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악행 규탄하며 새로운 언론운동으로 시작

지리산 대피소장·전교조 교사 출신이 첫 시위 후

전직 언론인, 노동가·교육운동가 등 각계각층 합류

농부·아파트경비원·간호사·목사·조선일보 배달원도

몸사리지 않고 매일 조선일보 정문앞 자발적 시위

"반민주·반민족 조중동 퇴출해야 이 나라가 산다"
 

1975년 3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가 결성된 이후 이들은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을 전개해 왔다. 구체적으로 한겨레신문의 창간을 이뤄냈으며 인터넷 기반의 뉴 미디어 활동을 전개한 외에도 출판과 인쇄매체를 이용하여 기반을 넓혀 왔다.

반면에 기존의 레거시 미디어들은 언론 본연의 역할보다는 자신들의 이익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조선일보·동아일보는 태생적 한계, 즉 일제 식민지 시대 아래서의 적극적 친일 행적은 말할 것도 없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언론의 기본적 역할인 시시비비 가리는 것을 포기하는데서 더 나아가 기사를 적극적으로 왜곡, 가공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의 민주적 토대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동아, 조선투위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조선·동아·중앙’ 등 매체들은 더 이상 발행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할 즈음에 일반 시민사이에서도 이에 적극적인 호응이 있었고 이는 새로운 언론운동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조중동폐간 시민실천단 이득우 단장과 김병관 전 단장이 나란히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위 왼쪽 사진). 김병관 전 시민실천단장 지하철 내에서도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실천단은 발 닿은 곳 어느 곳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위 오른쪽 사진) 실천단이 소녀상지킴이들과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장면(아래 사진)  최병선 조선투위 위원 사진. 
조중동폐간 시민실천단 이득우 단장과 김병관 전 단장이 나란히 피케팅을 하고 있는 모습(위 왼쪽 사진). 김병관 전 시민실천단장 지하철 내에서도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실천단은 발 닿은 곳 어느 곳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위 오른쪽 사진) 실천단이 소녀상지킴이들과 연대투쟁을 하고 있는 장면(아래 사진) 최병선 조선투위 위원 사진. 

이 글에서는 ‘조선·중앙·동아 폐간 시민실천단’의 성립 과정과 현재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 보고자 한다.

2018년 7월 조선일보는 일본어판에서 한국민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요지의 글을 실었다. 이를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8월 1일 조선투위와 동아투위가 주관한 규탄집회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호응 아래 저녁 나절까지 이어져 한때 참가자가 수천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시위 구호는 자연스럽게 ‘조선일보 폐간’으로 모아졌다.

이후 언론자유라는 사회적 이슈와는 별개로 ‘조선·중앙·동아 폐간’이 언론 운동의 중심 테마로 자리잡게 되었다. ‘조·중·동’이 정치 상황에 따라 집권 권력을 갈아 치울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자신들의 보신을 위해서는 ‘언론자유’라는 보호막 뒤에 숨는 비열한 수를 쓸 여지를 처음부터 없애버리자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조선투위가 동아투위와 함께 코리아나호텔과 원표공원에서 조선일보의 한국인 폄하 보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지 1년 5개월 정도 시간이 흐른 시점. 2020년 1월 1일 조선일보 앞 원표공원에서 수염을 허옇게 기르고 검정 모자를 쓴 중년 남자와 그보다 약간 젊어 보이는, 결기어린 얼굴의 중년의 남자가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는 시위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폐간 시민실천단’의 초대 단장인 김병관, 2대 단장인 이득우였다.

초대 김병관 단장은 지리산 대피소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시절 지리산 설악산 북한산 정상까지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에 반대하여 1,000일 동안 지리산 천왕봉과 북한산 백운대에서 산상 시위를 하여 이의 포기를 관철시킨 경력이 있다.

이득우 단장은 전교조 출신으로서 논리와 글솜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언변마저 출중해 민들레를 비롯한 시민매체에 정기적으로 투고하고 있으며 촛불행동에서도 수차례에 걸쳐 발언자로 나선 바 있다. 

 

실천단 100일 투쟁 모습으로 민노총, 정의구현사제단, 민언련 등 20여개 단체가 실천단과 함께 조선일보, 동아일보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최병선 위원 사진.  
실천단 100일 투쟁 모습으로 민노총, 정의구현사제단, 민언련 등 20여개 단체가 실천단과 함께 조선일보, 동아일보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최병선 위원 사진.  
1000일 시위 후 기념사진을 찍은 동아, 조선투위 위원들. 왼쪽부터 최병선, 이명순, 이부영 위원장, 김동현 부위원장, 성한표 조투위원장, 신홍범 전위원장이다. 최병선 위원 사진. 
1000일 시위 후 기념사진을 찍은 동아, 조선투위 위원들. 왼쪽부터 최병선, 이명순, 이부영 위원장, 김동현 부위원장, 성한표 조투위원장, 신홍범 전위원장이다. 최병선 위원 사진. 

시위를 시작한 지 2~3일 만에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했다. 누구의 권유라고 할 것도 없이 자원해서 단원이 된 사람들이다. 평화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이필립 옹을 비롯해서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이었던 송환웅 선생, 일찍이 노동운동을 하셨던 염성태 선생, 평화재향군인회회장 김기준, 거의 반평생을 노조 활동에 몸 바치고 지금도 열정적인 전 콜트악기 노조원 출신의 방종운 지부장, 몸이 성치 않은데도 열성적이셨던 가루라 보살님, 이 바오로 선생등이 초기 열성 회원들이었다.

그로부터 만 4년 8개월째 광화문, 시청앞, 종각 일대에서의 가두시위와 조선일보 정문과 TV조선 앞에서의 피켓과 확성기를 이용한 시위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혹한기와 혹서기,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스스로 정한 행동 준칙을 우직스럽게 지키고 있다.

2020년 3월과 4월에는 원표공원에서 20여일, 2021년 11월에는 과천청사에서 각 2차에 걸쳐 15일씩 천막 농성을 했고, 2022년 1월에는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150일 천막농성 기간을 정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당시 혹한으로 밤과 새벽 기온이 영하 20도를 넘나들었다. 그날의 당번이 저녁을 먹고 돌아와 천막 안에 잡으면 식사후 마실 요량으로 갖다 놓은 뜨거운 커피가 꽝꽝 얼어 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텐트 안에서 온기를 유지시켜 주는 유일한 물건은 핫팩뿐이었다.

초창기 실천단원들이 먹물 지식인들이었다면 최근 실천단원들의 면모는 무척 다양하다. 지난주 원표공원과 조선일보 앞에서 시위에 나선 회원들은 전직 아파트경비원, 수원에서 올라오는 경력 50년의 농부, 은퇴한 간호사, 신문팔이와 중소기업 사환을 지낸 전직 조선일보 배달원 채도진, 다솜교회 장창원 목사, 양심수후원회 안병길 목사, 87세로 서거하셨으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주 2-3회 현장에서 피켓팅 하신 윤한탁 전교조 창립멤버, 올해 86세이신 김종순 옹, 장애인 인권인운동가 임수철, 새문안교회 출신 고성휘 교수 외에도 남대문시장에서 아동복 판매를 하는 신승철은 근년 들어 가장 열성적인 회원이다. 우선미 회원은 여성회원 중에서도 가장 몸을 아끼지 않고 모범을 보인다.

자신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 중에는 도시빈민운동가, 전직교사, 회사원, 노동자, 임업인, 자영업자, 평신도 지도자 등 전체 사회계층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실천단의 행사 중에는 2021년 4월 경에 50년 전 동아일보 앞에서 대학생들이 죽어가는 언론을 조롱한 것을 상기하며 반일행동 대학생들과 함께 언론화형식을 재현한 것이 이채롭다.

 

지난 8월 26일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정원 직원의 여기자 상대 성희롱의혹 규탄시위를 조선일보 앞에서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후에 해당 논설위원을 직위해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병선 사진.
지난 8월 26일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정원 직원의 여기자 상대 성희롱의혹 규탄시위를 조선일보 앞에서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후에 해당 논설위원을 직위해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병선 사진.

2022년 9월 26일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시민실천단의 ‘조·중·동 폐간 1000일 투쟁식’이 있었다. 참석한 시민단체는 동아·조선투위를 비롯해 언론소비자연맹, 민주노총,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함께 했으며 이들은 ‘조·중·동 폐간, 정의로운 시대 정신의 단호한 명령이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조선일보 앞으로 규탄 시위를 벌였다.

당시 조선일보 사옥 앞에는 엄청난 규모의 경찰 경비대원들이 포진하여 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보통 시민단체의 신고된 시위에 동원되는 경찰 병력 수와 위세에 견주어 볼 때 이때 조선일보 앞에서의 경비태세는 마치 정권의 핵심부를 방어하는 듯했다.

전 사회계층을 망라하는 이들 실천단원은 왜 ‘조·중·동 폐간’ 시위에 그토록 자발적이며 열성적인가. 누군가의 권유로 나선 것도 아니며 스스로 돈을 써가며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목청껏 ‘조선일보 폐간’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 국가의 근본 문제가 외세 의존 세력을 청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자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그동안 언론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거짓과 기만의 100여 년을 지내오면서 이 나라의 자주와 독립을 또 민주화를 끈질기게 방해 해온 조선·동아·중앙이기에 아예 이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각성한 민중은 이들이 가면 아래 숨겨온 반민주, 반민족의 민낯을 보게 된 것이다. 시민실천단의 피켓 구호는 초기 ‘부수 조작 국민사기 조선일보를 폐간하라’에서 ‘전쟁위기 부추기는 조선일보 폐간시키자’ ‘전쟁 책동 남북 공멸 획책하는 일본 찌라시 조선일보 폐간시키자’를 거쳐 ‘조선일보를 없애야 나라가 산다’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실천단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쟁 활동은 매주 토요일 행해지는 촛불 행동의 시가행진에서 코리아나호텔 앞을 지날 때면 으레 ‘조선일보 폐간하라’라는 구호를 수십차례 연호하는 장면에서 일반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의 ‘조·중·동 폐간’ 운동을 시민실천단이 성공적으로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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