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패배 반면교사로 삼아야

지난해 미 대선에서 해리스의 패배가 확정되자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SNS를 통해 “노동자 버린 민주당 대선 패배, 별로 놀랄 일 아냐”라며 민주당을 향해 일갈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많은 언론에서도 해리스의 패배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인 노동자로부터 외면받았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오히려 트럼프가 4년 전보다 노동자의 표를 크게 늘리며 압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4년은 ‘나 홀로 성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경제가 좋았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와중에도 바이든 집권 기간 GDP 성장률은 연평균 2.9%에 달했으며 일자리 증가율은 카터 대통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바이든은 “우리는 1,3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고, 실업률은 50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며 자신의 경제 성적표를 자랑했다. 이를 반영하듯 2019~2023년 4년간 노동자의 소득은 크게 늘었다. 특히, 소득수준 하위 10%를 차지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은 5.0%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미국 민주당은 대선에서 참패했다. 소득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 못하고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부유층은 주식 투자와 주택 가치 상승 덕분에 자산이 늘어난 반면, 저소득층은 실질소득 상승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미국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에서 더욱 심화된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낙태권 보장, 성소주자 인권 등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만 매달렸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바이든 집권 4년은 지옥같은 기간이었다며 노동자들의 표심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자 계급이 공화당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2 연합뉴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념이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며 실용주의를 내걸고 성장 우선 정책을 선언했다. 이 대표가 이같은 내용을 내건 이유는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해서다. 올 상반기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조기대선을 겨냥해 중도화 전략을 표방한 셈이다. 국민들에게 민주당은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 정당’으로 각인돼 있다. 보편적 복지를 강령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역시 ‘기본 소득’ 등 분배에 초점을 맞춘 정치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요즘 같은 경기침체에 분배만을 강조해서는 필패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상은 이와 다르다. 민주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경제의 제일 목표로 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들의 소득 수준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정당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IT 경제의 기반을 닦아 한국 경제 제2의 도약을 마련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우클릭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미국과의 FTA를 추진해 수출 활로를 뚫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성장을 위한 경제생태계 혁신을 이끌어 냈다. 민주당 집권기간 경제성장률이 보수정당 집권시기보다 높았던 배경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역시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현금을 살포했으나 그 후과는 컸다. 부동산은 폭등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이 심화됐다. 주식시장은 국내·외 경제 침체 등의 영향으로 폭락세를 이어갔다. 이 와중에 윤석열의 내란으로 인한 혼란까지 겹치며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대에 머물거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럴수록 본질에 충실하고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한 집권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전략을 내놓아야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득향상과 고용안정을 위한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3년 기준 13%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자의 10%에도 못 미치는 272만 명이 가입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해 8월 기준 전체 노동자의 38.2%가 비정규직으로 OECD 국가중 두 번째로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소득을 올려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조직률과 함께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통해 가능하다. 단체협약 적용률이란 노조가 사용자와 맺은 단체협약을 비노조 조합원들에게도 일괄 적용하는 제도를 뜻한다. 비록 노조 조직률이 낮더라도 노동자 전체에 적용할 수 있어 불평등 완화에도 크게 기여한다. OECD도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을수록, 전 산업 또는 산업 수준에서 단체교섭이 이루어지고 조정이 원활할수록 임금소득 불평등이 낮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 단체협약 적용률은 2018년 기준으로 14.8%로 OECD 평균(32.1%)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와 비교되는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의 노조 조직률은 2021년 기준 8.9%에 불과하다. 그런데 단체협약 적용률은 98%에 이른다. 노동자 10명 중 약 1명만 노조에 가입했지만, 10명 모두 단체협약을 적용받는 셈이다. 프랑스의 불평등이 크게 개선된 이유다.

이런 와중에 이 대표가 기업 성장을 우선해야 한다며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유예를 위한 반도체특별법 등 법률안을 수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는게 이유다. 집권을 위해 과감히 우클릭 행보를 보인 셈이다. 이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최근 여론조사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의 흐름은 보수층의 결집으로 민주당과 국민의 힘의 지지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정권교체와 정권연장 여론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와 다른 후보와의 격차가 크게 좁혀져 있거나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역전된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대선의 향배를 결정할 중도층 여론조사는 이와 다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은 정권교체 여론이 두 배 이상 높고 대선후보 지지도에서도 이 대표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조급해할 필요 없다. 국민을 믿고 과감히 극우 세력을 청산하고 불평등을 없애고 양극화를 해소할 사회대개혁에 나서야 한다. 최근 윤석열 파면요구 집회에서는 사회모순을 혁파하고 대한민국 개혁을 위한 요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사회 대개혁’이다. 민주없는 개혁 없듯이 개혁 없는 민주는 없다. 이를 오롯이 담아내야 조기대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없다.

51%대 49%로 이기는 것과 60%대 40%로 이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의 경우 사회개혁의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집권기간 내내 극우파의 준동이 이어질 것이며 보수정당의 저항으로 제대로된 개혁조차 어려울 수 있다. 자칫 5년 뒤 극우파의 정권재창출이라는 악몽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때문에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이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대개혁을 내걸고 중도층을 견인해야 한다. 미 대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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