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계급의 문화선전대로 전락
사안마다 지배 엘리트 관점 전파
물적 토대와 이데올로기 도구라는 문제
정보 독과점, 여론조작 시대는 지나갔다
탈진실의 시대, 진실 규명은 독립언론의 몫
안팎으로 세상이 어지럽다. 국내의 ‘계엄 코미디’부터 해외의 전쟁까지, 모두 다 정치가 가장 큰 주범이다. 그 못지않게 허위·왜곡 뉴스를 일삼는 언론, 특히 주류 매체도 주범 중 하나다. 이는 어제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닌, 해결 난망의 과제다. 최근의 가장 큰 가짜뉴스 사례는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이다.
지난달 20일, 여의도 의원회관에서는 ‘전쟁, 다극화, 그리고 한반도’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필자는 그 중,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 북한군 파병설을 중심으로’라는 발제의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몇몇 현직 기자들에게 물었다. ‘왜 기자들은 아무 증거도 없는 북한군 파병이라는 가짜뉴스를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하는가?’
종북, 반미, 친중, 친러로 찍히기 싫어!
아래 그들의 답변을 그대로 인용한다. 너무나 생생한 답변이라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 국정원 등 우리 정부 당국이 나서서 ‘사실’이라고 발표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대로’ 믿는다. 윤석열 정부는 그렇더라도 미 국무부, 국방부까지 ‘확인’했다면 ‘사실’이라고 받아들인다. 미국이 그런 것 갖고 거짓말하겠느냐는 생각이 깊게 박혀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일단 클릭률이 높고 오보를 내도 북한이 항의하는 것도 아니어서 기회가 되면 마구 지른다.”
“1. (주류의) 보도 흐름에서 벗어났을 때 감당해야 할 무언의 압박감이 있거나, 2. 전반적 보도 흐름의 문제점을 가려낼 능력이 없거나, 3.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정통하지 못한 데스크나, 회사의 방침도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
“평균적 기자들의 경우, 종북, 반미, 친중, 친러란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꽤 조심도 할 것 (…) 예전과 달리 다수, 기득권 의견을 따르는데 익숙하지, 소수 의견을 제기하는 수고를 꺼린다.”
“(그러니) 북한 파병설을 ‘거짓 정보’라고 주장하는 소수의 의견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 아마 (주류 매체) 기자 상당수는 아예 의도적, 능동적으로 왜곡 보도를 한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그럼 회사서 더 잘 나가구…”
이들은 북한 관련 사안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반북’으로 매진하면서 기자의 1호 덕목인 의심조차 발동하지 않는다.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감당 불가능한 위험이 한반도를 휩싸든, 그건 일단 뒷전이다. 정부 발표와 다르거나 비판적인 관점, 견해, 판단은 ‘친북’으로 취급, 주변으로 밀어버리거나 다루지 않는다. 사회 전반, 언론사 내부, 그리고 기자 개인에게 스며있는 ‘반북 DNA,’ 즉 반공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한편으로 이 같은 행태는 소위 엘리트라는 기자들의 사고능력이 빈곤하다는 것, 또 그들이 속해있는 언론기관 역시 비슷한 수준의 조직임을 말해준다.
사고능력 빈곤한 기자 엘리트들, 미국도 그리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들면서, 미국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모범처럼 말한다. 미국의 언론도 한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까? 겉으로는 그래 보이지만, 근본적인 차원에서 실상은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많은 언론학자는 미국의 대중매체가 각종 사안을 다룰 때, 지배 엘리트 계층의 관점에 맞춰 여론을 조작한다고 비판한다. 허위·왜곡 정보로 대중을 선동하고 정부의 강경한 대외정책을 선도해왔던 미국 미디어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진다. 언론 신뢰도가 기록적으로 추락한 배경에는 그런 거짓말의 역사가 놓여 있다.
지난 10월,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 갤럽은 1972년부터 2024년까지, 52년 동안의 대중매체 신뢰도 변화추이를 조사·발표했다. 2024년의 경우, ‘언론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36%(푸른색 점선),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33%(하늘색 점선), 둘을 합하면 언론 불신도는 무려 69%다. 70년대에는 정반대로 언론 신뢰도가 70%였다. 80년대를 지나면서 신뢰도는 매우 빠르게 추락. 현재의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허위·왜곡의 ‘아무말 대잔치’가 부른 언론 불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복잡하게 설명해야 할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실상을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래 사진을 보자. 위의 것은 11월 1일 자 워싱턴포스트, 아래는 2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화면을 캡쳐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돈벌이를 위해 러시아에 군대를 파병했다고 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미사일 무기체계와 방공망을 박살냈다고 썼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증거에 따르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가짜뉴스고, 미사일 무기체계와 방공망이 박살 난 쪽은 이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두 매체는 사실과 증거, 상식과 이성을 벗어나 문자 그대로 허위·왜곡의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러니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이는 극히 최근의 사례일 뿐, 미국 언론이 벌인 허위·왜곡 나아가 은폐의 목록은 끝없이 길다. 말할 나위 없이 언론이 언론다운 역할을 한 사례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한 정치-미디어 전문가는 2023년 미국 주류 언론의 행태를, ‘우크라이나 전쟁 키우기, 중국 위협 과장하기, 이스라엘 전쟁 배경 설명하지 않기’라고 요약한 바 있다.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미국의 패권은 말하지 않고 러시아나 중국을 패권적이라고 비난하는, 맥락은 빼고 목전의 현실이 전부인 듯 보도하는, 주류와 다른 비판적 의견은 무시하는, 군사주의적 대외노선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사안을 판단하는, 남에겐 엄격하고 자기에겐 관용적인, 주류 매체와 기자들의 모습을 그렇게 정리한 것이다. 2024년 올해도 주류 매체와 기자들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언론의 정체성과 행태에서 근본적 차이를 찾기는 어렵다.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두 가지 이론을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선전대 혹은 돈에 종속된 지식인 집단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사회(국가)를 유지·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개의 조직적 장치를 프랑스 사회학자 알튀세는 그렇게 불렀다. 지배 엘리트는 경찰, 군대 같은 물리적 억압 기구와 미디어, 학교 같은 이념적 설득 기구를 동원, 지배와 권력을 이어간다. 미디어는 여기서 지배체제에 복무하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생산·유포하여, 인민의 동의를 확보하는 문화선전대로 작동한다. 미디어 조직과 종사자는 지배 이데올로기 확산의 도구로 쓰인다.
두 번째는 물적 토대론이다. ‘물적 토대가 존재의 의식을 결정한다.’ 상부구조-하부구조라는 용어로 마르크스가 설명한 사회구성체 이론의 핵심을 가장 간명하게 줄인 표현이다. 이를 언론에 대입하면, 매체의 경제적 토대가 매체의 내용과 기자들의 사고와 행태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광고 수익으로 생존하는 자본주의 체제 주류 매체와 그 구성원들은 근본적으로 친기업, 친자본, 친 기득권 체제 성향을 띨 수밖에 없다.
두 이론은 주류 매체와 구성원들의 반동적 행태를 설득럭 있게 설명한다. 그러나 두 설명 모두 절반 정도만 맞는다고 해야 한다. 우선은 도식적이고 결정론적이다. 너무나 꽉 짜인 구조의 논리인지라 문제에 대한 개입의 경로, 즉 대안의 여지를 찾기가 극히 어렵다. 이런 점을 들어 이를 ‘인식의 제국주의(cognitive imperialism)’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도 있다. 구체적 현실과 동떨어진 면도 문제다. 앞서 인용한 미국 언론의 신뢰도 그래프가 보여주듯, 70년대 미국 언론은, 여전히 자본주의-엘리트 지배체제였지만, 명성과 신뢰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또 끈질긴 비판과 저항운동으로 따지면 한국 언론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역사를 품고 있다.
베조스의 고백과 계엄군의 겸손공장 장악 시도가 뜻하는 것
여기서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탈진실이란 객관적 사실-진실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각자의 관점이나 믿음이 그것을 대치하는 사회현상을 뜻한다. 왜, 어떻게 이런 현상이 조성됐는가를 여기서 다루진 않겠지만, 작금의 언론사와 언론인의 행태를 보건대, 주류 매체는 객관적 사실-진실에 그리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그래서 사실-진실을 밝히려고 그리 노력하지도 않는다. 대신 해당 사안에 대한 정치·경제의 권력자들, 곧 지배 엘리트들의 관점과 의견—흔히 내러티브라고 부르는—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와 다른 것은 의혹, 주장, 비난 수준의 발언으로 취급한다. 북한군 러시아 파병 가짜뉴스가 그 적나라한 실상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여전히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언론의 주역이라고 믿는다.
이 같은 주류 매체의 행태를 직설적으로 비판, 세간의 눈길을 끈 사람이 있다. 워싱턴포스트 회장 J. 베조스다. 그는 민주당 해리스 후보 지지 논설을 신문에 싣지 말라고 지시했다.
언론탄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건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누가 신문의 후보 지지 사설을 보고 투표하겠는가. 너희들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현실을 너희들만 모르고 있다.” 베조스 회장은 언론의 신뢰도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이는 주류 언론사, 그것도 워싱턴포스트라는 유서 깊은 신문의 소유주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매체의 실체를 드러낸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디어 진입장벽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권력의 정보통제 시대, 주류 매체의 정보 독과점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라고 해서, 또 주류 매체가 외면한다고 해서, 사실-진실이 가려지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럴수록 오히려 사실-진실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진다. 그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이 점차 독립언론의 몫으로 정착해가고 있다. 한 판의 블랙 코미디로 끝난 12/3 윤석열 비상계엄 사태에서, 군이 주류 매체가 아니라 유튜버 김어준의 겸손공장 스튜디오 주변 봉쇄에 투입됐다는 것은, 그러한 언론지형의 변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탈진실이 아니라, 많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진실의 시대가 생각보다 훨씬 일찍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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