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집회에 '교통체증''경찰협박''욕설''야유'
이태원 참사 끌어들여 혼란 ·부정적 이미지 씌워
과거 국힘당 집회 땐 사실 전달, 긍정 이미지 포장
조선·중앙 등 정파·진영 따라 이중잣대 보도 일상
한국언론 신뢰 '세계 꼴찌' 원인…부끄러운 줄 아나
극우 기득권 집단을 대변하는 조선일보와 그 아류 매체들이 정파와 진영에 따라 비슷한 사안을 다르게 보도하는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이 하면 비난하다가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이 하면 모른 체 하거나 옹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그때마다 일일이 비판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래도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기록에라도 남으니까.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란 그 전신인 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신한국당, 민자당, 민정당, 공화당 등등을 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역 앞에서 개최한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촉구 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크게 보도했다. 이 신문이 윤석열 정부 비판 집회를 보도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러나 기사의 의도는 따로 있다.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김건희 특검’ 민주당 대규모 집회…인파에 극심한 교통체증” “서울역 대규모 인파에 시위 참석자들 ‘핼러윈 참사 떠올라’” “경찰에 ‘정권 바뀌면 가만 안 둔다’ 협박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기사는 집회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연 윤석열 정부 비판 집회’를 비판하기 위한 기사다. 조선일보는 ‘경찰 추산 최대 2만명’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전하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고 심지어 ‘이태원 참사’가 연상될 정도로 ‘큰 혼란’을 불러왔다며 이날 민주당 집회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웠다.
기사 본문도 같은 논조였다. “이날 집회로 서울 도심 곳곳은 극심한 교통 체증을 빚었다”는 첫 문단으로 시작해 “전 차선을 점거” “숭례문부터 서울역까지는 15㎞/h(정체), 서울역에서 숭례문까지는 9㎞/h(정체)” “100m에 불과한 지하철 통행로는 이동하는 데만 5분 이상 걸렸다” “지하철 통로에 인파가 몰리면서 일반 시민들도 불편을 겪었다” “사람이 몰려 열차를 못타게 됐다” “시위 참석자들이 경찰을 협박했다” 등으로 이어진 이 기사에는 온통 부정적 시각이 묻어있다.
“민주당 깃발을 든 한 참가자는 “경찰이 안전 관리를 위해서라며 출구를 폐쇄했는데, 오히려 안전 사고가 날 것 같다”며 “핼러윈 참사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고성을 질렀다. 일부 참가자는 경찰이 4·5번 출구를 막자 “왜 못 가게 막느냐”며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다른 참가자는 “서울시와 경찰이 집회를 못하게 막으려는 수작”이라고 비난하며 “정권이 바뀌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참가자들은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나오는 영상이 재생되자 야유와 욕설을 지르기도 했다.”(기사 본문 중)
조선일보는 집회를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 이태원 참사까지 소환했다. 몰려든 많은 인파가 ‘이태원 참사를 떠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광장에서 벌어진 야당의 집회를 보고 공권력 방치와 무능으로 인해 150명이 넘는 국민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현장을 떠올리는 조선일보 기자의 사고방식이 충격적이다. 조선일보 기자는 이태원 참사가 그저 사람이 많이 모여 발생한 사고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아이들이 놀러가다 죽은 사고였을 뿐이라는 일베의 생각과 닮았다.
조선일보가 이 기사를 통해 노리는 것은 민주당 집회로 인해 발생한 ‘혼란’ ‘불편’을 드러내고 거기에 민주당이 장외 집회를 연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거대 야당이 국회 내에서 정치를 하지 않고 길거리로 뛰쳐나갔다고 비난하고 싶은 것이다. 조선일보 등의 극우 언론은 극우세력이나 극우 정권을 비판하는 광장의 집회는 그것이 정당 주최든 시민단체 주최든 무조건 부정적 프레임을 씌워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국힘당 계열의 정당이 주최한 장외 집회의 경우에는 다르게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4월20일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고 2만여 명이 참가했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청와대 문앞까지 행진한 ‘문 STOP’” “한국당, 황교안 대표 취임 이후 첫 대규모 장외집회, 애국당도 참여” “황, ‘문 대통령, 김정은 대변인 역할…자유우파 세력들이 힘 합쳐야’”
기사 본문은 자유한국당이 내건 구호와 슬로건, 황교안 당 대표의 행진, 태극기를 든 대한애국당 합류 소식 등으로 시작해 “분열됐던 보수 진영 통합의 계기가 마련되는 것 같다”는 한국당 내 긍적적 평가가 적혀있다. 이어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집회 발언을 상세히 옮겨 전하고 집회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도 소개했다. 일주일 뒤에 열린 2차 장외 집회 보도 역시 비슷했다.
민주당 집회 때와는 기사 제목과 본문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집회에 참가한 인파로 인한 교통체증이나 시민들의 불편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두 집회에는 똑같이 2만여 명이 참가했는데(다음주 자유한국당 2차 집회에는 5만여명) 민주당 집회 기사에 등장한 ‘협박’ ‘욕설’ ‘야유’ 등의 단어가 자유한국당 기사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집회에서는 정말로 참석자들이 교통체증을 유발하지도 않았고 욕설이나 야유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조선일보와 그 아류 매체들은 과거 민주당의 장외 집회에 대해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아왔다. 국회 내에서 해결하지 않고 거리로 나와 국민을 선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장외 집회에는 그런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주최 측과 참가자들이 외친 반정부 주장과 구호(“문재인 물러가라”“독재타도” 등)를 있는 그대로 전달할 뿐이다. 황교안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는 언급도 전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황 대표가 장외투쟁을 주도하면서 ‘강한 야당 지도자’의 이미지를 다지려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고 썼다. 자유한국당이 주최하는 장외 집회 보도에는 긍정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이다.
조선일보와 그 아류 매체들이 비슷한 사안에 대해 다른 소리를 하는 이중성을 보인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조선일보와 그 아류 매체들은 정부와 입을 맞춰 ‘정원 확대 불가피론’을 고집했다.(“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 조선일보·중앙일보, 2023.10.16.) 그러나 조선, 중앙은 불과 3년 전 민주당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의대 정원에 극렬 반대하는 사설을 게재한 바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부 때는 반대 입장을 펴다가 윤석열 정부로 바뀌자 핵 오염수 방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주장을 ‘가짜뉴스’ ‘괴담’으로 취급하며 적극 찬성했다. 민주당 정부에서 환율이 오르면 ‘경제 경고등’이라며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고환율이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썼다. 말 그대로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기자 초년 시절 배웠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 기사의 중립성·객관성·공정성을 내다버리고 이념적 편향성의 잣대로 현실을 왜곡·호도하는 짓이다. 기자로서 기본 자질을 논하기 전에 양심의 문제를 돌아볼 일이다.
이런 이중적 보도는 한국 언론 신뢰도를 세계 꼴찌로 추락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향성’과 ‘왜곡보도’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 민주당이 하면 비판하고 국힘당이 하면 옹호하는 이중잣대 보도는 편향되고 왜곡된 보도다. 이런 일을 밥 먹듯 자주 하는 매체를 정상적인 언론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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