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토 "국민 목소리 듣겠다"…'서민 증세안' 백지화

윤, 총선 참패에도 민심 외면…'탄핵 청원' 불붙어

윤과 루토, 둘 다 반중국·반러시아 '미국 선봉대'

과도한 예산 탕진, 뻔질나는 외국 방문도 공통점

윤석열 '서민 증세' 정책서 루토에 뒤지지 않아

케냐 국가인권위, 대통령 향해 "선동적" 직격탄

"이번 2024년 재정법안을 절대 원치 않는다는 케냐 국민의 큰 목소리를 경청하고 나는 받아들인다." 케냐의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 뒤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묵살하고 입법을 강행했던 대대적 서민 증세안을 담은 재정법안 백지화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26일 나이로비 정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의 시위를 촉발한 서민 증세안의 철회 방침을 밝히고 있다. 2024. 06. 26 [AFP=연합뉴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26일 나이로비 정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항의 시위를 촉발한 서민 증세안의 철회 방침을 밝히고 있다. 2024. 06. 26 [AFP=연합뉴스]

루토 "국민 목소리 듣겠다"…'서민 증세안' 백지화

윤, 총선 참패에도 민심 외면…일말의 반성도 없어

루토 대통령은 "그래서 나는 재정법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라 법안은 철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본인이 공공 부채 감축을 구실로 이 서민 증세안을 밀어붙여 25일 의회를 통과시켰지만, 경찰의 실탄사격으로 항의 시위 중이던 시민 2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루토는 전날 공언했던 강경 방침을 바꿔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하겠다고 얘기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뒤늦게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루토 대통령은 수도 나이로비를 포함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항의시위를 주도했던 청년층과 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세금 인상이 아닌 정부 지출 축소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먼저 대통령실부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밝히고 의회와 법원, 지방정부의 동참을 요청했다.

민생 파탄과 각종 부정부패 비리, 경제 폭망, 자해 외교, 검찰의 인사 독식, 언론탄압 등 탓에 4·10 국회의원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일말의 반성도 없이 '망국적' 국정 기조를 그대로 밀어붙이고 본인과 관련 의혹이 짙은 채해병 수사외압 진상 규명 특검법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14번의 거부권을 행사해온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의 자세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15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도시 사마르칸트를 방문, 이터널시티에서 공연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6.15 [공동취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15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도시 사마르칸트를 방문, 이터널시티에서 공연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6.15 [공동취재] 연합뉴스

윤과 루토, 둘 다 반중국, 반러시아 '미국 선봉대'

과도한 예산 탕진, 번질나는 외국 방문도 공통점

윤 대통령과 케냐의 루토 대통령은 서로 닮은 점도 많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에 취임했고, 루토 대통령은 같은 해 9월에 취임했다. 둘 다 보수 강경파 인물이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케냐 두 정상은 모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 국빈방문을 다녀왔다. 윤 대통령은 작년 4월, 루토 대통령은 지난 5월이었다. 미국은 당시 케냐를 주요 비(非) 나토 동맹국(MNNA)로 지정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루토는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 다가가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기후 변화 문제에 진보인 척하고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과는 달리 중립을 표방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 대학살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거부했다.

범아프리카싱크탱크인 안보연구소(ISS)의 윌리스 오쿠무 선임 연구원은 미국과 서방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아프리카 대표 선수로 루토를 포섭한 것은 "그가 서방의 이익을 위해 선봉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취임 직후부터 '가치 외교'와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걸고 미국 주도 반중국, 반러시아 전선의 선봉을 자처해 은 윤 대통령의 행보와 아주 닮았다.

루토 대통령은 케냐 안에서는 과도한 정부 예산 탕진으로 비판받아왔다. 그래서 '제트족'(jet-setter·제트여객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부자들)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그에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대통령"(flying president)란 모욕적인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알자지라는 "그는 자신의 해외 방문들이 재정난에 처한 나라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며 취임 이후 모두 9차례의 국빈방문과 다자 국제회의 참석을 포함해 33차례의 해외 순방을 하고, 작년 한 해만 해도 정상외교 비용으로 역대 최대인 578억 원을 물 쓰듯 한 윤 대통령 부부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도심에서 25일 대대적 서민 증세안을 담은 윌리엄 루토 정부의 재정법안 입법에 반대하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24. 06. 25 [UPI=연합뉴스]
케냐 수도 나이로비 도심에서 25일 대대적 서민 증세안을 담은 윌리엄 루토 정부의 재정법안 입법에 반대하는 격렬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24. 06. 25 [UPI=연합뉴스]

윤석열 '서민 증세' 정책서 루토에 뒤지지 않아

"항의 시위 주도 케냐 청년층, 보는 대로 말해"

'서민 증세' 정책도 유사하다. 루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케냐의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민생고가 극심한데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대적인 서민 증세를 추진한 게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렀다. 작년에 급여 생활자 총소득의 1.5%를 주택세로 부과하고, 석유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8%에서 16%로 2배로 인상했다. 케냐의 Z세대(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생)가 들고일어난 데 대해 정치 연구가이자 작가인 난잘라 냐볼라는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거리로 나온 까닭은 그들은 보는 대로 말하기 때문이다"라면서 "나이든 세대들은 정치인들의 약속과 이행 간의 갭에 익숙하지만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철회되긴 했지만, 이번 재정법안 추진 과정에서 식품과 연료, 자동차, 금융거래 관련 세금에서 소득세, 환경부담금, 부가가치세(VAT) 등을 망라해 거의 서민 증세의 종합세트를 보여줬다. 이런 부정으로 거부가 되면서 유대 민중의 원성과 멸시를 받았지만, 예수를 만나 회개한 여리고의 세무관리 '삭개오'란 별명도 붙었다.

국가재정은 역대 최대 세수 펑크가 불 보듯 하는데도,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대폭 인하 같은 '부자 감세'에 여념이 없고, 정부 재정을 목적도 불분명한 사업에 물 쓰듯 쓰며,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와 같은 '서민 세금'은 대폭 인상을 추진하는 윤 대통령도 루토에 뒤지지 않는다.

 

케냐국방군 병력들이 27일(현지시간) 항의 시위 재개에 대비해 수도 나이로비에 거리에 배치되고 있다. 2024. 06. 27 [AFP=연합뉴스]
케냐국방군 병력들이 27일(현지시간) 항의 시위 재개에 대비해 수도 나이로비에 거리에 배치되고 있다. 2024. 06. 27 [AFP=연합뉴스]

'서민 증세안' 백지화에도 루토 대통령 사임 요구

윤도 동병상련…'탄핵 국회 청원' 7일에 30만 명

루토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수용해 '서민 증세안' 백지화했지만, 야당과 항의 시민들은 대통령직 사임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인 칼론조 무쇼카 전 부동령은 'X'를 통해 "많은 케냐인이 사망했고 심각한 부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지금은 재정법안 문제를 넘어섰다"며 루토의 사임을 촉구했다. 한편, 시위대는 예정대로 27일 전국적인 집회를 개최했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시위대가 다시 모여들자, 케냐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탄을 발사했으며, 곳곳에 케냐국방군병력들이 대거 배치됐다. 

윤 대통령도 탄핵 압박을 받는 등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여 있다. '윤석열 탄핵' 국회 청원이 공개된 지 7일 만인 27일 현재 30만 명을 훌쩍 넘어서며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청원인 권모씨는 청원 취지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대한민국은 총체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경제, 안보, 외교, 민생, 민주 등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가 총파산하고 있다"며 "총선에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윤석열은 국정 기조를 전환할 의지가 없다.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가고 반성할 줄 모르는 윤석열을 더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의회 의사당 근처에서 서민 증세안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던  한 시민이 경찰이 쏜 고무 총탄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2024. 06. 25 [AFP=연합뉴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의회 의사당 근처에서 서민 증세안에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던  한 시민이 경찰이 쏜 고무 총탄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2024. 06. 25 [AFP=연합뉴스]

케냐 국가인권위, 대통령 향해 "선동적" 직격탄

서방국 대사들 공동성명 통해 '유혈 진압' 비판

루토의 재정법안 철회에 대해 오쿠무 연구원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단지 시간을 벌고 있다"며 "그것(재정법안)은 정치적으로 타격을 준다는 조언을 그가 받았고 서방의 압력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영국, 독일을 포함한 케냐 주재 서방국 대사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실탄 사격을 포함해 비극적 사망과 부상에 유감을 표한다…시위대 납치 의혹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한편 케냐 국가인권위원회는 25일 대규모 시위에 대한 루토 대통령의 강경 대응 발언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루토 대통령은 25일 밤 대국민 연설에서 "조직적인 범죄자들에 의해 선량한 시민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가 침해됐다. 반역적인 안보 위협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케냐 국가인권위는 "둔감하고 선동적"이라고 비판하고 그 발언은 시위대가 흩어진 지 몇 시간 뒤 나이로비 교외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시민들이 사망하는 데 기름을 부었다고 주장했다. 현직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케냐 국가인권위의 당당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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