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비호감 사라진다고?
한동훈 씨의 사과 수용은 국정농단과 무관?
조선일보가 법치 말하려면 "수사받아라" 해야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최혜승 기자가 “‘비대위서 결정하면 사과’ 김건희 문자 5건 원문 보니”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TV조선이 보도했다는 문자 원문이라면서도 오탈자를 손봤다고 한다. 원문은 아니지만 내용 자체를 훼손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 문자를 읽어보니 사과라는 말이 7번, ‘죄송’이라는 말은 5번씩 쓰고 ‘이해’ ‘양해’ 등의 단어를 써가며 진심을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듯하다. 최 기자가 내용 전달에 그치고 있기에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하려 한다.
1월 15일 문자에서는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라고 말한다. 누구를 대신하는지는 문맥을 보면 다 알 듯하다. 사적인 문자이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평소의 김건희 씨와 윤 대통령의 위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다’는 기시감이 드는 표현이다.
같은 날 다른 문자로 보낸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자리가 무엇을 말하는지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김건희 씨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며 자격이 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1월 15일에 보낸 두 차례 문자에도 대답이 없자, 19일에는 비교적 장문의 문자를 보낸다. 이 문자에서만 ‘사과’라는 표현이 6차례나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사과를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당연히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임론까지 불붙듯”이란 말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특히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말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누가 충분히 죄스럽다는 여긴다는 말일까?
개인적으로는 1월 23일 문자가 가장 강력한 감정이 드러난다고 느꼈다. “요 며칠 제가 댓글 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제가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사과라기보다는 훈계하는 내용처럼 보이는 문자다.
조선일보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가하게 보도하기에는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도 등장한다. 우선 별생각 없이 사용한 듯한 “댓글팀 활용”이란 표현에 너무도 놀랍고 참담하다. 대통령 아내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위해 댓글팀을 활용한다는 고백은 아닌지 싶어 안 들은 걸로 하고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다고 주장한다. 역시 주어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김건희 씨가 개인적으로 쓴 문자이기에 생사를 가르는 동지는 김건희 씨와 한동훈 씨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검찰 상사의 아내일 뿐인 김건희 씨와 한동훈 씨가 무슨 일로 생사를 가르는 동지가 되었는지, 언제 무슨 일로 끈끈하게 연결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에도 이들 사이에 수백통의 문자가 오갔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한동훈 씨가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지 않아 그렇게도 유능한 검찰이 무력하게 멈춰 선 사건이 새삼 떠오른다. “조금 결이 안 맞는다고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라며 정치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대인배 기질을 보여준다.
하지만 꼼꼼하게 챙기는 내용도 있다. “김경률 회계사님의 극단적인 워딩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님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씀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이해하기로 했다는 말에 다시 한번 김 여사의 넓은 품을 느끼게 된다. “극단적인 워딩”은 아마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이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서둘러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해받고 있다는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다. 프랑스의 앙투아네트가 한국에서 복권이 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은 김건희 씨의 심기를 편안하게 해주고 하는 조선일보의 배려였을까?
1월 23일은 충남 서천 시장 화재 피해 현장에서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이 90도 인사로 ‘사과’를 한 날이다. 김건희 씨가 그토록 절절하게 원하던 자신의 ‘사과’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재민에 대한 위로보다 한동훈 씨가 윤 대통령에게 깊숙이 절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문자에서는 사과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고 두 사람이 식사라도 하면서 오해를 풀라는 말로 마무리가 된다. 오해의 내용은 무엇인지 속 시원히 알고 싶다.
문자 논란이 한창인 7월 6일에 조선일보는 “뒤늦은 ‘김여사 사과’ 불발 논란, 지금이라도 사과하길”이란 엉뚱한 제목의 사설을 내보낸다. 7월 10일에는 “사과 안 한 김 여사도, 답 안 한 한 후보도 이해 안 돼”라는 사설을 통해 지금이라도 “바로 사과하면 될 일”이라고 강변한다. 다만 “김 여사에 대한 광범위한 비호감”, “정부 여당 전체가 김 여사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데”라는 표현만은 객관적 판단인 듯하여 눈길이 간다.
디올백으로 알려진 명품 수수는 명백한 불법이다. 조선일보의 일관된 ‘사과’ 주장은 그래서 해괴하다. 관련자가 이미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주가조작 등 김건희 씨와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도 수사 대신 사과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치를 흔드는 일이다. 조선일보가 민주당의 검사 탄핵 등에 대하여 합법 타령을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사과하라’는 주장을 멈추고 당당하게 검찰 수사를 받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검을 받아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라고 주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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