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에 가린 또 다른 '대형 참사' 17명 사상

올들어 대량살인만 300건, 사망자 9300명 웃돌아

트럼프 사건도 총기 규제 여론 없이 온갖 음모론만

NRA 로비, 무책임 의회, 무기력 정부, '극우' 판사들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지난 13일 트럼프 암살미수 사건(이하 트럼프 사건, 또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그날, 다른 곳에서 두 건의 집단 총격 사태가 터졌다. 현장은 앨라배마주 버밍엄. 어린이 한 명을 포함, 모두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 흔히 말하는 대량살인(mass murder)이다. 그런데 앨라배마주 대량살인 건은 트럼프 사건에 묻혀 전국 뉴스로 오르지도 못했다.

'제국 아메리카'의 국내 버전?

올 7월 15일 현재까지 미국에선 4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량살인만 벌써 300건, 사망자는 9300여 명이 넘는다. 총기 소지를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권리로 생각하는 많은 미국인은 그 총으로 상대도 죽이고, 자기도 죽인다. 사상자 숫자로 따지면 웬만한 전쟁보다 많다. 제국 아메리카의 국내 버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군은 세계 곳곳에서 직접 또는 우크라이나나 이스라엘 같은 하수인을 시켜 전쟁을 벌이고, 미국인들 자신은 국내에서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인다.

 

앨라배마 총기 참사를 전한 미 ABC 방송 보도. 시민언론 민들레 
앨라배마 총기 참사를 전한 미 ABC 방송 보도. 시민언론 민들레 

트럼프 사건과 관련해 무수한 말들이 난무한다. 음모론이 가장 먼저 회자된다. 한편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은 비상사태에 숙련된 사람답게, 폭력을 비난하거나, 사태의 원인을 성찰하자거나, 사회적 단합을 강조하거나, 총기 규제 미비의 문제를 제기하는 등, 진단과 수습책을 언급한다. 진단과 수습은 중요하지만,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들의 발언은 실행력 없는 원론적 말일 뿐이다. 조만간 사건의 실체와 관련한 FBI의 수사 보고, 언론의 독자적 탐사보도도 나올 것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22일, 월요일(미국 시간)로 예정된 경호실장 청문회다. 사건을 전후한 경호실의 행태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거니와 무수한 음모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됐든, 누구도 사건의 전모, 또는 진실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저격범이 사망했다. 암살 시도의 동기, 공범의 존재 여부 등은 추정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경호실은 책임회피를 포함, 실수 태만 무능력을 자인하는 수준으로 답할 것이다. 작금의 적대적 정치판과 여과장치 없는 소셜 미디어 환경은 진실보다 음모론—자작극이니, 백악관 연루설이니 하는—을 키우고 있다. 과거의 정치인 암살 사건 수사 역시 진실보다 의문을 더 남겼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에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경호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2024. 07.13  A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에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경호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가고 있다. 2024. 07.13  AP 연합뉴스

트럼프 사건 뒤 무수한 음모설

사건과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의 주제는 선거다. 이번 사건으로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해졌다는 게 일반적 분위기다. 총격에도 살아난 든든한 트럼프는 병약한 바이든과 대비된다. 여론의 수치 역시 트럼프에게 약간은 우세하다. 그러나 이는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꾸준하게 이어져 온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사건과 11월 선거를 엮는 것은 흥미로운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2024 대선은 이번 사건이 아니라 민주당의 바이든 문제, 즉 그의 전쟁노선은 제쳐두고라도, 건강 문제가 일으키는 내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려있다. 물러나라는 민주당 내부—오바마까지도—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조만간 그의 사퇴가 임박했다는 설과 아니라는 설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이든, 교체 후보든, 대선은 물론, 하원, 상원까지 작금의 정황은 모두 민주당에 불리한 형국이다.

이 많은 얘기 속에서 빠진 것은 무엇일까. 경호 실패론, 정치 폭력론, 적대적 정치 환경론, 그리고 음모론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일 뿐 어디서도 총기 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기 어렵다. 과거 케네디나 레이건 시절, 대통령 암살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바로 총기 규제 논의가 시작됐다.

 

미국인 5명 중 4명이 '국가가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 로이터/입소스 조사로 지난 16일 보도됐다. 시민언론 민들레 
미국인 5명 중 4명이 '국가가 혼돈으로 치닫고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 로이터/입소스 조사로 지난 16일 보도됐다. 시민언론 민들레 

이번 사건 직후인 지난주 월 화 이틀 동안, 로이터/입소스는 120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나라가 혼돈에 빠지고 있다(the country is spiraling out of control)’. 다섯 명 중 네 명, 80%가 그렇게 답했다(관련 기사 사진 참조). 보통 사람들은 진단과 수습, 선거 영향 이런 것보다, 총기 폭력에 휘둘리는 혼돈의 국가, 미국을 본 것이다. 사건에 반영된 미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직관적인, 그러나 정확한 판단이다.

그럼에도 언론도, 정치권도, 사건이 드러낸 총기 폭력 문제를 주요한 의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엘리트 집단이 오히려 문제를 외면하는 듯한 양상이다. 대략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일상화된 총기 문화와 총기 규제 반대 집단의 막강한 정치·사회적 힘.

작년 1월, 한 공화당 하원의원은 동료들에게 총기 모양의 배지를 선물로 나눠줬다가 비난의 구설수에 올랐다. 배지는 반자동소총인 AR-15를 본떠 만든 것. 그 총은 이번 사건은 물론 미국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대량살인 사건에 사용되는, 군용 M-16을 민간용(?)으로 개조한 무기다. 하필 집단 총격 살상 사건의 생존자 위로 행사 주간(1월 22~26일. 2019년 제정)에 선물을 돌렸다. 

이뿐 아니다. 그다음 달인 2월, 공화당 의원 5명은 바로 그 총 AR-15를 ‘국가 공식 총기(national gun of America)’로 지정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총기 소유권을 규정한 수정헌법 2조에 반대하는 규제론자들에 맞서기 위한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를 본 한 언론인은 “국경일, 국기, 국화 등과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서 신성한 자유와 권리를 상징하는 총기, 특히 사람들이 사랑하는 AR-15를 국가 공식 총으로 정하자는 뜻인 듯하다”라는 웃픈 풍자를 날렸다. 그러면서 총기 배지 선물이나, 국가 총 지정법 같은 시도는 “결국 사람들을 자극하고 관심을 끌어, 극우의 유명인이 되고, 매체에 출연도 하고, 후원금도 늘리려는 정치 쇼가 아닐까”라고 개탄했다.

 

한 공화당 하원의원이 동료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반자동소총 AR-15 배지. 시민언론 민들레 
한 공화당 하원의원이 동료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반자동소총 AR-15 배지. 시민언론 민들레 

반자동소총 AR-15를 '국가의 총'으로 지정?

무지인지, 의도적 도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행동이 버젓이 자행될 만큼 미국과 총, 미국인과 총은 한 몸이다. 그런 실상을 대놓고 전시하듯, 공개적 총기 휴대가 합법화된 지도 오래되었다. 서부영화의 21세기 버전이다. 물론 주마다 휴대할 수 있는 장소, 휴대 방식, 총기 종류, 면허 소지나 허가 여부 등에 차이는 있지만, 2003년 알래스카를 시작으로 대략 2010년대 중반 이후 거의 모든 주에서 사실상 금지가 풀렸다. 이제 공개적 총기 휴대를 금하고 있는 곳은 워싱턴 DC, 일리노이, 뉴욕주 정도뿐이다. 당연히 사망에 이르는 총기 범죄는 늘어났다.

폭력을 사고파는 일도 쉬워졌다. 총알 자판기(ammo vending machine)가 등장했다. 작년 11월 앨라배마주를 시작으로, 올 7월에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콜로라도주까지 슈퍼마켓에 설치됐다(사진 참조). 학교 옆 슈퍼에 들어선 예도 있다. 권총, 장총, 엽총 등 다양한 종류의 총알을 자판기에서 커피 뽑듯 살 수 있다. 해당 기업은 그런 편리한 사용성을 홍보하면서 사업 성장의 잠재력도 강조한다. 동시에 얼굴인식 기술을 도입, 구매자의 신분, 나이, 과거 총기 사용 이력 등을 확인한다며 안전도 강조한다. 더 확산시키겠다는 뜻이다. 이러다 보면 시간이 지나 총기까지도 자판기에서 뽑을 수 있을 듯하다.

 

잡화점에 설치된 총기 자동판매기를 보도한 5NBC방송 누리집.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앨라배매 등에 설치됐다.  시민언론 민들레 
잡화점에 설치된 총기 자동판매기를 보도한 5NBC방송 누리집.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앨라배마 등에 설치됐다.  시민언론 민들레 

잡화점에 등장한 총알 자판기

미국에서 총기 규제는 언제나 지난한 과제였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바로 총기 규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법을 만들기에 케네디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했다. 동생 R.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까지 암살되고 난 후인 1968년이 돼서야 비로소 법안이 통과됐다.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 약칭 NRA)의 로비 때문이었다. 1981년에는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이 있었다. 그때 피격당한 백악관 비서의 부인이 총기규제법 강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다시 총기협회가 가로막고 나섰다. 이즈음 협회는 총기 규제 결사반대 조직으로 극단화했을 뿐 아니라 막강한 로비단체로 성장했다. 레이건 대통령까지도 법안 지원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4년 클린턴 정부 시절, 10년 한시법으로 해서야 비로소 AR-15 같은 (반)자동소총 금지법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2004년, 법안 연장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민들이 소유한 총기는 무려 4억 정에 이른다. 전 세계 민간 소유 총기의 46%에 해당한다. 인구보다 소유 총기가 더 많은 유일한 나라다. 그럼에도 미국민들 다수는 오히려 총기 규제강화—CNN 2018년 조사 70%, 23년 64%—에 찬성한다. 그러나 여론은 여론일 뿐이다. 규제책을 마련해야 할 의회는 대체로 무책임하고, 정부 역시 대체로 무기력하다. 총기 규제에 관한 한 공화당은 총기협회와 뜻을 같이하고 민주당은 규제론을 내세우지만, 만연한 총기 폭력의 현실과 로비에 취약한 정치 속에서 그 차이는 별 의미가 없다.

여러 요인이 있다. 무기회사와 총기협회의 강력한 로비, 총기 소지의 권리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2조라는 미신 또는 신화, 판결의 기회마다 이를 더 강화하는 연방 대법원 다수의 극우성향 판사, 나아가 쉼 없는 전쟁으로 점철된 미국 역사 속에 배태된 폭력의 DNA 등을 짚을 수 있다.

멈추지 않는 총기 폭력의 악순환

총기 폭력을 둘러싼 사회현실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총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총을 가지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그를 입증하듯 미국엔 총과 죽음이 너무나 흔해졌다. 대량살인 사건이 벌어져도 그때뿐이다. 한 명이 죽을 때는 살인이지만, 수만이 죽으면 그건 통계수치에 불과하다. 정부와 의회는 총기 폭력을 범죄자 개인 또는 집단의 일탈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과 배경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 낙태는 살인이라며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총이 부르는 살인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다.

이번 사건에서 총기 규제 관련 논의가 거의 없는 것도 이런 흐름의 반영이다. 그뿐 아니다. 백악관 경호실과 각급 경찰이 총출동한 철통같은 대통령 후보의 선거 집회에서, 후보가 암살당할 뻔했다는 것은, 널리 퍼진 폭력 앞에서 보안 따위는 쉽게 무너지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상원의원 M. 루비오는 사건 직후, ‘그를 구한 건 하느님’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총기 규제 강화론을 펼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총은 이미 너무 많이 풀렸고 미국이 벌이는 국내외적 폭력은 멈추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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