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공단 소규모 사업장에 네 가지가 없다

화장실, 휴게실, 구내식당 그리고 노동자

조성 30년 넘어 구조 고도화 국면서도 배제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필자는 2010년대 초 얼마간 대학 부설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다. 연구소가 위치한 4층짜리 건물에는 화장실이 1층에만 있었다. 2층, 3층, 4층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1층까지 내려가야 했다. 이렇게 이해 안 되게 건물을 만든 이유를 교직원에게 물어보니 원래 도서관으로 설계했던 건물인데, 공부하는 학생들이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할 일이 별로 없다고 봐서 1층에만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답변이었다. 참으로 쓴웃음이 나오는 얘기였다.

“화장실이 푸세식이에요. 회사가 10년 전에 공장을 사들일 때, 원래 화장실이 없었대요. 그래서 임시로 만든 게 지금까지 오고 있는 거래요.”

3년 전 시화공단 노동자 휴게시설 실태조사 과정에서 필자가 만난 여성 노동자의 얘기이다. 푸세식이어서 옆 공장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했다. 이런 사례가 시화공단에서 일반화 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조그만 사업장이라 할지라도 화장실 없이 공장을 지었다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는 화장실도 가지 않는 기계인가!

시화공단 소규모 사업장에 없는 3가지. 화장실 휴게실 구내식당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화장실뿐만이 아니다. 휴게실도 없다. 2021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2022년 8월부터 모든 사업주에게, 일하는 곳에 법 규정에 따른 휴게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상시고용 2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간 부족으로 사업장 휴게실을 설치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과태료 처분은 면제하지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동휴게실을 설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시화공단 지역에서도 공동휴게실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시화공단 노동자는 휴게시간에 어디서 어떻게 쉴까? 시화공단 노동자도 일하는 곳에서 쉬기는 한다. 사진처럼 작업장 바닥에 골판지를 펼치고서 잠시나마 눈을 붙인다. 예순에 접어든 어느 시인은 스무 살 때 공장 바닥에 자재를 깔아 놓고 쪽잠 잤다는 시를 썼는데, 여전히 지금도 그렇다.

 

시화공단 노동자가 점심시간에 쉬는 모습. 손정순
시화공단 노동자가 점심시간에 쉬는 모습. 손정순

시화공단에 없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구내식당이다. 큰 사업장에는 자체 구내식당이 있다. 하지만 화장실, 휴게실조차 만들기 힘든 조그만 사업장이 대부분인 시화공단에는 사업체에 구내식당이 없다. 대신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대강 한 끼 5500원 가격으로 사업체와 장부 거래하는 식당은 좁은 공간, 중국산 김치에 햄·소시지 등 기성품 재가공 위주의 반찬, 부실한 국 등으로 인해 노동자의 불만이 높다.

 

시화공단 노동자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컨테이너 식당과 공장 한구석에 있는 식당. 손정순
시화공단 노동자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컨테이너 식당과 공장 한구석에 있는 식당. 손정순

노동의 요구 배제하고 부동산 수익성 논리 따른 구조고도화 사업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임에도 왜 시화공단에는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시설들이 없거나 부실할까? 1986년, 염전터 매립에서 시작한 시화공단은 영등포, 문래동 등 서울 서남부 지역에 소재한 중소영세 제조사업체를 이전시키기 위해 조성한 공단이다. 영세사업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갖춰야 할 기본 시설을 개별 사업체에 맡겨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십분 예상할 수 있었다. 설령 공단 조성·운영 초기에는 예상 못 했다고 해도 공단 운영이 본격화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그렇다. 공동휴게실 설치, 개인사업자가 운영하지만 사실상의 준공용(準公用)인 공동식당 개선 등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인프라 구축 요구에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외면해 왔다.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상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산업단지의 개발 및 관리와 기업체의 산업활동 지원”이 목적(제45조의 17)이기에 노동은 없었다.

노동에서 외면당하는 것이 비단 휴게실 같은 물적 인프라 구축 요구뿐일까? 시화공단은 조성한 지 30여 년이 넘어 노후산단이 되면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로공단처럼 시화공단 구조고도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부동산 수익성 논리에 기반해 구조고도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구조개선 사업 필요성을 제기해 왔지만 노동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원천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희연이 ‘개발독재’로 표현한 압축적 산업화이다. 짧은 기간 동안 총력전식의 동원을 통해 산업화를 이룬 것이다. 한국에 자본은 없었기에 동원할 핵심 대상은 노동이었다. 병영적 작업장 통제와 노조 결성을 철저히 억압한 군사독재식 노사관계의 시작이었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으로 집약되는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특징이 자리 잡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극단적 노동배제의 성장체제를 지리적 공간에 구현한 것이 바로 ‘공단’이었다.

노동유연화라는 시장 논리 속 시화공단에 몰린 하층 주변부 노동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병영적 노동통제와 노조 결성을 막기 위한 물리적 억압은 완화되어 왔다. 노동시장 상층부 조직노동에 대한 국가의 물리적 억압체계 이완은 노동관계 연구자들이 ‘87년 노동체제’로 언급하는 독특한 노동체제로 귀결했다. 하지만 중소사업체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내 하층부 무노조 노동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억압기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바로 시장 논리였다. 필자가 언급했던 파견·용역 등 인력업체를 이용하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2000년대 이후 국가와 자본의 거시적 노동정책은 노동유연화라는 시장 논리를 배경으로 노동시장 상층 조직노동에 대해서는 선별적 배제와 포섭이었고, 하층 주변부 노동은 이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이용하면서 사실상 방기해 왔다. 2010년대 이후에는 시험-능력주의 논리가 이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기도 하다.

그 귀결이 지금의 시화공단이다. 아리셀 참사의 근본 원인인 일용파견을 규제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국가는 이를 무시했다. 노동시장 규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공단에서 먹고 쉬는 문제라도 신경 써 달라 촉구했지만 외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주변부·취약계층 노동자 지원을 위해 고용노동부에 ‘미조직근로자지원과’를 만드는‘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 국가의 노동정책이다.

선별적 포섭조차 없이 배제만 당해온 시화공단엔 ‘노동자가 없다’

그럼에도 국가와 자본의 몰(沒)노동·반(反)노동 기조의 노동정책이 30여 년 넘게 지속·관철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것들이 배때지가 불러서 그래. 쟤네들 파업 때문에 우리가 며칠째 일손을 놓고 있는데. 여기 와서 일해 보라 그래, 하루도 못 버티고 도망갈 놈들이…”

최근 삼성전자 파업 뉴스를 보면서 시화공단 노동자가 한 얘기이다. 공단 선전전을 마치고 식사를 하던 나와 연구소 사람들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저런 얘기를 하는 노동자가 있다니… 아쉬웠다. 지난 30여 년간 보수언론이 주창한 노동배제의 시장 논리가 지닌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이다. 그람시가 언급한 헤게모니적 지배·통치 스타일이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서 가능한 이유이다.

노동시장 상층부 조직노동에 대해서는 배제와 선별적 포섭에 기반한 갈라치기로 일부는 포섭되거나 일부는 배제되어 왔다. 하지만 시화공단과 같은 중소사업체 노동자들은 산업화 이후 한 번도 국가와 자본의 포섭 대상이 되어 본 적도 없다. 아니, 오로지 배제로 일관해 왔다. 1987년 이후 3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개된 노동관계의 과정이자 결과가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시화공단의 노동현실이다. 물질적으로 나아졌고, 일정 정도 조직노동의 이해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출해 왔지만 ‘노동배제의 성장체제’는 주변부 노동시장에서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 글 모두에 언급한 대학교에서 대학이라는 공동체에 학생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4층짜리 건물에서 1층에만 화장실을 만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시화공단에는 노동자가 없다. 다만 ‘일하는 기계로서 근로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화장실도 휴게실도 없는 공장에서 일 시키려는 생각을 했을까?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면서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21세기 시화공단에서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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