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일본 노래? 금단의 벽 무너졌다?

과거사 부정하는 일본에 윤석열 정부는 굴복

일제 충성했던 조선일보, 이젠 왜색 문화 두둔

조선일보가 신바람이 났다. 최보윤 기자가 하루에 연속해서 기사를 써내고 있다. 제목도 자극적이고 도전적이다. “국내방송서 ‘히토리 사카바데~♪’…K팝 시대에 뭐 어때” “예전엔 ‘왜색’ 손가락질…이젠 일상이 된 일본 노래”가 그것이다. 국내 방송에서 일본 노래에 대한 “금단의 벽이 무너졌다”면서 더 이상 문화적 경계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최보윤 기자가 흥분해서인지 “일본 노래가 안방극장을 들썩이고 있다”고도 썼다. “한일 교류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는 김연자씨의 말도 인용했다.

한국에서 ‘뽕짝’이라고 불리는 트로트를 퍼뜨리는데 앞장서 온 TV조선의 쾌거로 읽힌다.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 로또’에서 한 가수가 일본 노래를 부를 때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지고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친절하게 현장 모습까지 중계한다. 가히 감동적이긴 하지만 국내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과정을 보면 그리 별난 일도 아니기에 최보윤 족벌 기업 조선일보 기자의 호들갑이 천박하게 들린다.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방송 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감성에 반했다” “신선하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단다. 이어서 “일본 노래가 방송에 왜 나오느냐 같은 반응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고도 전한다. 전혀 없다고 쓰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른바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것이 조선일보의 전형적인 보도 방식이다. 물론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드러내면 그는 전문가 대열에서 탈락이다. 그가 원하는 먹이가 아닌 것이다. 이번에도 전문가라는 대중문화 평론가를 동원했다. 다행히 그의 진단은 기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다.

“노재팬 운동 등 일방적인 반대로 억눌렸다가 오히려 반발로 소비가 폭증한 것도 있다”는 참으로 신선한 분석까지 해주니 그러잖아도 입이 근질근질하던 기자로서는 감읍이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앞지르는 등 경제적 자신감이 그 배경에 있다”는 진단은 도발적이다.

노재팬(No Japan) 운동까지 한꺼번에 몰아치는 조선일보의 꼼꼼한 전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K컬처의 세계적 인기로 보아 왜색 문화에 우리 문화가 잠식당할 것이라는 식의 인식은 설 자리는 없다는 다른 관계자의 말까지 인용했다. 일본대중문화개방 역사에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을 인용하는 치밀함으로 이 기사는 최고 완결성을 갖게 된다. 

 

조선일보는 과거 살인마 전두환의 집권 시절 사형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하여 “10.26 이후에 그의 무리한 집권 기도가 빚어낸 결과였다”라 비난하며 전두환의 폭압을 합리화하던 자들이다. 후안무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9년에 폭발했던 노재팬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근성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경제 전쟁을 선포한 아베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노의 표시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정리를 바탕으로 한 한일관계의 정립보다 일본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며 일본의 선처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에 노재팬 운동이 잠시 물밑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비롯해 동해 표기,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 조선일보는 철저히 애완견 노릇을 해왔음은 모두 알고 있다. 최근에는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인 강제 징용 노동자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현실이 되어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점령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데까지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일본은 과거사 부정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하여 착착 계획대로 진행하는 데 반해 윤석열 정부는 그들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앞잡이가 되어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필 이런 상황에 조선일보가 일본 노래가 방송에 나오는 것이 마땅히 환영해야 할 일인 듯 보도하는 저의가 궁금하다. 탄핵안이 발의돼 직무정지 상태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전 국민 앞에서 말한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 여부는 논쟁적”이라는 주장과 윤석열 정부의 일본 편향적인 입장에서 조선일보 최보윤 기자는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1919년 조선 민중의 뜨거운 투쟁의 산물로 조선일보가 생겼다는 사실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일제는 조선일보를 통해 철저하게 조선 민중을 문화적으로 조종하려 했고 방응모 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이래 자발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는 창씨개명이나 한글사용 금지를 통해 문화적 침탈을 꾀했다. 현재 TV조선을 앞세운 일본 노래의 방송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더 나아가 일제가 우리에게 저질렀던 죄악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벌인 범죄적 행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최보윤 종업원이 지상파에서도 일본 노래가 자연스레 방송되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발휘하려 했다면 당장 걷어치우기 바란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