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후보가 된 부통령 험프리는 존슨 2.0

1968년처럼 후보가 된 해리스는 바이든 2.0

68년엔 뉴딜체제가 무너지는 신호 못 알아채

올해는 다극화시대 대처 같은 큰 그림 못 그려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과거의 되풀이는 미래 구상 능력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

11월 5일, 미국 대선이다.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두 후보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바이든을 쉽게 넘겼던 트럼프는 정작 새로 맞이한 해리스 후보에 고전하고 있다. 10일 토론회 직후의 CNN 조사에서는 해리스가 잘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63% 대 37%) 나타났다. 불꽃튀는 선거전을 예상케 한다.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당락 자체와 함께 달라질 국가의 향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에 관한 해리스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계기와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정치의 특성상 예측은 어렵다. 그럼에도 답은 ‘가능성 낮음’이다. 오히려 해리스는 바이든 2.0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후보자의 역량도 불확실하지만, 더 큰 이유는 민주당의 역사가 그렇기 때문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F. 루스벨트의 뉴딜 이후, 60년대의 ‘위대한 사회’ 프로젝트 정도를 제외하면, 당은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는 인민의 뜻 앞에서 대체로 주춤하거나 오히려 반동의 길을 선택해 왔다.

민주당의 1968년 대선 준비 내용과 경과는 그를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사례다. 그리고 2024년의 민주당은 68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불출마하고, 부통령이 후보직을 승계하며, 전쟁론—68년은 베트남 전쟁, 24년은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이 당을 주도하는 상황 등이 그것이다.

1968년, 전쟁으로 밀려난 대통령 존슨

 

68년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은 대선 불출마를 공표한다(사진참조). 결정적 요인은 베트남 전쟁이다. 그해 1월 북베트남군은 케산의 미 해병 기지 기습을 시작으로, 남베트남 전역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다. 테트(베트남어로 음력 설) 대공세다. 전투에서는 미군과 남베트남이 이겼지만, 수천 명의 전사자를 낳은 상처뿐인 승리였고, 이후 북베트남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당시 CBS 앵커였던 W. 크롱카이트는 2월 17일, 구정 대공세 현장을 직접 찾았다. “미국은 지금 늪에 빠져있다. 협상으로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전 여론은 높아갔지만, 존슨은 재선 가도를 크게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3월 12일,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대선후보 첫 번째 경선에서, 그는 반전을 기치로 내건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E. 매카시(멸공주의자 J. 매카시와는 전혀 무관함)에게 졌다. 24명 대의원 중 매카시 20, 존슨 4. 존슨은 경악했다.

전략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테트 공세는 미국과 남베트남 패배의 시작이었다. 이유도 명분도 없는 전쟁에서 패하는 미군의 처참한 모습. 그것이 존슨 대통령을 재선 가도에서 밀어냈다.

2024년, 무능력으로 밀려난 대통령 바이든

 

지난 7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를 사퇴한다고 발표했다(사진참조). 6월의 후보 토론회 이후 인지능력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꿋꿋했고, 발표 이틀 전 시점까지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압력, 경합주 패배라는 선거팀 내부의 여론조사 결과, 거액 후원자들의 교체 요구 등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그것도 예비선거에서 후보로 확정된 대통령이 중도 사퇴한 첫 번째 사례다. 사실 바이든은 임기 내내 낮은 지지율에 시달렸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의 임기 평균 지지율은 52%다. 그런데 바이든은 43%, 41%의 트럼프와 함께 최하위권이다. 특히 그의 올해 1분기 지지율—재선에 나서는 대통령의 첫 지지율 수치—은 39%로, 지난 70여 년 동안 같은 기간 여론조사 최저 기록이다.

대외적으로는 국가와 당을 위한 결단이라고 선전하지만, 바이든은 실상 당선 가능성 제로를 이유로 강제 퇴출당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7월 18일자)은 이를 ‘무대 뒤의 쿠데타(backstage coup)’라고 불렀다.

1968년, 후보가 된 부통령 험프리는 존슨 2.0

 

H. 험프리 후보 지명자, 8월 29일 전당대회.
H. 험프리 후보 지명자, 8월 29일 전당대회.

68년, 민주당은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H. 험프리를 대선후보로 선출한다. 그는 예비선거에 나서지 않았었다. 늦게 출발한 데다 존슨의 대리인이라는 비판 여론 때문에 패배를 우려했다. 대신 전당대회 후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확보에 주력했다. 각 주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예비선거에 출마하고 그가 확보한 대의원을 험프리에게 양도하는 식이었다. ‘두목 정치(bossed convention)’ 전술이라며 비난받았다. 기존 민주당 조직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애초 가장 앞서가는 후보는 매카시였다. 그런데 3월 중순, 로버트 케네디(뉴욕주 상원의원. 63년 암살당한 존 케네디의 동생)가 전쟁 종식을 메시지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 이후 6월에 들어서자, 케네디 우세가 확연해진다. 워싱턴DC, 인디애나,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 그리고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까지 연이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길목에서 케네디는 암살당한다. 6월 5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 캘리포니아 승리 축하 모임이 끝난 직후다.

같은 당내에서 현직 대통령에 맞서 도전장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매카시와 케네디가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다. 이들은 반전-종전을 기치로 내걸었다. 험프리는 이를 무책임한 주장으로 몰았다. 뜻깊은 정책경쟁이 될 수 있었지만, 암살은 새 정치의 가능성을 꺾고 말았다. 당은 결국 존슨의 당으로 되돌아갔고 그렇게 선출된 후보 험프리는 존슨 2.0이었다.

2024년, 후보가 된 부통령 해리스는 바이든 2.0

 

K. 해리스 후보 지명자. 8월 22일 전당대회
K. 해리스 후보 지명자. 8월 22일 전당대회

지난 8월, 민주당은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K. 해리스를 대선후보로 선출한다. 그는 예비경선에 나서지 않았다. 대통령 바이든이 대선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도전자도 없었던 예비선거는 그를 추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바이든이 사퇴했다. 공석이 된 대선후보는 미리 정해진 해리스에게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지지 선언이 이어지고 천문학적 후원금이 모였지만, 예비선거를 거치지 않은 해리스의 후보 자격에 절차적 하자 문제가 제기됐다. 당은 8월 초 대의원 대상으로 서둘러 온라인 투표에 들어갔다. 형식적 과정이었다. 해리스는 이렇게 선출됐지만 실상은 ‘임명(anoint)’된 것이었다. 펠로시나 오바마 같은 영향력 있는 당내 인물들이 주동했다. 아래로부터의 선출 과정은 요식행위였다. 매우 편리한 민주주의였다.

해리스는 얼떨결에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은 인물이다. 출마나 선거전략도 준비하지 않았고, 정치인으로서 역량을 검증받은 적도 없다. 기실 바이든 정부는 전쟁에서만 유능(?)하다. 임기 동안 중국과는 경제전쟁을, 22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이 러시아와, 23년부터는 사실상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전쟁 중이다. 전쟁 지속론과 트럼프 망국론을 내세운 해리스의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은 바이든 메시지의 2.0 버전이다.

전쟁 또 전쟁의 민주당 — 베트남과 팔레스타인

68년, 50만의 미군이 베트남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미군은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테트 공세 이후 전사자만 매달 천여 명 가까웠다. 웨스트모어랜드 사령관은 20만의 추가 병력을 요청했다. 존슨 대통령은 거부했고, 사령관은 6월 해임됐다.

 

왼쪽. 1968년 후에 부근에서 악전고투하는 101 공수여단의 모습. 오른쪽, 1973년 1월 27일. 베트남 종전협상 완료 소식을 전하는 성조지 1면
왼쪽. 1968년 후에 부근에서 악전고투하는 101 공수여단의 모습. 오른쪽, 1973년 1월 27일. 베트남 종전협상 완료 소식을 전하는 성조지 1면

미국은 북베트남을 물자도, 무기도, 전투력도 형편없는 제3세계의 오합지졸 국가 정도로 간주했다. 정부 관료나 장군들은 미국이 승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민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고 특히 당시의 언론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정부의 주장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전했다. 베트남 전쟁은 이유 없는 전쟁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공산주의가 동남아를 휩쓸고 세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쟁 논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왼쪽. 가자와 서안을 보여주는 지도. 오른쪽. 6월 2일, 텔아비브. 네타냐후 사임 요구 집회. 시위대 현수막에, ‘바이든은 인질 석방을 위해 네타냐후에 압력을 가하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왼쪽. 가자와 서안을 보여주는 지도. 오른쪽. 6월 2일, 텔아비브. 네타냐후 사임 요구 집회. 시위대 현수막에, ‘바이든은 인질 석방을 위해 네타냐후에 압력을 가하라’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023년 10월 7일의 하마스 공격 이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보복 학살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4만이 넘는다고 말하지만, 지난 6월까지 이미 20만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자뿐 아니라 서안까지 공격하는 중이다(지도 사진 참조).

바이든 정부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하루 두 차례씩, 배나 비행기 편으로 쉼 없이 이스라엘에 살상무기를 공급한다. 대통령이 종종 민간인 피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저 체면상 뱉는 말일 뿐이다. 이들이 막강한 테러 조직이라 몰아세우는 하마스는 기실 미국이 키운 조직이다. 이라크 전쟁의 와중인 2005년, 중동에 민주주의의 실천이 중요하다며 당시 국무장관 C. 라이스와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자치 선거를 시행했다. 하마스는 이 선거에서 승리한 가자의 합법 정부다. 또 점령군에 대한 무장 저항은 유엔도 인정하는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행위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와 주류 언론은 하마스는 야만의 테러 조직이며 이스라엘은 자위권이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민주당의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68년 민주당은 전쟁 때문에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했음에도, 전쟁을 내세운 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다. 24년 민주당은 무능 때문에 대통령이 재선 가도에서 밀려났음에도,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는 부통령을 후보로 선출했다. 68년 민주당은 반공주의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전쟁을 이끌었고, 24년 민주당은 반푸틴-반테러라는 허상에 사로잡혀 전쟁을 이끌고 있다. 차이라면, 68년에는 새 정치의 가능성이 암살로 제거됐다면, 24년에는 아예 그 싹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는 반복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희극으로.’ 그 다음이 더 큰 비극일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를 반성하고 학습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반동의 역사를 마르크스는 그렇게 경고했다. 68년의 민주당과 24년의 민주당이 꼭 그 형국이다.

68년이 민주당에 비극인 것은 대선 패배뿐 아니라, 전쟁과 암살, 도시 민란 같은 당시의 국내외적 혼란이, 당이 이룩한 20세기 최대의 정치적 성공작인 뉴딜 체제가 무너지는 신호였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무지에 있다. 24년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사회경제적 격차는 더 벌어지고,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채무는 감당 불가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일극 체제에서 다극화 시대로 달라지는 신호가 분명함에도 민주당은 문제의 실상과 지정·지경학적 변화를 외면한다. 그때의 민주당이 뉴딜의 대안 모색에 게을렀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신보수-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 다극화 시대 대처 같은 거대전략 수준의 사고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당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내부의 개혁 과제를 풀지 못하고 전쟁 이외의 국제관계를 상상치 못한다. 새로운 국가 비전을 담아내는 미래 구상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미국의 국내적 어려움(예: 천문학적 국가채무)이 가중되고 국제적 위상이 쇠락(예: 다극화 시대)하는 근원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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