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매도하고 악마화하다 갑자기 칭찬한 이유

종부세, 국민연금 등에서 후퇴와 양보한 것 환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통 큰 양보’가 불가피했나?

시민대표단 숙의 결과에도 어긋난 후퇴와 양보

조세와 복지에 대한 대안적 프레임 만들 필요성

여야 합의보다 시민 집단지성과 민심 더 중요해

최근 조선일보가 사설과 칼럼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칭찬하는 의외의 일들이 벌어졌다. 사설에서는 “민주당 정책 전환, 포퓰리즘 탈피하면 진정성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고 칼럼에서는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이 대표가 … 시대 문제들을 정치권 의제로 올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국민의힘도 이 대표를 다시 보는 분위기”라고 추켜세웠다.

 

조선일보가 사설과 칼럼에서 거듭 이재명 대표를 칭찬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  관련 칼럼 화면 갈무리
조선일보가 사설과 칼럼에서 거듭 이재명 대표를 칭찬하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 관련 칼럼 화면 갈무리

그토록 민주당을 사사건건 매도하고 이재명 대표를 악마화하던 조선일보에서 이런 뜻밖의 태도들이 나오니까 일부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조선일보조차 이재명 대표의 위상과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이런 태도가 과연 반가운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족벌 사주와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데 철두철미한 조선일보에 칭찬받는 정책과 정치인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많은 쓰라린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조선일보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추켜세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종부세나 국민연금 등에서 국민의힘의 정책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제안에 대한 호응과 칭찬이다.

즉,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부자 감세에 반대하며 서민 복지를 확대하자던 포퓰리즘을 버리고 국민의힘과 타협하고 후퇴’하려는 것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더 많은 타협과 후퇴를 주문하는 상황이다. 물론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정부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고, 현실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결사반대하며 버티는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통과를 위해 유가족들의 양해와 동의 속에서 일부 조항을 빼야 했듯이 말이다. 그 점에서 민생지원금을 하위 70%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조정해서라도 시민들의 삶이 더 고달파지기 전에 통과시키려는 고충은 이해가 안 갈 것도 아니다.

그나마 종부세에 대한 폐지나 완화 논의는 민주당 안팎에서 따가운 비판들이 쏟아지자, 당 지도부가 나서서 일단 주워 담는 태도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를 13%로 늘리면서 소득대체율은 44%까지 줄이겠다는 민주당의 “통 큰 양보”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민주당은 ‘우리가 대폭 양보할 테니 빨리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자’고 국민의힘을 재촉했다.  

 

여야 국민연금 최종 개혁안. 연합뉴스
여야 국민연금 최종 개혁안. 연합뉴스

그렇게 되면 당장 시민들이 내야 할 보험료는 크게 오르지만, 나중에 받는 연금은 여전히 ‘용돈’ 수준에 머물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지금도 먹고살기 빠듯한 사람들에게 보험료 대폭 인상이라는 큰 부담을 주면서도 노후의 불안과 빈곤은 거의 개선되지 않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이런 후퇴는 얼마 전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서 3개월 동안 시민대표단이 충분한 학습과 숙의를 통해 선택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 방안과도 어긋났다. 시민대표단이 이 방안을 선택했을 때 민주당은 "노후 불안 해소를 위해 소득보장이 우선이라는 국민의 뜻을 확인했다"며 환영하고 이 결과를 “존중”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득대체율을 시민대표단의 방안보다 6%나 대폭 후퇴시키며 ‘통 큰 양보’를 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올바른 개혁을 위해 활동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의 기구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노인 대량 빈곤 사회를 벗어나자고 끊임없이 외쳐왔던 시민사회와 노동계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이라고 이를 비판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그동안 강조한 ‘시민들의 목소리와 집단지성을 들어야 한다’, ‘협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을 따르는 것’이라던 주장들에 비추어도 이율배반적이다. 시민대표단이 보여 준 ‘집단지성’과 ‘민심’보다는 국민의힘과 여야 합의로 국민연금 개혁안을 통과시키자는 “협치”를 더 우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번 ‘양보’가 ‘어차피 상대방이 거부할 것이니까, 윤석열 정권이 말하던 연금 개혁의 허구성을 드러내면서 이후에 민주당이 연금 개혁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술’이었다고 변명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실제로 민주당의 양보를 윤석열 정권이 거부하면서 연금 개혁의 공은 22대 국회로 넘어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2대 국회에서의 논의는 이번에 민주당이 양보한 것을 출발점으로 해서, 더 나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이번에 ‘민주당의 양보안을 수용하라’고 국민의힘을 채근하면서 ‘이번 기회에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를 하고 나서 (국민연금의 사회복지적 성격을 약화시키는) 구조 개혁은 22대 국회에서 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양대노총,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지난 2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공론화 결과에 따른 연금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양대노총,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정의당 강은미 의원 등이 지난 2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공론화 결과에 따른 연금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 상황의 바탕에는 거의 모든 주류언론이 합심해서 쏟아내던 ‘이제 곧 기금이 고갈되고 미래세대는 연금을 못 받는다’는 가스라이팅과 공포 마케팅이 있다. 청년세대와 노년세대를 갈라치면서 ‘세대 간 착취를 막고 재정 안정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프레임 속에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은 축소하는 방향의 개악이 정해진 결론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래서 지난 대선 TV 토론을 돌아보면 윤석열 후보가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민연금 개혁을 해내자’고 제안하고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모두 초당적으로 합의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에서도 이런 흐름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고, 오히려 ‘진보의 금기를 깨고’ 개악의 방향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이 이번에 민주당의 양보를 받지 않은 것은, 국민연금을 거의 해체하는 수준의 더 철저한 개악을 원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민의힘 등에서는 보험료를 15%까지는 더 올려야 하고, 국민연금의 물가 연동 장치도 제거해서 마이너스 연금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들이 계속돼 왔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껍데기처럼 되고 더욱 많은 사람이 재벌들이 운영하는 사적 연금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가장 극단적인 세대 간 갈라치기를 하면서 민주당-국민의힘 합의조차 반대하며 ‘기성세대의 구연금과 청년세대의 신연금을 분리하자’고 주장하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의 눈치도 봐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국민연금을 개악하면 역설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가난한 노동자, 자영업자와 함께 청년세대가 될 것이다. 보험료를 가장 많이 내고, 연금은 가장 적게 받고, 가장 늦은 나이에 연금을 받게 될 사람들은 바로 지금의 청년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국민연금을 지금 이 상태로 그대로 놔두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 현재 이 나라의 국민연금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국민연금에 가입도 못 하고 있는 사람, 가입하고도 돈이 없어서 보험료를 장기 미납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상자 중에서 무려 40%에 달한다. 노후가 막막할 수밖에 없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이고 영세자영업자,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이 받고 있는 돈도 평균 60만 원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돈으로는 안정적 노후 생활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국민 용돈’이라는 말이 나왔다. 유럽 복지국가에서 평균 연금액은 대개 200만~25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여전히 OECD 평균의 3배에 달하며 자살률도 OECD 최고 수준이다.

‘기금 고갈’의 공포 마케팅은 과장된 것이지만, 소수의 나라만이 채택하고 있는 적립식 연금은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재정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단지 가입자들의 보험료만이 아니라 국가 재정을 투입해서 연금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사적 보험이 아니라 공공복지라면 그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복지 선진국들은 국가의 연금 지급 보장을 법에 명시하고 있고, 저소득층과 취약층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해주고 있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서 공적연금을 제대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다. 국민연금이 과연 시민들의 편안한 노후라는 존재 목적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윤석열 정부처럼 재벌과 부자들에게 감세할 것이 아니라, 조세 정의를 통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고 복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대표단이 충분한 학습과 숙의를 통해 채택한 ‘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다. 

 

대선이 다가올 수록 '중도와 협치'의 압박은 커질 것이다. '종부세 폐지해야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최병천의 경향신문 칼럼 화면 갈무리
대선이 다가올 수록 '중도와 협치'의 압박은 커질 것이다. '종부세 폐지해야 대선에서 유리하다'는 최병천의 경향신문 칼럼 화면 갈무리

따라서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는 더는 후퇴와 양보를 멈추어야 한다. 종부세 완화나 폐지에 관한 이야기도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최근의 상황은 ‘정치세력은 강성 지지층만이 아니라 중도층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협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리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압력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 심해질 수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 지도부에서 종부세 완화와 폐지 주장들이 나오자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종부세 폐지 공론화 - 고민정 의원이 옳다”라는 글을 경향신문에 썼다. ‘민주당은 친기업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던 최병천은 이번에도 ‘종부세를 폐지해야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족벌언론만이 아니라 개혁언론과 일부 지식인들까지 되풀이하는 그런 압력에 맞서며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믿고 협치보다 민심을 따르겠다’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또 조세와 복지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프레임 내부에서의 논의를 벗어나 (예컨대 이재명 대표도 주장했던 기본소득, 횡재세 같은) 대안적 프레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정당들의 견제도 중요하다. 이번에 조국혁신당은 실망스럽게도 ‘시민대표단이 채택한 방안이 사회권 강화에 부합하지만 그래도 민주당의 양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이것은 ‘민주당보다 더 강한 개혁을 추구하는 쇄빙선, 예인선이 되겠다’던 약속과 어긋난 태도였다. 다행히 조국혁신당은 종부세 문제에서는 “자산 불평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서민 주거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당은 국민연금과 종부세 모두에서 매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민주당의 후퇴와 양보를 강력 비판했다. “우리 정치권에는 ‘중도확장론’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 이 유령은 노동자, 서민, 중산층을 위한 당연한 정책을 과격한 진보라 낙인찍고 우향우를 강요한다”(<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고 했던 이재명 대표 자신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원래 강력한 언론 개혁과 검찰 개혁을 주장하고 기본소득 등을 제시하면서 관심과 지지를 얻었다/ 오미이뉴스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이재명 대표는 원래 강력한 언론 개혁과 검찰 개혁을 주장하고 기본소득 등을 제시하면서 관심과 지지를 얻었다. 오미이뉴스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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