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천안함 군인 추모하며 '군복 모욕 말라'더니

채 해병 추모에는 침묵…'군복'에도 정치적 유불리 있나

2024년 7월 19일은 채 해병이 귀중한 목숨을 잃은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비등하는 국민의 분노를 해결하고자 국회에서는 채수근 해병이 순직하게 된 사건의 진상과 이후 일어난 것으로 의심되는 수사 방해에 대하여 특검법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그러나 채 해병 특검법, 즉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 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 뒤 국회 재의결에서 부결됨으로써 폐기됐다.

이번 사건이 야당의 특검법 발의까지 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여권이나 대통령실의 해명이 일관성을 잃은 것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공익 제보자를 통해 김건희 씨 연루 의혹까지 나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대결도 날카로워져 그야말로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되는 미제 사건으로 남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일보와 같은 ‘불편부당’한(?) 언론이 필요한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군복을 모욕하지 말라”는 시각의 기사와 칼럼, 사설을 내보냈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토를 지키는 군인을 모욕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기에 언뜻 그럴싸한 당연한 주장으로 읽힌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은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을 모욕했다’는 것이었다. 임성근 사단장이 탄원서에서 말했다고 알려진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인 군인을 모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죄악이다. 죽음에 대한 모욕은 더욱 그렇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24.7.25, 연합뉴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이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24.7.25, 연합뉴스

채 해병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지 1년이 되는 날인 2024년 7월 19일 조선일보는 채 해병의 사건에 대해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채 해병 사건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러한 높은 관심의 본질도 군복에 대한 적절한 예우와 존경일 것이리라. 따라서 조선일보가 이 사건과 관련된 상상하기조차 민망한 국면 전개에 대하여 철저하게 침묵하는 태도는 석연치 않음을 넘어 그것이 바로 ‘군복에 대한 모욕’이다. 국민을 배제한 그들만의 보도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다. 최악의 언론 신뢰도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아직도 가공인물에 머물고 있는 VIP가 했다는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은 당시 상황으로 보아 꽤 구체적이다. 문제는 한 ‘군복’의 죽음을 ‘이런 일’로 치부하고 ‘사단장’이라는 ‘군복’만은 지켜내겠다는 비뚤어진 인식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제2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 더 거슬러 올라가 베트남 참전 용사나 6.25 참전 용사의 희생을 강조하며 애국심을 고취해온 신문이다. 이런 조선일보가 같은 군복을 입은 군인의 목숨에 대해 ‘버려도 되는 목숨’과 ‘지켜야 하는 목숨’으로 갈라치기하고 있다. 채 해병의 목숨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문다. 군복을 모욕하지 말라던 조선일보가 위선적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도 있다.

앞에 언급한 호국영령들과 채 해병의 죽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조선일보는 자기 진영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군복에 대한 명예나 존경이 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편가르기에 찌들다 보니 이번 채 해병 사건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며 급기야 7월 19일에는 단 한 줄의 기사나 사설도 보도하지 않은 것인가?

언론이 채 해병 아니 더 나아가 호국영령을 모욕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무리 채 해병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여론이 들끓는다 해도 지면에서 다루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자세가 지난 7월 19일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파적인 혹은 정략적인 판단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사건이 가지는 무게에는 아랑곳없이 아예 무시하는 전략이다. 시쳇말로 채 해병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되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자세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창 떠들썩하다가 지금은 잠시 잠잠해진 기자 감별법이 떠오른다. 애완견, 경비견, 감시견, 수면견 등의 기자들이 있다. 눈앞의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중립적이며 불편부당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도 그저 야비하고 허약한 자의 모습일 뿐이다.

“당신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내뱉지 않고 삼켜버린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다.”

파울루 코엘류의 말이다. 채 해병이 세상을 떠난 날인 7월 19일에 ‘채 해병’이라는 단어를 무참하게 묻어버린 조선일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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