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군사적 대결과 도발의 시간 아니었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패권 논리의 다른 이름

트럼프 주위 네오콘들, 외교안보 마피아들 건재

트럼프 2기는 새로운 긴장과 위기의 시간 될 것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기대대로 이루어질까?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도널드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도널드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약은 지킨다(promises made, promises kept).’ 트럼프가 선거에서 내세운 자신의 통치원칙이다. 그러면서 그는 ‘불법 이민 근절, 인플레이션 종료,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등을 약속했다. 이중에서 국내외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는 전쟁 종식이다. 트럼프는 “자기가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내로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실제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 불안한 변수 투성이다. 지원 중단 이외에, 그의 종식 방안은 아직 알려진 게 없다. 이건 취임 후로 미루더라도, 염려스러운 것은 그의 주변에 각료, 보좌관 등으로 임명됐거나 거론되는 인물들이 거의 강경 네오콘이라는 점이다. 이를 전쟁 종식이 물 건너간 신호라고 해석하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또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을 특히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기의 선례 때문이다. 기존의 워싱턴 방식과 다를 것이라고 했지만, 새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걸 빼면, 그가 벌인 군사적 대결과 도발의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말과 달리 패권 노선이라는 미국의 거대전략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첫째 외교 안보 분야 기득권 집단의 위력과 이데올로기, 둘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근본에서 미국 패권의 논리와 같기 때문이다. 이들이 트럼프 2기에 달라질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외교안보 정책 결정의 주체 — 블롭?

'블롭'(Blob. 끈적한 액체 한 방울이라는 뜻)이라는 용어가 있다. 군산복합체, 나아가 군산정언학 복합체, 우리식으로 말하면 ‘외교안보 마피아’를 지칭하는 말이다. 블롭은 또 이들이 공유하는 미국 패권이라는 거대전략 이데올로기, 집단사고를 지칭하기도 한다. 조직이 분명치 않고, 전쟁 같은 사악한 일을 저지르는 괴물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비유다.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 군 등의 정부기관 및 의회, 군수사업체, 싱크탱크, 이익단체 및 로비단체, 언론매체, 학계 등을 두루 망라하는 상호협조와 이념공유의 커넥션이다.

블롭은 2차대전 직후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전후 미국은 세계 최강국가로 올라선다. 미·소 간에 경쟁체제, 곧 냉전이 시작된다. 전 세계에 걸친 체제 대결로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지식과 인력 수요가 폭증한다. 무기산업도 수직 성장한다. 추천과 기용, 연구 용역, 포럼, 로비, 여론조성 작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외정책 분야 전문가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정부의 대외전략과 실천 전술을 생산, 유통, 확산하고,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면서 정치적 힘을 쌓는다. 여기에 무기산업의 거대한 경제적 이권(?)이 함께 묶인다.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조언자, 매개자, 동반자로서 블롭은 거대한 마피아(?)로 성장한다.

 

1958년 S. 맥퀸 주역의 영화 블롭. 블롭이라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물체로부터 공격받는 마을과 주민의 공포를 그린 영화.
1958년 S. 맥퀸 주역의 영화 블롭. 블롭이라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물체로부터 공격받는 마을과 주민의 공포를 그린 영화.

이 같은 블롭의 발전 경과는 블롭의 생산물, 즉 정책의 방향과 내용도 결정한다. 출발부터 블롭의 핵심 과제는 전후 이룩한 미국의 헤게모니를—미국 우위체제(American primacy)라고도 부르는—유지·확대하는 논리의 개발, 관련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블롭의 커넥션이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논리와 전략·전술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블롭에는 네오콘, 자유주의 개입론자(liberal interventionist), 고립주의자 등 결이 다른 집단들이 형성된다. 말 그대로 고립주의를 내세우는 그룹을 제외하면, 네오콘과 자유주의 개입론자는 사실상 동일집단이다. “네오콘은 강경 자유주의 개입론자, 자유주의 개입론자는 온건 네오콘”(S. 월트 하바드 교수의 표현), 네오콘은 주로 공화당, 자유주의 개입론자는 주로 민주당에 모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블롭 밖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블롭과 다른 논리와 대안은 자연스럽게 또는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이들을 배제하지만, 이들 역시 트럼프를 배제한다. 그가 외교안보 진용을 제대로 꾸릴 수 없었던 것, 그의 대외정책이 혼란스럽고, 경망스러웠던 것도 이같은 배경의 산물이다. 결국 트럼프 대외정책팀은 네오콘, 즉 블롭들로 짜였다.​

미국 우선주의는 패권론의 다른 이름

2016년, 트럼프는 자신을 미국 우선주의자로 차별화하며 출발했다. 해외가 아니라 국내를 더 중시하는 노선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는 대외문제를 국내의 필요와 이익이라는 기준에 맞춰 거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공화 양당의 군사개입 노선이 미국의 재앙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평화주의자(?)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1기 재임 기간 트럼프는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새 전쟁은 없었으나 기존의 전쟁(예: 사우디—예멘 전쟁)은 더 키웠다. 아프간에서는 공중폭격과 드론 공격을 대폭 증강, 민간인 살상 규모는 오바마 정부 대비 3배 이상 늘어났다. 시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시했지만, 실제로는 철수하지 않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2020년 1월 3일, 이라크 공항에서, 이슬람 혁명수비대 술레이마니 장군을 드론 공격으로 암살, 이란은 물론 중동 전역의 공분을 샀다.

 

사진 왼쪽: 2020년 1월 4일. 술래이마니 사령관 장례식. 이란 테헤란. 오른쪽: 2018년 1월 17일. 서안 나불루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수도’라는 현수막을 들고 부통령 펜스의 예루살렘 방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사진 왼쪽: 2020년 1월 4일. 술래이마니 사령관 장례식. 이란 테헤란. 오른쪽: 2018년 1월 17일. 서안 나불루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수도’라는 현수막을 들고 부통령 펜스의 예루살렘 방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그 외에도 1. 핵 우위 확보를 위한 국방예산 증가 2. 2019년 러시아-미국 간 중거리 핵미사일 금지 조약 탈퇴 3. 중국과의 무역전쟁, 화웨이 제재 4. 핵 대치와 회담을 오가는 기이한 대북한 행보; 5. 베네수엘라 쿠데타 음모 6. 포괄적 이란 핵협정 탈퇴 7. 2017년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공식 인정, 다음 해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8. 2020년 시리아 영토 골란고원,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 그의 위기 도발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2016년 선거에서 그는 나토 무용론, 동맹의 균등한 안보 비용부담, 러시아 관계개선 등, 블롭과는 매우 다른 접근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백악관 입성 이후, 트럼프는 전임자들의 길을 따랐다. 오바마 정부의 유럽, 즉 나토 지원정책을 대폭 확대했고(예: 미군 주둔 규모 증가, 군 시설 확충, 군사훈련 확대 등), 사우디와 걸프 아랍국가들과의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했으며, 일본과 한국 등의 안보공약을 재확인했다. 러시아 크림반도 철수를 요구하면서 오바마가 취한 제재를 철회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는 대러시아 견제용 미제 무기를 팔았다.

요약하면 트럼프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전략의 기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언행과 커넥션의 차원에서는 다른 듯했지만, 1기 트럼프는 내용상 블롭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그의 미국 우선주의가 자국의 이익에 기초한 자기 방식의 미국 패권론, 즉 블롭의 주장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 왜, 어떻게?

1기 트럼프를 염두에 두고 다시 봐야 할 것은, 그가 전쟁을 끝내려는 까닭이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다 망가졌다”라고 말했다. 반전-평화주의자도 아닌 그가 전쟁을 끝낸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가 이미 패배했다는 것, 거기에 돈과 자원을 쏟아붓는 건 무의미한 일이라는 뜻이다. 이는 지난 2월, 당시 상원의원 자격으로 2024 뮌헨 안보회의에 참가했던 부통령 당선자 J.D. 밴스가 한 말이기도 하다. 이같은 직접적 요인 외에도, 전쟁에서 드러난 미국의 무기부족 실태, 적정한 무기생산과 조달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인식한 국방부의 전쟁 지속 반대의견, 또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의지, 또 미국이 맞서야 할 상대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팀 트럼프의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짚어야 할 것은 전쟁 종식 방안이다. 당선인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는데, 몇몇 주류매체에서 이런저런 방안이 트럼프의 이름으로 거론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관련 기사가 대표적이다(관련 기사화면 캡처 참조)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화면 캡처. 왼쪽 7월 25일 자 칼럼. 필자는 D. 어반 M. 폼페오 / 오른쪽 11월 6일 자 기사. A. 워드 기자.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화면 캡처. 왼쪽 7월 25일 자 칼럼. 필자는 D. 어반 M. 폼페오 / 오른쪽 11월 6일 자 기사. A. 워드 기자.

화면 왼쪽은 지난 7월, 전 국무장관 M. 폼페오 등이 평화 방안이라며 나토 강화, 우크라이나 5000억 달러 원조와 EU 가입 등을 내용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실은 칼럼이다. 오른쪽은, 이번 선거 직후 트럼프 측근으로부터 취재한 방안이라며, ‘현재 상태에서 전선 동결, 비무장지대 설정, 향후 20년 우크라이나 NATO 가입 포기, 폴란드,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우크라이나 평화 유지군 운용, 미국의 우크라이나 방어무기 지원 등’을 담은 기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정통한 전문가 A. 머커리스는 이를, 트럼프를 끌어들여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상황을 계속 이어가려는 네오콘의 함정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트럼프의 방안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 이는 모두 트럼프와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협상안을 만들고 협상을 하는 주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지 미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미국은 그들에게 따라오라 지시하는 주체가 아니라 양자 사이의 협상 중재자라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전쟁 종식방안은 비현실적이며,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며,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트럼프 2기 — 새로운 긴장과 위기의 시작

이 글을 쓰는 동안, 트럼프 2기 국무장관으로 M. 루비오 상원의원, 국가안보보좌관에 M. 월츠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 외 각료들로 여러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대부분 강경 네오콘, ‘중국 주적론자(China hawk)’들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대외 강경 기조를 짐작케 하는 인사다.

 

이미 말했듯, 트럼프는 반전-평화와 거리가 먼 인물이고 자기 방식대로의 패권론자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그 주변에 포진한 네오콘들은 이를 의심케 하지만—은 긴장 완화, 위기 해소가 아니라 자원과 시간, 역량의 낭비를 중단하고, 더 큰 적—트럼프와 그 일행에게 중국은 공공의 적 1호—과의 대결에 나서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서아시아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트럼프의 친 이스라엘 행보는 바이든을 훨씬 능가한다. 그를 보여주듯, 네타냐후 이스라엘의 무차별 살육행태는 미국 선거 이후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이란에 당한 패배를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복수하는 형국이다.

설령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한다 해도, 트럼프 2기를 위기 해소, 긴장 완화의 시간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의 당선 이후 곳곳에 일종의 안도감이 퍼지는 듯하다. 금물이다. 희망을 말하기에 상황은 유동적이고 엄중하다. 이것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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