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미국에 전쟁은 잔혹한 '악마 사냥'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벌인 '팔 홀로코스트'
가자 어린이 사망자, 우크라이나의 77배
베트남전 때 '무차별 사격 지대' 설정도
2차대전 때 독일 융단폭격, 일본엔 원자폭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두 전쟁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대규모 민간인 살상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스라엘 자행 '팔레스타인 홀로코스트'
가자 어린이 사망자, 우크라이나 77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만 2년인 지난 2월 영국의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은 민간인 총사망자가 1만 500명이고, 그중 어린이는 587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가자 전쟁이 시작되고 만 8개월인 지난 6월 또 다른 영국의 국제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은 민간인 총사망자 약 3만 8000명이고, 그 가운데 어린이가 약 1만 5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숫자를 다시 보자. 민간인 사망자는 2년 1만 500명 대 8개월 3만 8000명이고. 어린이 사망자는 2년 587명 대 8개월 1만 5000명이다. 평면적 숫자만 비교해도 민간인은 약 4배, 어린이는 26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월평균 사망자로 비교하면 민간인은 약 11배, 어린이는 77배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권위 있는 의학저널 란셋은 실제 가자 사망자는 3만 8000명이 아니라 20만 명에 가까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에 물, 식량, 의약품 차단까지 합하면 이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가 된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 홀로코스트'다.
민간인 학살 전쟁방식, 미국서 배웠다고?
베트남전 때 '무차별 사격 지대' 설정도
민간인 살상은 비인도적 전쟁범죄일 뿐 아니라 국가가 자행하는 테러 행위다. 이스라엘은 왜 이리 잔혹한 방식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 그 기원을 따지는 건 여러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연구 주제다. 여기서는 한 가지 실마리에 주목해 보자. 미국 독립언론 인터셉트는 작년 11월 12일, 민간인 살상으로 얼룩진 미군의 잔혹한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가자 전쟁을 거론하고 있다(사진 참조).
인터셉트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과 각료들은 자신들이 자행하는 학살의 전쟁방식을 미국에서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민간인(들)이나 민간인 거주지에 대한 무차별 공중폭격은 2차대전 이래 미군이 계속 활용한 방식이고, 지상전 때 어린이, 여성 등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살상 역시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자주 써먹었던 방식이다. 이를 위해 '무차별 사격 지대(free-fire zone)'까지 설정했다. 이스라엘 군과 각료들의 이런 발언에 미국 외교관들은 경악하고 있다고 인터셉트는 전했다.
'미국에서 배웠다'란 이들의 말은 책임 전가다. 그러나 미국도 크게 할 말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고, 잔혹한 전쟁 수행 방식 역시 미군의 오랜 관행이자 전통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때 독일 융단폭격, 일본엔 원자폭탄
무차별 사격 수칙…'움직이는 것 무조건 쏜다'
잔혹한 전쟁 수행 방식이란 의도적으로 자행하는 민간인 살상을 지칭한다. 앞서 말한 무차별 공중폭격 그리고 무차별 사격 같은 공격행위가 대표적이다.
2차대전 때 미국은 영국과 함께 독일 도시 150여 곳에 공중폭격을 퍼부었다. 초기엔 군부대나 군사시설을 겨냥한 주간 공습 작전을 폈다. 그러나 '아군' 폭격기의 피격·추락 피해가 늘어나자, 융단폭격 방식으로 바꿨다. 함부르크,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등 대도시는 물론 작은 마을까지 불바다가 됐다. 전쟁 기간에 60만 명 가까운 민간인이 화염에 휩싸여 죽었다.
2차 대전 융단폭격의 정점은 원자폭탄 투하다. 이미 64개에 이르는 도시를 공습한 미군은 끝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두 도시에서만 무려 20여만 명이 사망했다. 공습에 의한 대량 살상 문제가 제기되자 루스벨트 미 행정부의 전쟁장관 H. 스팀슨은 '히틀러보다 미국이 더 잔인하다는 오명을 쓰게 되지 않을까?'라고 염려하기도 했다.
'무차별 사격 지대'란 특정 지역뿐 아니라 전투 수칙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움직이는 것은 무조건 쏜다'이다. 통행금지 시간 이후 움직이는 자는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적인지 아군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 살상의 대명사인 '미라이 학살'은 바로 이 수칙의 산물이다. 이 수칙은 또 지상전뿐 아니라, 공중폭격, 헬기 공격, 야포 사격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전쟁 중 미군이 사살했다는 적군 중 1/3은 민간인이고, 무차별 사격 수칙은 피해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영토확보가 아니라 적을 찾아내고 섬멸하는 것이 목표였던 베트남 전쟁에서 전과는 사살한 적의 숫자로 평가됐다. 이 같은 전쟁 논리 앞에서 무차별 공격 수칙과 민간인 피해는 필연적이었다.
미군의 잔인한 전쟁 수행 방식의 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내내 인디언 학살과 강제 집단추방이 있었고, 20세기 초기에는 남미 각국에 '바나나 전쟁'이 있었다. 무차별 공습과 뒤따르는 민간인 학살은 한국, 캄보디아, 라오스, 아프간,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계속됐다. 지난 1백 년 동안 참혹한 비극인 민간인 살상은 미군의 전쟁과 거의 늘 함께했다.
미국 국방예산법에 '민간인 피해 최소화' 조항
미 '무기 원조지침' 이스라엘 제재 방안 부재
물론 이와는 다른 얼굴의 미국도 있다. 민간인 살상을 줄이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2차대전 초기인 1942년 1월, 미국은 '민간인 피해 배상법(Foreign claims act, 약칭 FCA)'을 제정한다. 해외 전쟁 중에 발생한 민간인 피해를—사망, 부상, 재산 손실 등—배상하는 내용이다. 2019년 국방예산법에도 '민간인 피해 최소화' 조항이 들어 있다. 9·11 사태 이후 20여 년 이어진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의 민간인 살상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 게 그 계기가 됐다.
아프간과 이라크전쟁 초기인 2001~2007년 기간에 미국은 법에 따라 민간인 피해자에게 총 3200만 달러의(현재 환율로 약 400억 원) 배상금을 지급했다. 지상전 중심의 상황에서 미군의 잘못을 가리기가 비교적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습 위주로 전술이 바뀌면서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졌고, 배상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일례로 2014~17년 3년 동안 미국과 영국 등의 이라크와 아프간 공습은 3만5000회에 달했지만, 피해가 인정돼 배상받은 사례는 단 한 건에 단 한 명뿐이었다.
올 2월, 바이든 행정부는 무기 원조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피해 규모 최소화 노력을 하지 않고 있고, 이는 미국의 무기 지원 정책에 어긋나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 무기를 지원받는 국가의 전쟁행위가 미국의 외교·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고려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잔혹한 전쟁행위에 미국도 함께 엮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면서 꺼내든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이 지침에는 미국의 무기 지원 정책 수정과 보완, 이스라엘 제재 같은 구속력 있는 대안은 빠져 있다.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뭔가 시늉은 하지만, 실천은 빈약한 미국의 위선과 이중성을 보여준다.
미군이 개입한 전쟁은 왜 잔인한 것일까?
문제는 인종 편견·공포심·가해자 불처벌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다. 전쟁은 본래 잔혹하다. 그러나 전쟁에도 법이 있고 금지된 행동이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의 차이를 언급했듯 국가마다 전쟁방식이 다르다. 잘 알려져 있듯 건국 이후 대략 250여 년 미국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해는 고작 15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의도적 민간인 살상은 미국의 전쟁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다. (사진 5)
왜 미군의 전쟁은 잔인한 것일까? 한국과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연구는 미군이 품고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민간인 학살의 큰 원인으로 들고 있다. 최강이라는 미군이 실전에서 패배에 몰릴 때 나타나는 당혹감과 공포심 역시 민간인 무차별 학살의 심리적 원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주목할 것은, 2021년 12월, 뉴욕 타임스가 시리즈 특집으로 보도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의 민간인 살상 사태다(기사 사진 참조). 기사는 민간인 피해의 큰 이유로 공격 정보, 지역, 대상 등의 오류를—의도적이든, 착오든—지적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의 실시간 판단이 거의 불가능한 공습 상황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또 살상 가해자에 책임을 묻지 않는 군 내부의 풍토도 민간인에 대한 잔인한 공격이 빈발하는 배경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선한 십자군' 미국에 전쟁은 '악마 사냥'
미국을 '영구전쟁'으로 이끄는 아메리카니즘
이는 중요한 관찰이지만 드러난 현상과 원인에 대한 일차적 분석이다. 더 들여다봐야 할 것은 미국이 내세우는 전쟁의 목적과 이유, 교전 상대방에 대한 특정한 사고방식, 즉 미국의 전쟁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물론, 전장에서의 행위는 바로 이 이데올로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천착해 온 미국학자 R. 아이비는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은 자칭 타칭 문명의 십자군, 민주주의의 수호자이다. 문명의 십자군에게 부여된 신의 소명은 자유와 민주의 질서를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지키는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자유의 제국(liberty of empire)' 미국이 맡은 역할이다. '선한 십자군'은 세계 곳곳으로 진격하며 자유와 민주의 빛을 발한다. 이런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미국은 선이고 여기에 도전하거나 저항하는 자는 문명과 자유, 민주에 반하는 야만적 악의 세력이다. 악의 세력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파괴 또는 섬멸의 대상이다. 적과의 전쟁은 따라서 '악마를 사냥하는 행위(hunting the devil)'다. 잔인할 수밖에 없다.
오만한 자아도취의 아메리카니즘으로 종교적 근본주의 냄새가 물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이 같은 전쟁 이데올로기는 건국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진다. 인디언은 문명의 적이었고, 냉전기의 소련은 '악마의 제국'이었으며, 지금의 러시아와 중국은 독재국가, 이라크, 이란, 북한은 깡패 국가, 하마스는 테러 집단이다. 이렇게 아메리카니즘은 전쟁의 이유와 목적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면서 미국을 '영구 전쟁(forever war)'의 길로 이끈다.
그런 미국을 네오콘 집단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하나인 R. 케이건은 '위험한 나라(Dangerous nation)'라고 불렀다. '독재자에게, 미국식 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에게, 미국의 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나아가 평화와 협력의 대안을 추구하는 제 나라 사람에게까지, 미국은 위험한 나라다.' 그러나 오만한 아메리카니즘의 미국은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민과 세계인에게 위험한 나라이다. 이를 모르거나 무시할수록 위험성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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