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침체 우려 맞물려 증시 또 급락
대장주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로 겹악재
AI 거품 닷컴 버블 때보다 충격 클 수도
“투자 대비 수익성이 문제…더 지켜봐야”
인터넷처럼 산업 판도를 바꾸냐가 관건
인공지능(AI) 거품론이 또 전 세계 증시를 강타했다. 미국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7.2로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발표와 AI 위기론이 맞물려 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3대 지수인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 지수가 모두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증시도 4일 폭락장을 연출했다.
급락한 미국 증시에서 가장 눈길을 끈 종목은 전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80% 이상 점유하고 있는 엔비디아다.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했으나 엔비디아는 낙폭이 유독 컸다. 또 불거진 AI 거품론에 더해 미국 사법당국으로부터 반독점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날 주가가 10% 가까이 폭락했다.
미국 경기침체 우려에 AI 위기설 겹치며 증시 폭락
AI 거품론은 JP모건과 모건스탠리 등 기관 투자자들이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3일에도 AI 투자 경계론이 나오며 그렇지 않아도 미국 경기침체 우려로 약해진 반도체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연합뉴스가 외신들을 인용해 전한 AI 거품론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AI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전에는 AI에 대한 지출(투자)이 정당화되지 않을 것이다. AI 도약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몇 분기가 아니라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가장 고평가된 분야 먼저 강타할 것이다.”
미국 법무부가 엔비디아 등 일부 기업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를 위해 소환장을 보냈다고 블룸버그 보도는 악재를 더 키웠다. 블룸버그는 소환장은 정식 고발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강조했다. 혐의 내용은 엔비디아가 거래업체들이 다른 기업의 AI 반도체로 교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자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을 강타한 AI 거품론은 AI 서비스가 투자에 비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관련 기업이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투자자들은 언제쯤 AI 사업에서 유의미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질문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구글 2분기 실적 발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구글 최고경영자(CEO)인 순다르 피차이는 AI 기술의 범용성만을 강조하며 즉답을 못했다.
거품이냐, 대세냐…AI에 대한 엇갈리는 전망
모건스탠리는 최근 발표한 AI 거품론에 관한 보고서에서 AI 산업도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며 성장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들어 업황이 회복되며 반도체 기업 실적은 내년까지 개선되겠지만 AI 투자 증가율은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캐피탈은 그동안 AI 설비투자에 쏟아부은 돈을 회수하려면 6000억 달러를 벌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엔비디아 등 주요 기업의 이익을 다 합쳐도 도달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들 보고서는 AI 기업들의 현재 주가가 과도하게 고평가됐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범용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 인터넷과 같은 비약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낙관론자들은 챗GPT 같은 범용 인공지능(AGI)이 스마트폰과 PC에 본격적으로 탑재되기 시작하면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며 수익성도 좋아질 수 있다고 본다. AI 서비스 확산에 따라 AI 반도체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기업은 물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도 “AI가 대세”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주요 선진국이 AI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낙관론의 근거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AI 시장이 어느 정도로 커질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AI 열풍에도 기업 세 곳 중 한 곳만 AI 활용
문제는 기술 발전과 시장의 성장 속도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빠르게 달려왔으나 소비자 눈높이를 충족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산업연구원이 얼마 전 발표한 ‘AI 기술 활용 실태 조사’만 봐도 생각한 것만큼 AI 수요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챗GPT 이후 AI 열풍이 불고 있으나 국내에서 경영 활동에 AI를 도입한 기업은 셋 중 하나에 그쳤다.
국내기업 500개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8.4%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AI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AI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은 30.6%에 불과했다. 특히 제조업은 AI 활용률이 23.8%로 매우 낮았다. 현재 AI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투자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으나 아직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절반은 앞으로도 활용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처음 나왔을 때 화제가 됐던 챗GPT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오윤석 전문연구원이 지난해 6월 한국미디어패널조사를 통해 국내 사용자 9757명을 대상으로 챗GPT 같은 AI 챗봇 사용 실태를 조사해 보니 돈을 내고 사용하는 비율은 6%에 그쳤다. AI 업계의 주요 수익창출원이 될 수 있는 챗봇조차도 아직까지는 상품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거품 빠지면 세계 경제에 큰 충격
AI 거품론이 과도한 공포인지,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관련 기업이 발표하는 기술과 서비스, 실적 등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다만 과거 신기술이나 신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됐던 흐름을 AI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기에 장밋빛 전망에 많은 투자금이 몰리면서 거품이 형성됐고, 수익성이 기대 이하로 확인되면 자금이 빠져나간다. 그 뒤 신기술이 산업 판도를 바꾸고 본격적인 이익을 올리면 다시 많은 자금이 투자되는 사이클을 그릴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AI 거품론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관련 기업의 주가도 조정을 받을 것이다. 폭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등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문제는 AI 거품이 빠지면서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은 AI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AI 거품이 빠지면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때보다 더 큰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9월 들자마자 주요국 증시가 공포감에 휩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경기침체와 함께 AI 거품론이 제기될 때마다 주요국 증시는 비슷한 급락장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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