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미국·영국·러시아·중국·일본 이젠 한국
4일 서울서 첫 다자 정상회의…48개국 대표 참석
"아프리카 대륙, 글로벌 강대국들 사냥터 전락"
"아프리카 엘리트, 의심스런 외국투자자와 공모"
케냐 개별 행동 비판…아프리카 집단 대응 주문
대통령실 "글로벌 중추 국가 위상 확인 기대"
"아프리카는 대륙이다. 그런데 왜 우리 자신을 개별국가와 같은 수준으로 격하하는가. 우리 지도자들 대부분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탈리아,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이젠 한국을 찾아가는 그런 자들이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이들 나라보다 열등하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
부른다고 달려가나…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자성론
짐바브웨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사회운동가인 텐다이 루벤 음보파나는 '세계 각국은 언제까지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소환할 것인가'란 <더 짐바브웬> 1일 자 기고에서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이 첫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한 사실을 전하면서 특정국의 초청에 그동안 아프리카 정부 수반들이 대거 응해온 것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더 짐바브웬>은 짐바브웨 주간지로 '목소리 없는 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표방하고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 따르면, 4일 서울에서 아프리카 48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첫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린다. 아프리카 국가 간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 55개국 중 정치적 이유로 참석 못하는 7개국을 뺀 모든 나라가 초청에 응했으며, 이 중 25개국에선 국가 원수가 참석한다. 정상회의는 한국과 AU 의장국인 모리타니가 공동으로 주재한다.
서울서 첫 다자 정상회의…48개국 대표 참석
5일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무역협회가 주관하는 '2024 한-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이 열리며, 한-아프리카 청년 스타트업 포럼, 글로벌 ICT 리더십 포럼, 관광 포럼, 농업 콘퍼런스 등 13개 부대행사도 준비됐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31일 시에라리온 정상과 오찬 회담을 했으며, 2일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정상과 각각 오찬과 만찬 회담을 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회의에 초대받은 대부분의 나라가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한국과의 협력에 대한 아프리카의 높은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지난해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한국이 식민 지배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산업화를 달성하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산업구조가 보완적이란 점이 아프리카에 호소력이 있다고 보고, 이번 회의를 통해 아프리카의 방대한 광물 자원에 대한 한국의 접근성을 키우고 북핵 문제 등과 관련해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의 지지를 끌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 정상회의를 포함해 아프리카의 잇단 다자 정상회의를 보는 음보파나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가 대표적으로 거론한 사례만 봐도 최근 몇 년간 △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2024년 1월 28~29일 로마) △ 제16차 미국-아프리카 비즈니스 서밋(2024년 5월 6~9일 댈러스) △ 영국-아프리카 인베스트먼트 서밋(4월 예정이었다가 연기) △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2023년 7월 27~28일 생페테르부르크) △ 도쿄-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 2022년) △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정상회의(FOCAC. 2021년) 등 한두 번이 아니다. 아프리카가 다른 나라들과 강한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하지만, 이런 '일 대 다수'의 형식은 뭔가 잘못됐다는 게 그는 시각이다.
"아프리카 대륙, 글로벌 강대국들 사냥터 전락"
당연히 아프리카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음보파나는 "도대체 단 한 명의 대통령이 54개국 정부 수반을 소환할 수 있는가. 당혹스럽지 않은가"라고 반문한 뒤 "우리 지도자들은 1950년~60년대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다른 나라에 대해 도움 줄 아프리카의 메시아로 여기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여전히 우리 자신을 아프리카 쟁탈전의 맥락에서, 경쟁하는 세계 강대국들이 쟁취해야 할 상품으로 우리를 여기고 있다"며 "우리는 자발적 사냥감으로 이들 나라의 자비에 맡기고 글로벌 강대국들의 사냥터가 된 것을 즐기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발상의 대전환을 주문했다. 막대한 규모의 지하자원을 지렛대로 삼아 아프리카가 관계의 주도권을 잡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음보파나에 따르면,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그린 수소, 지열 등을 포함한 재생 및 저탄소 기술에 핵심적인 광물들의 보유 비중이 전 세계의 30%에 달하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발견된 석유 매장량도 전 세계의 8%이고, 천연가스도 7%에 이르고 있다. 그는 "광물들은 아프리카 전체 수출의 평균 70%를 점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28%에 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따르면, 아프리카 정부 수입에 대한 채굴된 광물 자원 기여도는 향후 20년간 연평균 300억 달러(약 41조6000억 원)로 추산된다. 음보파나는 "세계가 가장 얻고 싶어하는 자원들의 원천으로서 새로 발견된 우리의 힘을 지렛대로 삼는 대신 글로벌 강국들이 우리를 괴롭히는 데 쓰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썼다.
"아프리카 엘리트, 의심스런 외국투자자와 공모"
그러면서 아프리카는 지금처럼 특정한 한 나라가 아니라, 같은 대륙의 차원에서 아프리카-유럽, 아프리카-아시아, 아프리카-아메리카 정상회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제 아프리카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더 지배적인 힘이 돼야 한다"며 "이들 세계 지도자는 우리의 정부 수반들을 어린애인 양 자국 수도로 부를 게 아니라, 거래와 투자 기회를 얻기 위해선 우리를 찾아와서 모자를 벗고 간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지속되는 까닭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렇다. "아프리카 대륙의 우리 지도자들은 부패할뿐더러, 자신들이 이끄는 나라에 반해서 사적 이익을 취할 의심스러운 투자 거래들을 확보하는데 더 관심이 많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짐바브웨 마랑게의 치아즈와 다이아몬드 광산을 포함한 중국 기업들의 짐바브웨 투자들을 예로 들었다. 일부 짐바브웨 지배층과 중국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반면, 짐바브웨의 일선 노동자들은 자기 땅에서조차 '이등 국민'이나 사실상 '노예'로 취급받으며 극빈자로 생활하고 있는 게 지금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음보파나는 "의심스러운 투자자들과 공모한 지배 엘리트가 우리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약탈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의 일반인들은 식민지 시절보다 실제로 더 가난하다"고 덧붙였다.
케냐 개별 행동 비판…아프리카 집단 대응 주문
지정학과 국제정책 전문가로 독립 싱크탱크 '리버티 스파크스' 소속인 탄자니아의 에즈라 은은코는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 아프리카가 교훈을 얻는데 얼마나 걸릴까'란 1일 자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몰래 '숨긴' 개별적 어젠다가 아니라, '집단적 어젠다'를 가지고 한국을 상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은은코는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 임하는 윤석열 정부의 목표를 △ 글로벌 중추국가(GPS) 도약을 위한 아프리카와의 협력 △ 아프리카 자원 쟁탈전 참가 △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를 통한 무역 기회 확보 등 크게 3가지로 압축한 뒤 3조1000억 달러를 지닌 14억 명의 인구와 방대한 천연자원을 지렛대로 삼아 주도권을 갖고 한국과 협상할 것을 조언했다.
은은코는 "아프리카는 한국 수출에 3%를 기여하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1%다"라면서 "아프리카가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한국이 아프리카를 더 필요로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아프리카는 자신의 잠재력을 아프리카의 지속가능성과 복지를 위한 협상 칩으로 쓰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 앞서 한국 투자자들에게 AfCFTA를 통한 시장접근 전략 기회를 제안한 케냐의 개별적 행동을 비판했다. 은은코는 2012년 출범한 AfCFTA에는 AU 55개 회원국 중 지금까지 8개국만이 예비 역내 협정에 서명을 마쳤다면서 "AfCFTA는 아프리카국가들이 오직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덫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케냐는 이 협정에 아직 서명도 하지 않은 상태라고 그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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