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9일,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원하는 동독의 국민들은 더이상 동독 정부를 견딜 수 없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동서독을 가르고 있던 베를린의 장벽을 점령했습니다.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아 '평화로운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해 1월11일에는 동서독 간의 모든 경계가 개방되고, 45년간 1400킬로미터에 달하던 철의 장막은 그해,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의 통일로 완전히 제거됐습니다. 그러나 동독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붕괴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면서, 사회주의 멸망에 절망하고 갑작스런 자본주의에 당황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기도 하고, 특히 일자리를 잃은 많은 젊은이들의 불만이 또다른 탈출구를 찾아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을 비하하는 말로 '오씨(Ossi)‘, 즉 '동독놈‘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만과 좌절과 자존감의 상실은 그들보다 더 약한 위치에 있는 외국인,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로 향했습니다. 동독출신인 메르켈 총리가 왜 동독지역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극우의 득세를 과소평가하면 안될 것 같은데…라고 이미 저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작센 주 (옛 동독 지역)에 있는 도시 호이어스베르다에는 베트남과 모잠빅 등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계약직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었고, 통일이 되기 전까지 그들은 별 문제없이 주민들과 평화로운 관계로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통일 직후 그 지역의 공업단지가 폭망하면서 26%의 실업율에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자, 극우세력이 급격히 생겨나게 됩니다. 급기야 1991년 9월17일, 이 노동자들의 숙소에 청년들이 몰려와 돌팔매질을 하고, 다음 날에는 더 많은 청년들과 주민들까지 합세해서 500여 명이 난동을 부리게 됩니다. 경찰이 이 숙소 주위를 격리하자 그들은 발길을 돌려 200여 명의 망명 신청자들이 사는 기숙사로 몰려가 돌과 쇠구슬을 퍼붓고, 화염병까지 던집니다.
일주일간 계속된 이 폭력사태로 망명신청자들은 결국 버스로 이송되고, 공격자들은 '무외국인의 청정지역‘이라고 환호합니다. 인권단체들은 이것이 극우세력에 대한 공권력의 첫 항복이었고, 진보정치인들은 유대인들의 상점과 집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유린한 1938년 '포그롬의 밤' 이후 가장 끔찍한 날이며, 독일 땅에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촉발제가 되어, 망명신청자들과 계약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습격당하고, 묄른과 졸링엔 (서독 지역)이라는 도시에서는 네오 나치의 방화로 터어키 출신 가족 8명이 살해되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호이어스베르다의 기억은 제게도 생생합니다. 일제와 그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나라에서 분단을 빌미삼아 계속되는 공안정치를 하던 나라에서 온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독일인 친구들에게 너희가 누려온 민주주의가 영원할 것이라 믿느냐, 이제 그게 무너져 내릴지도 모르니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거든요. 다행히 1992년부터 네오 나치와 극우에 맞서는 시민행동도 강렬해졌지만, 이제는 '독일민족연맹(DVU)‘ '국가민주당(NPD)‘을 거쳐 '독일을 위한 대안(AfD)‘정당이 기세를 높여 국회까지 입성한 상황입니다. 탈원전과 기후위기에 몰두하고, 코로나로 침체돼 있던 독일의 진보시민들이 이제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극우의 기고만장함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진보적인 어느 시민단체는 국민들에게 이 정당의 당원으로서 위헌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제보해 주기를 촉구하고 있고, 현재 432명의 신원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2019년 6월 2일, 헤센 주 카셀시의 시장이었던 발터 륍케 (기민당)는 네오 나치에 가담했고, AfD의 당원이었던 슈테판 에른스트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범인은 륍케 시장의 난민정책에 불만을 갖고, 사격 연습을 오래 한 후, 집 테라스에 나와 있는 시장을 살해했습니다. 구속되자마자 경찰은 범인의 신상을 바로 공개했고, 수많은 제보자가 있었으며, 경찰에 이어 검찰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공범도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60년대 이후 다시 일어난 정치암살이어서 그 파장은 꽤나 컸습니다.
튀링엔 주 (옛 동독) AfD는 3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국회의원인 뵈른 획케의 전체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선동이 강도를 더하고 있어서, 2년여 전부터 이미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탄원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제는 정당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 정당은 포츠담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치인, 기업인들과 만나 비공개 회의를 열었는데, 오스트리아의 극우 셀너는 “망명신청자, 외국인 등 거주권을 갖고 있는 자라도 독일인화되지 않은 자“는 모두 아프리카로 강제이송하겠다고 하면서 "Remigration(이민 전으로 회귀?)“라는 단어를 썼다고 합니다. 게르만 족의 피를 갖지 않은 자는 추방해서 인종청소를 하겠다는 전쟁선포와도 같은 것입니다. 78년 만에 히틀러가 부활한 셈입니다.(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2014.1.14. 보도)
이미 지난 주에 베를린과 포츠담, 함부르크 등지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최한 집회에 몇 만 명이 동참해서 '국가사회주의 (나치)‘로의 회귀에 저항했으며, AfD를 금지할 수 있는 헌법 18조의 효력 발동을 촉구했습니다. 4번의 시도는 있었으나 아직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독일헌법 18조는 ‘아무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는 국가가 나서서 막고, 침해자 자신의 기본권을 박탈할 수 있다’고 공표하고 있는데, 이 18조가 효력을 발휘해서 한 정당이나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그 정당의 위헌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증명해내야 하므로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민들의 저항이 얼마나 강하고 지속적일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오는 19일 오후에는 함부르크 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및 종교단체, 노조연맹등이 동참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코로나 전 작은 규모의 반전체주의, 반극우를 기치로 하는 집회들이 있기는 했으나, 이제는 독일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큰 규모로 드디어 행동에 나서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AI로 만든 숄츠 총리의 대국민 담화가 있습니다. 너무나 감쪽같아서 속을 뻔했지만, 반나치, 반극우 행동에 나서는 총리를 보고 싶은 민주시민들의 열망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잠시 의심을 억누르고 환호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무릇 생명을 거스르고 평화를 거스르는 모든 것에는 시민이 나서서 싸우고 지킬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나치에 동조하고 방조했던 독일 시민들이 이제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와 참혹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투쟁하길 빌며 저도 연대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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