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언론들, '윤 대통령 골프+거짓말' 파문에 침묵
노컷뉴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이틀 뒤 골프" 특종
주류 언론, "트럼프와 골프외교" 대통령실 해명만 전달
윤, 미 대선 전인 8월부터 골프장 출입 사실 드러나
경제·민생 악화· 미 도발위기· 김건희 사태에도 골프
2006년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기사 홍수와는 달라
유명 정치인이나 고위직 공무원이 부적절한 타이밍에 골프를 치거나 음주가무를 즐기다 언론에 보도돼 곤욕을 치른 사건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군홧발 독재자들이야 골프는 말할 것도 없고 음주가무나 여색을 맘놓고 즐겼겠지만 적어도 문민정부 시대에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같은 고위직 공직자나 국회의원에게 이런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공무원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 중 골프를 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골프 대신 테니스를 즐겼다.
대통령을 빼고 최고위급 공직자인 국무총리의 골프 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돼 온 나라를 들썩인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의 이해찬 총리다. 평소 골프를 즐겼는데 강원도 산불과 여름철 홍수가 발생한 날, 그리고 삼일절 휴일에 라운딩을 한 게 문제였다. 삼일절 골프 회동은 그날이 휴일이긴 했지만 국경일인데다 철도파업이 시작된 날이어서 ‘부적절 처신’이라며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삼일절 골프 파문 당시 언론이 이를 얼마나 격렬히 비판했냐면, 3월 한달 동안 9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와 3개 지상파 방송, 뉴스전문채널 YTN에서 무려 1천여 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빅카인즈 ‘이해찬&골프’ 검색 결과). 한 개 매체가 대략 100개 가까운 기사를 쓴 것인데, 이 정도면 이 총리 골프 스캔들은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고 할 수준이다. 언론이 사회적 의제(아젠다)를 만들어내거나 여론을 조작하는 방식이다.
모든 언론이 이 ‘사건’ 보도에 뛰어들어 수많은 보도를 쏟아냈을 뿐 아니라, 모든 기사가 예외없이 이 총리를 비난하는 논조였다. 나아가 이 사건을 로비 의혹이 있는 ‘게이트’, 즉 정권의 부정부패 차원으로 확대하고 몰아갔다.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구설수’ ‘물의’ ‘게이트’ ‘의혹’이란 표현으로 파문을 키우고 ‘골프나 치고’ ‘책임져야’ ‘의혹의 끝은 어디’ ‘국민 그만 괴롭히라’며 조롱했다. 이 총리는 세 번이나 사과하고 결국 총리직을 그만뒀다.
윤석열 대통령이 몰래 골프를 치다 걸렸다. CBS노컷뉴스가 이를 단독보도해 알려지게 됐는데,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하고 이틀 후인 9일 서울 노원구 태릉CC에서 약 4시간 동안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여러 언론이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대통령실은 “골프를 좋아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외교’를 하기 위해서 8년 만에 골프채를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컷뉴스와 민주당의 확인 결과 윤 대통령은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인 2일에도 골프를 쳤을 뿐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인 한미 군사훈련 기간, 북한이 ‘중대 성명’을 내고 오물풍선을 날려 군이 비상체제에 들어간 날 등 이미 8월부터 골프장을 들락거린 것으로 밝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골프장 출입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이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국민 앞에서 고개까지 숙여가며 사과 기자회견을 한 직후 골프장에 놀러 간 대통령의 뇌 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북한이 남한의 무인기 평양 침투에 대해 ‘보복조치’를 선언해 군사적 긴장이 치솟고 있던 그날,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려보내 서울 수도권 시민들이 긴급문자를 받고 있던 그날,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이틀 앞둔 그날, 자신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진 갤럽 여론조사가 나온 그날, 서울 시청 앞과 전국 곳곳에서 수십 만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을 외쳤던 그날, 대통령 윤석열 씨는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나이스샷’을 외쳤던 것이다.
이 정도면 앞에서 사례로 든 이해찬 총리 골프 사건보다 10배 많은 보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다.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그것도 이렇게 ‘부적절한’ 타이밍에 골프를 치러 다녔으니 사실 확인 기사와 비판 사설·칼럼이 언론에 ‘도배’될 만 하다. 타이밍만 부적절한가? 지금 국내 경제 상황을 보라. 주식시장에 ‘트럼프 랠리’가 벌어져도 한국만 주가가 하락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섰다. 물가는 오르고 내수는 쪼그라들어 자영업자들이 파산하고 월급쟁이 지갑도 얇아졌다. 재정적자, 가계부채, 생산과 투자 등등 경제지표가 어느 것 하나 좋은 게 없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발표도 나왔다.
경제만 문제인가? 자신의 부인 김건희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연일 터지고 있고 지지율이 17%까지 추락해 국정운영 동력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의료대란은 1년째 미해결 상태고, 전국 대학에서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탄핵’을 외치고 있다. 나라가 어디로 갈지 온통 혼란스러운데 대통령은 몇 개월 전부터 골프장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조용한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노컷뉴스가 첫 보도를 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언론보도는 거의 없다고 볼 정도로 적다.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외교를 위해 준비한 것” “군통수권자가 군 시설에서 운동하는 것이어서 문제없다”는 대통령실 해명 받아적기(문화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YTN등) 바쁘다. KBS는 이와 관련된 보도는 아예 없고 그저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사랑’을 보도할 뿐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비판을 전하면서 마치 이를 정쟁인 것처럼 축소·호도하는 기사도 있다.
주류 언론들은 “골프 외교 준비용”이라는 대통령실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토를 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슨 신기(神氣)라도 있어서 미국 유수 언론들도 예측하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8월부터 알고 ‘골프 외교’를 준비했다는 것인가? 대통령실이 이런 거짓말을 해도 언론은 받아쓰기만 할 뿐이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 불법 도청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에 쫓겨났다는 사실을 우리 언론은 모른 척하는 것이다. 혹은 그동안 나온 수없이 많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짓말 때문에 이번 거짓말이 뉴스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주류 매체 가운데 동아일보만 “尹 골프를 ‘외교 준비’로 포장한 용산… 스스로 민망하지 않나” 제목의 사설(14일자)을 냈을 뿐이다.
우리 주류 언론들의 이중 잣대 문제는 오래됐고 정도가 심하기도 하다. 이중 잣대가 오로지 극우·기득권 세력 쪽으로 편향된 것도 문제다. 이런 이중 잣대로 중요한 이슈를 키우거나 줄여 사회적 의제와 여론을 조작하는 데에 능숙한 것이 주류 언론들이다. 주류 언론들이 이 모양이니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일이 쉬울 리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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