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흘렸는지 검증없고 난투극 단순 중계만

제보자 의도 확인 없이 보도하다간 이용당할 수도

'읽씹' 당사자 한동훈 반론 보도 없는 것도 문제

정치를 참 야비하게 한다. 타인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예의도 없다. 한배를 타고 있어도 그렇다. 권력 게임에서는 선후배도 동지도 없다. 한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라더니 몇 달 전에 뒤에서 흉 좀 봤다고 보복하는 것 같다. 뒤끝 작렬이다. 일진이 쪼무래기들을 시켜 미운털 박힌 놈을 집단 따돌림으로 괴롭히는 난장판 복수전이다. 학폭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고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같다. 한 마디로 개판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여당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던 한동훈에게 ‘디올백 사건’에 대해 사과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단다.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이 읽고도 아무런 답신이 없었단다. 그게 ‘읽씹’이란다. 아무리 여당의 대표라 해도 감히 대통령 부인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읽씹’ 하다니, 그건 예의가 아니란다. 대통령 부인을 무시한 거란다. 한동훈은 졸지에 총선 참패의 원흉이 되고 키워준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가 되었다.

대다수 언론은 마치 학폭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읽씹’ 진흙탕 난투극을 중계하기에 바쁘다. 민주당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비명횡사’ 프레임을 씌우며 난도질을 했을 텐데, 국힘의 난장판 난투극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고 불장난하다가 곳간을 태울까 전전긍긍이다. 한동훈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연판장을 돌린다는 말까지 나오자 대통령실은 당 대표 선거에 대통령실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발을 뺀다. 싸움의 불씨는 용산에서 날아온 것 같은데. 

김건희 문자 한동훈 ‘읽씹’ 보도에서 언론이 놓치는 게 있다. 정보의 출처를 밝히고, 발언의 취지와 맥락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보도준칙, 언론의 윤리가 실종됐다는 거다. 누군가 기자에게 정보를 넘길 때는 그 의도를 의심해봐야 한다. 공익적 목적의 제보도 있지만, 정치적 의도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어 언론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정보를 제공한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보도가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특종 보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작년 11월 26일, 인터넷 언론 ‘서울의 소리’는 김건희 여사가 재미교포 목사이고 통일운동가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고가의 ‘디올백’ 선물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니, 뭘 이런 걸 자꾸 가져오고 그러세요’ 하며 김건희 여사는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고, 총선이 불과 다섯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디올백’ 폭탄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민심은 말할 것도 없고, 이대로는 선거는 하나마나라는 자포자기의 원성이 당 안팎에서 자자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12월 21일, 한동훈 법무장관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했다. 그나마 여권에서는 보수층의 관심을 끌던 한동훈이 구원투수로 발탁되어 등판한 것이다. ‘디올백’ 폭탄을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여당을 구하러 나선 한동훈은 그때 이런 말을 남겼다.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면 원하는 공이 들어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휘둘러야 한다."

그 당시에 ‘노태우의 6.29’ 선언을 입에 올리는 호사가들이 많았다.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나를 밟고 가라’고 했었단다. 그래야 분노한 민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으니 고육지책이었단다. ‘친윤’ 매체들은 여당 대표는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임무는 ‘윤석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며 등을 떠밀었다. ‘9회말 2아웃’ 상황에서는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애매해도 후회 없이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는 한동훈의 말에 보수 유권자들은 큰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훈의 입에서 사이다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2024년 1월 5일, 민주당 단독이지만 국회에서 의결한 ‘김건희 특검법’이 정부로 이송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디올백으로 들끓던 민심은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국민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대통령을 뽑았지 아내 지키는 상남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다. 그런 ‘상남자’ 대통령 남편을 두었지만, 특검법의 당사자이고 디올백의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는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열흘이 지난 1월 15일 김건희 여사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텔레그램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TV조선이 오탈자만을 수정하고 원문 그대로 보도했다는 그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다.

“요새 너무도 고생 많으십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립니다 ㅠㅠㅠ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 괜히 작은 것으로 오해가 되어 큰일 하시는데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만한 사안으로 이어질까 너무 조바심이 납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 한번만 브이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꼭 좀 양해부탁드려요.”

‘제 특검 문제로 대통령과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라는 말은 ‘김건희 특검법’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걸로 들린다. 그런데, ‘쬐끄만 파우치’ 디올백을 말하는 건지 적시하진 않았지만, 민심을 들끓게 만든 중대한 사안인데 김건희 여사는 ‘작은 것으로 인한 오해’로 치부한다. 남편인 대통령을 ‘브이’라고 부르는 것도 특이하다.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으니 전화를 하든 만나든 하라는 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의미로 읽힌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 메시지에 답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김건희 여사는 같은 날,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제가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제 탓입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단(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한동훈은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는 다소 자학적인 그 메시지에도 답신을 하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는 몹시 불쾌했을 것이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을 것이다. 화가 몹시 났을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라고 하는 여자의 말은 ‘내 잘못이 크지만 사소하게 여기고 나를 지켜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틀 뒤인 1월 17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대신하여 비대위원 김경률 회계사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나선다. 김경률 회계사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직접 영입한 비대위원이고 한동훈의 복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좀 많이 나갔다.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유하면서 ‘난잡한 사생활’이라는 말까지 나와버렸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다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거다. 김경률 비대위원은 1월 8일에도 '김건희 리스크'라는 6글자는 아무도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었다.

정치 초보라 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들께서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김경률 비대위원을 거들었다. 1월 19일, 김건희 여사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또 한 번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프로 빠졌고 지금껏 제가 서울대 석사가 아닌 단순 최고위 과정을 나온 거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걸 위원장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1월 19일의 김건희 문자 메시지에는 두 번의 ‘그럼에도’가 등장한다. 사과를 안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는 장황한 설명 뒤에 ‘그럼에도’ 사과를 하라면 하겠다는 건데, 그 말은 ‘처분대로 따르겠다’의 의미보다 ‘사과를 안 하는 사정을 이해하여 달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 당시의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사과를 해선 안 된다’는 거였다.

인터뷰나 주장, 발언을 인용하여 보도할 때는 취지와 맥락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앞뒤 잘라먹고 일부만 발췌하거나 앞뒤의 순서를 바꾸는 조작으로 발언의 취지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만국 공통의 보도준칙이고 언론의 윤리다. ‘그럼에도’의 앞부분만 들려주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보도하면 왜곡 보도가 된다. 마찬가지로 뒷부분만을 들려주는 것도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게 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김건희 여사의 ‘그럼에도’ 문자 메시지를 ‘읽씹’하고 이틀이 지난 1월 21일,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를 만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항간에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인데 등에 칼을 꽂았다고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사퇴 요구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공개했다. 윤석열-한동훈 갈등설이 증폭되었고, 친윤 매체들은 이러다 공멸이라는 위기의식을 쏟아냈다. 마치 제 집안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1월 23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눈이 내리는 충남 서천의 화재현장에서 눈을 맞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다. 밤사이에 200여 개 점포를 태운 재래시장의 화재로 국민의 관심은 충남 서천의 화재현장에 쏠려 있었다. 국민의 시선이 쏠린 화재현장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눈을 맞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기다렸고, 20여 분 뒤에 나타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를 하긴 했으나 시선을 주진 않았다. 외면하다시피 했고 분위기는 싸늘했다. 언론은 ‘봉합’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사실은 ‘복종 의식’에 가까웠다. 눈 내리는 화재현장에서 ‘복종 의식’이 있던 날, 김건희 여사는 한동훈에게 또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제가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님의 극단적인 워딩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님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씀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너무도 잘못을 한 사건입니다. 저로 인해 여태껏 고통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노고를 해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위원장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 가지로 사과드립니다.”

과거에도 이런 영부인이 있었을까? 댓글팀을 활용하여 한동훈 비방을 시킨다,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 김경률 회계사의 워딩... 이런 화법을 사용한 영부인이 있었을까 싶은 문자 메시지에는 또 ‘그럼에도’가 등장한다.

김건희 여사의 문자 메시지를 입수한 CBS 김규완 논설실장은 메시지 내용을 ‘재구성’하여 전하면서 김건희 여사가 ‘정중하게’, ‘굉장히 굴욕적으로 저자세’로 사과를 하라면 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한동훈 위원장이 ‘읽씹’하여 굉장히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보도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인터뷰나 발언, 의견, 주장을 인용하여 보도할 때는 취지와 맥락을 훼손하면 안 된다. 자칫 왜곡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원문을 그대로 보도하는 게 원칙이고 재구성, 편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내용이 길어 축약을 하더라도 원문의 취지나 맥락에 충실해야 한다.

 

김규완 논설실장은 ‘그럼에도 사과를 하겠다’는 취지라고 보도했지만, 한동훈은 ‘사과하지 않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고 반박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문해력에 따라, 어느 편이냐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인용 보도를 할 때는 축약, 재구성, 편집 등으로 인한 왜곡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원문을 그대로 보도하라는 거다.

제보로 입수한 정보를 보도하는 경우에는 그 정보가 사실인지 여부는 물론이고 정보 제공자(제보자)는 누구이고 왜 제보를 했고 왜 보도하기로 했는지를 보도에서 정직하게 밝히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뉴스를 신뢰할 수 있고, 그걸 투명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제보자 중에는 정치적인 의도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어 기자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걸 걸러내지 않으면 언론은 그들의 선전도구가 된다.

김건희 문자 한동훈 ‘읽씹’ 보도에서 빠진 게 또 하나 있다. ‘읽씹’의 당사자인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반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거다. 김건희 여사가 ‘굴욕적인 저자세’로 사과를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씹’하여 굉장히 모욕을 느꼈다는데, 그에 대한 한동훈의 반론을 같이 보도했어야 했다. 그래야 전후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반론은 기사의 구색 맞추기로 고발 대상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는 게 아니다.

김건희 문자 메시지를 보면 헷갈린다. 한동훈을 의심하지 않고 김경률의 ‘마리 앙트와네트 발언’에 화가 났지만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니 사과를 하라면 하겠다는 것인지, 사과하라면 할 수도 있지만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인지. 때로 남자들은 여자들의 속내를 읽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낸 말을 진심을 착각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화재 현장에서의 복종 의식이 있고 이틀이 지난 1월 25일, 김건희 여사는 다섯 번째 ‘읽씹’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큰맘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나흘 뒤,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한남동 관저로 불러 점심을 같이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김건희 여사의 문자는 ‘읽씹’했으나 밥 먹으러 오라는 대통령의 분부는 거절하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김건희-윤석열 부부는 정말 부부 일심동체인 것 같다. 언론은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마치 지향점이 같기라도 하다는 듯이 창밖의 어딘가를 보며 대화를 하는 ‘대통령실 제공’ 사진을 보도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촉발된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봉합된 게 아니었다. 큰불은 껐으나 불씨는 살아 있었다. 총선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난 뒤에 한동훈은 해산한 비대위원 전원과 두 시간에 걸쳐 점심 식사를 했다. 사흘 뒤 윤석열 대통령은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동훈에게 오찬을 제안했으나 한동훈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지난 202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에서 한 시민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한참이 지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 경선에 나서자 사과하겠다는 김건희 문자 메시지를 읽씹’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한동훈은 영부인을 무시하는 무례함으로 총선을 참패로 이끈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한동훈이 ‘읽씹’했다는 김건희 문자는 누가, 어느 쪽에서 기자에게 제공했을까? 왜 제보를 했을까? 정치적 의도는 없었을까? 그 제보를 받은 기자는 ‘정치적 의도’까지 검증했을까? 검증이 없어서 제공자 쪽의 정치적 의도에 끌려간 건 아닐까? 의문을 남기는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다.

물론 그 모든 걸 다 확인하고 검증할 수는 없다. 보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제보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더니 사실일 개연성이 크고, 보도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보도하는 것이 원칙이다. 보도가 나가면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고 그걸 다시 재반박하는 과정을 거쳐 진실에 다가가는 경우도 있다. 김만배-신학림 녹취 보도가 그렇다. 그 보도는 대선후보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보도였고, 반박과 재반박을 통해 유권자들이 진실에 다가가게 하는 보도였다. 검증 대상 후보의 반박이 성실하지 않았지만.

김건희 문자 한동훈 ‘읽씹’ 보도에서 우리 기자들은 무엇을 놓쳤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주장과 의견을 인용하는 보도를 할 경우에는 앞뒤 잘라먹는 거두절미나 입맛에 맞는 부분만 발췌하여 과장하는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게 왜곡이다. 입맛 당기는 제보를 입수했다고 덜컥 보도해선 안 된다. 정치적 의도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 아닌지 검증해야 한다. 오해의 여지가 있는 보도를 할 경우에는 정보 제공자가 누구인지,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했는지, 오해의 여지가 있음에도 왜 보도하기로 했는지 등등을 같이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김건희 문자, 한동훈 ‘읽씹’ 보도에선 그런 보도준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흔히 정치공학이라 부르는 권력 암투를 양비론과 상대를 물고 할퀴려는 정치적 의도에 오염된 보도가 전부였다. 기자들에겐 교과서로 통하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쓴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그걸 ‘투명성의 정신’이라고 했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인터넷 시대에는 언론의 신뢰를 위해 가장 절실하다면서.

뱀발.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말하는 건지 디올백 선물을 말하는 건지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제가 너무나 잘못한 사건’이라고 고백을 하였으니 검찰은 당당하게 김건희 여사를 소환하여 조사하기 바란다. 아울러 국민권익위는 ‘디올백 선물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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