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정 칼럼]‘김건희법’, 공감없는 정치적 이미지 전략
진정성 의심스런 소품 ‘에코백’과 ‘바이 바이 플라스틱’
연출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그 내용 사이의 불협화음
실제행동과 상반된 이미지 전략, 불신과 냉소 낳을 뿐
기로에 선 표절 논란 ‘파울 클레’ 관련 숙명대 석사논문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국민이 그럴 텐데 나도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게 관심이 많다. 그가 나오거나 관련된 뉴스에는 어김없이 눈길이 간다. 그 뉴스는 비단 학위논문 표절이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핸드백 수수, 나아가 국정농단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남용 등만은 아니다. 김 여사가 연출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그 내용 사이의 불협화음이 갈수록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는 미술 전공자이자 전시기획자, 문화사업가였다. 무엇이 첨단이고 멋지게 보이는지 감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감각이 권력이 될 때, 그것은 진정성이 사라진 빈 껍데기이자 겉치레로 변질된다.
김건희법
최근 대통령실은 “별칭 ‘김건희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개 식용 종식법)이 제정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매년 2000여 통 이상 오던 외국인들의 민원 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라고 발표해 빈축을 샀다. 개 식용 종식법을 ‘김건희법’으로 부르는 것이 지난해 문제가 됐음에도 또다시 의도적으로 이 말을 사용한 것이다. 개 식용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은 40여 년 전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맹렬히 비난한 사실이 외신에 보도되면서 국내 여론도 높아졌다.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는 ‘미개한 문화’를 벗어나자는 차원을 넘어 반려견 문화가 정착되고 여기에 동물권, 탈육식 등의 인식이 공감을 얻으면서 마침내 개 식용 종식법이라는 성과를 낳은 것이다. 수많은 동물보호 및 동물권 단체들의 노력이 숨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것이 김 여사의 치적이 됐다.
대통령 부부가 여러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개 사과’(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전두환을 옹호했다가 문제가 되자 사과의 의미로 애완견 토리와 사과 사진을 SNS에 올린 것)를 비롯해 산책로, 집무실,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밭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완견과의 동반 사진을 빈번하게 노출했다. 해외 순방에서도 개를 사랑하는 영부인 이미지를 종종 활용하는 김 여사는 지난해 8월 동물단체들의 개 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 식용 종식법에 ‘김건희법’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많은 이들의 노력을 가로채는 일일 뿐 아니라 정치적 이미지 전략에 불과하다. 그토록 개를 사랑하는 김 여사가 다른 생명에 대한 공감을 드러내는 것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에서 죽은 159명의 희생자에 대해서도, 수해현장에서 희생된 채 상병에 대해서도 제대로 애도하기는커녕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돌덩이 같은 마음으로 법적 책임만을 따지고 있다. 두 사람을 동일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원팀’으로 활동하는 대통령 부부의 상반된 행동과 이미지 전략은 불신과 냉소를 낳을 뿐이다. 다정하게 개를 안고 있는 영부인의 모습이 따뜻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개만 사랑하는 것은 개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나는 ‘애니멀 피플’의 진정한 모습은 반려견과 사진을 찍는 멋진 사람이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생명에의 끌림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바이 바이 플라스틱
김 여사가 해외 순방에 들고 다니는 에코백과 ‘바이 바이 플라스틱’이라는 문구도 뜬금없이 느껴지기는 매한가지다. 에코백은 그저 패션이 아니며 ‘나는 명품백을 들지 않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다. 에코백은 일회용 비닐백을 대체하는 도구이며 생태적인 삶을 살겠다는 의지와 취향의 표현이다. 더구나 ‘바이 바이 플라스틱’은 윤석열 정부의 거꾸로 가는 기후환경 정책과는 굉장히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규제 과태료 유예, 대형 마트 포장재 재도입 등 자원순환 정책을 퇴보시켰다.
이런 정부를 여러 차례 강력히 규탄해온 환경단체들은 최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2022년 6월 10일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어야 했던 날이지만 현재 제주와 세종에서만 축소 시행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9월 환경부가 2025년까지 전국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던 계획을 지자체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변경하면서 제도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국제플라스틱협약 체결을 위한 마지막(5차) 회의가 올 11월 부산에서 열린다. 이 협약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오염 대응을 위한 세계 첫 협약으로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결의되었으며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지구 온난화 대응 및 환경보호를 위한 가장 중요한 협약으로 꼽힌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최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제4차 회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년 2억 3400만 톤에서 2019년 4억 6000만 톤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19년 한 해에만 3억6000만 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으나 이 가운데 재활용은 9%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어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킨다. 막상 협약 체결이 다가오자 참가국들이 발을 빼는 바람에 주최국인 한국이 ‘협상개최국 연합’을 제안하고 나섰지만, 정작 우리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일인당 연간 133 킬로그램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영부인의 에코백에 쓰인 ‘바이 바이 플라스틱’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비록 부산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부산에서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세계에 홍보하고 잘 치르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플라스틱을 줄이자는 진정성이 담겼다고 보기에는 정부의 정책 퇴행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순환경제를 구축한다고 하면서도 플라스틱 감축 방안으로 생산과 소비를 줄이기보다 재활용을 늘린다는 방침인데 이는 낮은 재활용 비율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없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앞두고 그린피스가 19개국의 시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민의 82%가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해야 한다고 답변했는데도 말이다.
파울 클레, 마크 로스코
숙명여대 총장선거에서 ‘김건희 논문 검증 진상 규명’을 약속한 문시연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가 당선됐다. 문 교수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당선되면 왜 논문 검증이 안 되는지 진상 파악부터 해보겠다.”라고 했는데 이런 공약이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96%)를 받았다. 김 여사가 1999년에 제출한 숙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 석사 논문 ‘파울 클레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2022년 2월 예비조사에 들어갔으나 2년이 넘도록 결론을 못 내고 있다. 그 사이 민주동문회와 일부 교수들이 자체 검증을 실시해 표절률이 48~5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대학이 결론을 못 내는 이유는 당연히 검찰수사와 대학 지원 중단 등 각종 보복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남다른 기개를 보여준 신임 총장이 석사 논문 표절에 대한 결론을 내서 학위 수여가 취소된다면 김 여사가 2007년 국민대에서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받은 박사 학위도 취소될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딸 조민 씨의 선례에서 보듯 부정한 석사 학위를 이용해 박사 과정에 입학했으므로 논문의 표절 여부나 수준에 상관없이 논문 제출 자체가 무효가 된다. 김 여사의 최종 학력은 박사에서 학사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숙명여대 석사 논문의 주제가 파울 클레였다는 데 새삼 눈길이 갔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1879~1940)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문명의 폐허를 직시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유대인으로 나치를 피해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사살된 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클레의 대표작 ‘새로운 천사’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림의 천사는 자기가 줄곧 보던 것들로부터 떠나려는 것 같다.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이런 모습일 게다.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그는 온갖 난파된 잔해를 쌓아 올리며, 그의 발 앞에 내던져진 대참사를 목격한다. (…)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런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 여사가 전시업체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하면서 기획자로서 이름을 알린 전시가 마크 로스코 전(2015)이었다는 점도 특별하다. 미국의 추상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사랑했던 작가이며 현대미술 사상 최고 경매가를 여러 차례 기록했다. 가장 단순한 사각형으로 화면을 분할하고 캔버스 안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듯한 색의 묘사만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색면회화를 제작했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의 화면을 보고 자살한 관객의 에피소드는 작가의 명성을 더해주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이 전시는 3개월간 25만 명의 관람객을 모아서 화제가 되었다.
파울 클레, 마크 로스코를 선택한 김 여사의 안목이나 취향은 상당히 높다. 이들은 역사의 비극과 인간의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대가들이다. 그러나 파울 클레에 대한 논문을 쓰고 마크 로스코 전시를 기획한 김 여사가 이들의 예술세계로부터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배움이나 교훈을 얻은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김 여사는 스스로 예술작품이 되는 길을 택했는지 모른다. 대통령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연출 사진으로부터 권력의 주인공, 나아가 회화 속의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고 싶은 욕망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구도 속에 동물이나 에코백이 등장할 때 생태·환경·기후 문제는 주인공의 식견과 취향을 돋보이게 해주는 소품으로서 무척이나 가볍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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