컬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고, 꾸준한 호평으로 네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기존 배우들의 재참여와 새로운 배우들의 합류로 캐릭터 해석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특히 NCT 도영이 그윈플렌 역을 맡아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었으며, 네 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윈플렌을 연기해 캐릭터의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작품의 깊이를 더하며,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즐기고 싶다면, 공식 유튜브 영상에서 배우별 색깔을 미리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각의 배우가 그려내는 그윈플렌의 결을 비교한 뒤 자신의 취향을 찾아 감상하면 더욱 깊이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3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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