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기후를 돌보는 경제는 가능할까?

히키코모리, 전업자녀, 재택경비원 세대

돈 버는 노동만이 아닌 일하고 활동하는 삶

선형경제에서 순환경제 넘어 지역돌봄경제로

‘탈성장’은 성장 부정보다 성장우선 부정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한윤정 한신대 생태문명원 공동대표

젊은이들의 절망

일본: 히키코모리

중국: 전업자녀

한국: 재택경비원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의 취업을 걱정하는 친구가 보여준 각국의 유사한 신조어다. ‘히키코모리’는 이미 잘 알려진 말로 ‘은둔형 외톨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최소한 반년 이상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는 행위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회피성 성격장애라는 개인의 기질이나 다양한 직간접 폭력에 노출된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무력감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의 장기불황이 지속하면서 나타난 인간형으로 아예 취업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사회생활에서 중도에 탈락한 젊은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에 의지해(경제력이 전혀 없으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음) 히키코모리가 된다는 것이다.

‘전업자녀’는 직장이 없는 자녀가 부모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부모로부터 월급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캥거루족’과 다른 점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대신 돈에 상응하는 일을 한다. 고도성장 시기에 집과 자산을 마련한 부모세대가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가정복지인 셈이다.

최근에 생긴 ‘재택 경비원’이란 말은 백수와 같은 뜻이고 ‘홈 프로텍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역시 어떤 형태의 생산적인 활동이나 그를 위한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통계청이 '9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16일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14만여 명 늘며 석 달째 증가 폭이 10만 명대에 머물렀다. 청년층 '쉬었음'은 44개월 만에 최대 폭 늘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884만 2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4만 4000명 증가했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일자리가 10만 명 줄었다. 10차 산업 분류로 개정된 2013년 이후 역대 최대 폭 감소다. 2024.10.16. 연합뉴스
통계청이 '9월 고용동향'을 발표한 16일 서울의 한 고용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14만여 명 늘며 석 달째 증가 폭이 10만 명대에 머물렀다. 청년층 '쉬었음'은 44개월 만에 최대 폭 늘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는 2884만 2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14만 4000명 증가했다. 산업별로는 건설업 일자리가 10만 명 줄었다. 10차 산업 분류로 개정된 2013년 이후 역대 최대 폭 감소다. 2024.10.16. 연합뉴스

농담으로 지나치기에는 안타깝고 불안한 현실이다. 새삼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경제가 수축기에 들어선 데다 인공지능 열풍으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드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많은 교육을 받고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꾸준하게 취업 시장에 도전할수록 상처받을 가능성은 더욱 커지니 집안에 틀어박혀 인터넷과 방송의 정보로 현실을 간접 체험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게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부모 입장에서는 남들처럼 노력해서 바늘구멍을 뚫어보라고 채근하거나 속앓이를 하겠지만 이미 기성세대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살 수 없는 세계가 되었다.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3년생)의 퇴직이 시작된 해인데 이 세대는 954만 명, 전체 인구의 18.6%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이 세대가 노동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10년간의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 하락한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성장률보다 심각한 문제는 각 개인과 가정의 경제적 불안정, 심리적 불안감과 더불어 ‘재택 경비원’인 자식들과 집안에 함께 ‘재택 경비원’이 되는 상황이다. 은퇴를 앞두거나 은퇴한 사람들(55~79세) 가운데 68.5%가 계속 일하기를 원하며 평균 근로희망 연령은 73세라고 한다.(2023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더욱이 2차 베이비부머는 교육수준이 높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신기술 활용능력도 뛰어나다. 취업이 어려운 젊은 세대 그리고 정규 노동시장을 벗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경제적 기회를 줄 수 없을까.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10.29 국제 돌봄의 날을 맞아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며 노숙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요양보호사 표준임금 가이드라인 도입, 장기 근속장려금 인상 및 확대, 아동 돌봄 노동자 전국 단일임금 시행 등을 촉구했다. 2024.10.29. 연합뉴스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10.29 국제 돌봄의 날을 맞아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며 노숙 농성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요양보호사 표준임금 가이드라인 도입, 장기 근속장려금 인상 및 확대, 아동 돌봄 노동자 전국 단일임금 시행 등을 촉구했다. 2024.10.29. 연합뉴스

사회적경제와 순환경제

사회적 경제는 경직된 노동시장의 문제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보면 ‘구성원 간 협력, 자조를 바탕으로 재화, 용역의 생산 및 판매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민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을 사회적 경제로 정의한다. 국가나 시대별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구성원 참여를 바탕으로, 국가와 시장의 경계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민간의 경제활동’이라는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가치’는 일반 경제활동과 사회적 경제를 구분하는 핵심 내용으로 인권, 안전, 환경,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상생협력, 사회통합 등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를 뜻한다.

법적으로 사회적 경제는 ①사회적 기업(고용노동부, 사회적 기업 육성법, 2007), ②협동조합(기획재정부, 협동조합기본법, 2012), ③마을기업(행정안전부, 마을기업 육성사업 시행지침, 2011), ④자활기업(보건복지부, 국민 기초생활보장법, 2012) 등 네 가지 기업 형태로 운영된다. 2021년 현재 국내 사회적 경제 기업은 2만 8041개이며 이중 협동조합이 2만 2132개로 가장 많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이며 특히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의 목적 자체가 지역주민들의 권익·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영리활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이상 한국 사회적 경제 진흥원)

이런 정의를 살펴보건대 사회적 경제는 ‘자유’에 맡겨진 시장을 보완해서 ‘평등’과 ‘우애’를 추구한다. 경제적 가치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며 노동시장 바깥에 놓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수단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된 사회는 좋은 사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회적 경제가 안착했다거나 성공했다거나 희망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 캐나다 퀘벡 모델이 거론된다. 인구 53만 명인 퀘벡 시에 33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있고 2만 5000여 명이 고용되어 연간 17조 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등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성공담이다. 비교적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높은 서울 성북구의 경우 인구 42만 명에 사회적 경제 기업은 183개이다. 그나마 등록만 해놓고 활동하지 않는 기업도 많다.

 

“요람에서 요람으로”

그런데 지금은 경제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사람뿐 아니라 생태환경, 기후까지 확장되었다. 순환경제는 그런 맥락에서 도입된 개념이다. 2015년 유럽연합이 순환경제 정책을 공표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산업혁명 이후 250년 이상 계속된 선형경제(자원의 조달-생산-소비-폐기)를 벗어나 ‘자원을 최대한 장기간 순환시키면서 이용하고 폐기물 등의 낭비를 부로 바꾸는 경제모델’이다. 그 중간단계인 재활용경제(3R, Reduce, Reuse, Recycle)가 소비의 정도와 기간을 늘리되 결국 폐기물을 남기는 것과는 달리 폐기물이 자원이 된다. ‘요람에서 요람으로’(윌리암 맥도너, 미하엘 브라운가르트의 책 제목)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올해 1월부터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이 규정하는 순환경제란 ‘투입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경제체제’를 말한다.

 

10월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회원들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중심 돌봄체계'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0.28. 연합뉴스
10월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회원들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중심 돌봄체계'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0.28. 연합뉴스

지역돌봄경제를 향하여

이 지점에서 사람을 살리는 사회적 경제와 자연을 살리는 순환경제를 합쳐서 ‘지역돌봄경제’라고 명명해보면 어떨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사회경제 돌봄체제가 작동해야 하고 친환경 경제체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원순환 주기가 짧아야 한다. 즉 지역에서 필요한 재화를 가능한 한 주민들의 힘으로 생산하고 수리, 교환, 재활용하며 그 폐기물까지 처리하는 방식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문화와 교육 서비스 역시 지역에서 맡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예컨대 새로운 전시를 열 때마다 가벽을 세우고 폐기하면서 엄청난 자원을 낭비하는 대형 미술관보다는 주민 모임이 활성화된 동네 도서관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할 뿐만 아니라 ‘동네 라이프’를 즐기는 데 따른 만족도도 높다.

이미 전 지구화된 경제를 지역으로 돌려놓기는 쉽지 않겠지만 지역에서 가능한 일부터 바꿔나가는 것이다. 이런 대상으로는 먹거리, 에너지, 커뮤니티 케어(보육·교육·돌봄), 모빌리티(자전거 등 친환경 교통수단), 마을관리(노후 건물 수리), 자원순환 등을 들 수 있다. 각 영역마다 적정한 생산, 유통, 소비의 단위가 있으며 중요한 것은 이런 지역돌봄경제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의지, 투자와 지원이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로 나눠진 사회적 경제 기업에 대한 개별 투자와 지원을 넘어 지역에 기반한 생태적 경제모델을 만드는 것이 지금 지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지역순환경제 매트릭스,  「서울시 전환도시 추진 전략」, 정건화·이재경, 2020'
 '지역순환경제 매트릭스,  「서울시 전환도시 추진 전략」, 정건화·이재경, 2020'

위의 지역순환경제 모델은 지역 단위의 경제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자원과 폐기물이 순환하는 경제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지역돌봄경제’가 뜻하는 바를 선취한다. 단 지역순환경제 대신 지역돌봄경제라고 쓴 이유는 이 모델이 가진 의도(local circular economy)와는 별개로 이미 지역순환경제(local endogenous economy)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순환’으로 번역된 ‘endogenous’는 ‘내발적(內發的)’이란 뜻이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외부 기업이나 투자를 끌어들이는 대신 지방정부 조달 등의 방식으로 지역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지역의 부가 지역에 쌓이도록 하자는 것이다. 외부 기업의 유치로 인한 수익은 다시 외부로 유출되기 때문이다. 중요하고 바람직한 목표이지만 (경제성장을 통한) 지역발전이라는 전제는 여전하고 순환경제의 측면이 강조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비롯해 건강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가 용량을 초과한 지금, 탈성장은 여전히 두려운 단어일까. 탈성장은 ‘성장하지 말자’는 부정적 개념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제행위에서 성장을 우선시하지 말자는 뜻이다. 화폐로 환산된 경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해주는 경제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국민총생산(GN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도입하자는 운동과도 맥락이 통한다. 탈성장, 국민총행복, 지역순환경제, 나아가 지역돌봄경제…. 어떤 용어를 쓰더라도 현재 경제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경제전환은 멀고 험난하겠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취업을 못 하거나 직장에서 은퇴한 이들이 ‘재택 경비원’이 되는 대신 지역공동체에서 할 일을 찾고 보람을 느낀다면 굳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노동(labor)만이 아니라 일(work)하고 활동(activity)하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의 전환에서부터 경제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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