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빅 리스크’=제3후보,트럼프 재판, 나이
대선 판세 가를 6개 경합주의 미세한 표차
한반도 운명 바꾼 2000년 플로리다 537표 차
트럼프 또 찍을 이유 찾아낼 공화당원 당파성
지난 5일의 ‘슈퍼 화요일’ 이후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라는 전현직 대통령의 재대결로 사실상 확정됐다. 두 후보는 이미 잘 알려진 사람들이지만, 미국 유권자의 12%는 아직 누구를 찍을지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
대선판세 가를 경합주의 미세한 표차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7일, 바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swing voters) 12%가 팽팽한 접전이 벌어질 본선의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썼다.
이 잡지에 따르면, 2000년 이전 6번의 미국 대선에서 경쟁 후보 간의 평균 득표율차는 9%포인트였다. 2000년 이후 6번의 선거에서는 그 차이가 3%포인트로 좁혀졌다. 그 뒤 그 차이는 훨씬 더 좁혀졌다.
지난 2020년 대선 때 1억 6000만 명의 유권자들이 투표를 했으나 바이든 당선을 결정지은 경합주들 중 하나인 위스콘신 주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2만 표, 총 투표수의 0.013%를 더 얻었다. 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치를 넘는 전환점) 주에서의 미세한 표차(전체 투표수에 비하면)가 선거판세를 뒤엎고 세계 정세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민주나 공화 어느 한 쪽으로 거의 정해져 있는 대다수 주들과 달리 판세가 유동적인 6개 경합주(swing states.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미시간, 애리조나, 위스콘신, 네바다)에서 특히 그렇다. 6개 주 선거인단을 어느 후보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에 따라 판세가 뒤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대선은 이들 6개 주에서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선 경쟁이 박빙 접전일수록 선거 쟁점이 될 수 있는 경제, 국경(이민) 봉쇄, 낙태 문제, 또는 투표율과 설득 작업, 정치자금 기부자, 자원봉사자 등에서의 정책, 전략 또는 실행력의 미세한 차이가 경합주들에서 박빙의 양당 득표차를 만들고, 그에 따라 주 전체의 선거인단을 다수 득표자가 모두 가져간다.
3개의 ‘빅 리스크’=제3후보, 트럼프 재판, 후보자 나이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주목해야 할 주요 변수로, 이들 요소 외에 제3 후보자들, 트럼프 재판, 역대 후보들 중 최고령자 1, 2위가 맞붙는 상황이 빚어낸 나이 및 건강문제를 들면서, 이로 인한 불확실성을 선거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3가지 큰 위험(big risks)으로 봤다.
첫 번째, 제3 후보자들
그 첫 번째로 제3 후보들의 역할. 민주 공화의 독점적 양당 경쟁체제(duopoly)에서 제3 후보들은 종종 대선 결과를 뒤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번 대선에서 주목받는 제3 후보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되는 데 결과적으로 기여한 환경보호주의자 질 스타인(74. 녹색당), 바이든(민주당)과 트럼프(공화당)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보는 좌파 코넬 웨스트(71) 교수, 그리고 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다.
2000년 대선 때 랄프 네이더의 경우
2000년 대선 때 제3 후보 랄프 네이더는 조지 W. 부시(아들)가 플로리다 주에서 이겨 대통령이 되는 데 기여했다. 소비자 보호운동을 이끌었던 변호사 네이더는 그해 대선 때 전국 유효투표의 2.7%를 얻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의 패배, 부시 당선의 일등공신이니 선거 훼방꾼이니 하는 비난을 받았다. 부시와 고어의 득표차가 불과 537표(0.009%포인트)여서 재검표 논란까지 벌어졌던 플로리다 주에서 네이더는 수만 표를 얻었다. 그가 얻은 표는 주로 진보적 고어 지지 성향의 표들을 잠식한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네이더에 대한 그런 비난과 비판은 철저히 민주 공화 양당 독점체제의 이해에 치우친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어쨌든 당시 플로리다 재검표는 논란 끝에 무산돼 부시의 승리로 확정됐고 그것으로 부시는 대통령이 됐다. 그때 플로리다 주 지사가 부시의 동생 젭 부시여서, 선거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재검표 무산에 젭 부시가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플로리다 주의 그 537표 차로 민주당에서 공화당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미국은 내정뿐만 아니라 대외정책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 특히 대북 정책도 급선회했다.
한반도 운명 바꾼 2000년 대선 플로리다의 537표 차
클린턴 정권 말기인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 얼마전인 10월 10일에는 조명록 북한군 차수요 총정치국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클린턴의 평양방문과 북미 수교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였다.
그 몇 달 전인 6월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분단 뒤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났고, 북미 국교 정상화, 그리고 남북관계의 역사적 대전환이 눈앞에 다가온 듯 보였던,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들이 진행됐다.
그러나 그런 극적인 변화는,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겠으나, 플로리다 주에서의 537표(0.009%포인트) 차로 완전히 뒤집혔다. 앨 고어의 당선으로 민주당이 연속 집권을 했다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나아가 동아시아 정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야말로 세상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냐고 코넬 웨스트 교수도 얘기했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정책은 그 양당 간 정권교체에 따라 완전히 뒤집힐 수 있고, 그것은 한국과 한반도 정세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 미국 대선 경합주들에서의 작은 표차가 미국과 세계 정세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변수
이런 제3 후보들에 휘둘리기 싫었던지 민주 공화 양당은 제3당 군소 후보들의 대선 참여 조건을 더 까다롭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질 스타인과 코넬 웨스트가 이번 대선전에는 뛰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럼에도 이들이 바이든의 득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있다고 보지만,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케네디라는 성, 그 가문 출신자들이 미국사회에서 지닌 위상이나 영향력이 남다르다는 얘기로 들린다. 실제로 케네디는 제3 후보들을 포함시킨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의 12% 지지를 획득했다. 이런 추세가 11월 대선에서의 득표로 이어진다면, 케네디는 1992년 대선 때 갑부 로스 페로 이후 가장 많은 표를 얻는 제3 후보가 될 수 있다.
1992년 대선 때의 로스 페로 효과
당시 미국의 갑부 순위 101번째로 보도되기도 했던 로스 페로는 그때 무소속으로 출마해 18.9%를 득표해, 당시 조지 H.W. 부시(아버지) 후보의 지지표를 다수 잠식함으로써, 걸프전쟁을 주도하고 동서 냉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었다는 칭송을 받았던 부시의 재선 실패, 클린턴의 당선에 기여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러나 케네디가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의 지지표를 더 많이 빼내 갈지 정확하게 계산해내기는 어렵다. 케네디라는 성 때문에 민주당(바이든) 쪽 표를 더 많이 끌어갈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를 더 좋아하는 쪽은 공화당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가 환경보호주의자이면서 (코로나) 백신 회의(불신)론자라는 좌우 혼합형 캐릭터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선전은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두 번째, 트럼프 재판
두 번째 불확실성은 트럼프 재판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4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1년 1월의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이, 국가전복 반란을 시도한 자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 수정헌법 규정에 저촉된다며 트럼프의 대선 출마자격을 박탈한 콜로라도 주 대법원의 지난해 12월 판결을 기각했다. 보수파 법관들이 다수인 연방대법원의 이런 상소심 결정은 트럼프의 대선 가도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했다. 이로써 그가 선거 전에 투옥될 수도 있고, 재선되면 감방에서 통치권을 행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저간의 얘기들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는 게 한층 더 분명해졌다.
그에게 걸려 있는 총 91개 항목 혐의의 4개 형사재판은 대부분 11월 5일의 대선 전에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유무죄 결판이 날 가능성이 높은 재판은 다른 것들에 비해 ‘사소한 것’이다. 그것은 2016년 트럼프가 자신이 관계한 포르노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의 입을 막으려고 지불한 돈을 합법적 비용으로 위장한 혐의에 대한 재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재판이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아니다. 분명히 트럼프에게 불리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자체 조사기관인 유고브(Yougov)의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유권자들의 3분의 1은 ‘범죄자’는 대선 후보자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자기 편보다 상대 편이 더 나쁘다는 확신을 중요한 특성으로 하는, 고질적이고 퇴행적인 당파성 때문에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투표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또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또 찍을 이유 찾아낼 공화당원 당파성
하지만 2021년 1월 6일의 국회의사당 난입 폭동 때 이를 배후에서 부추긴 트럼프의 역할이 재판 과정에서 계속 거론되면, 아직 어느 쪽을 찍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임기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공판 때마다 주기적으로 상기하게 되면서 트럼프를 또 찍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 유권자들 대부분은 트럼프에게 씌워진 혐의를 어쩔 수 없었다거나 별 것 아니다, 또는 쟤네들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둥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이나 찝찝한 기분을 애써 지우고 그에게 다시 표를 찍어야 할 핑계를 찾아낼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은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분명 장애물로 남을 것이다.
세 번째, 후보자들 나이
세 번째 불확실성 영역은 후보자들의 나이다. 바이든(81)과 트럼프(77)는 역대 대선 후보들 중 최고령 순위에서 각각 1, 2위다.
트럼프의 경우 자신의 선거 캠페인 관리자를 공화당 최고 운영책임자로 앉히고 자신의 며느리를 그 공동의장에 임명했다. 이는 일사분란한 힘을 발휘하는 데 유리할 수 있지만 부서지기 쉬운 힘이다. 그가 당을 그런 식으로 지배하면 고령인 그가 판단을 잘못할 경우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하지만 나이에 더 취약한 건 바이든 쪽이다. 나이를 문제삼은 논쟁이 민주당 내에서도 진행 중이고, 이 때문인지 지금의 비교적 양호한 미국경제 성적표를 감안할 때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지지율은 늘 예상보다 낮게 나온다. 백악관은 여론조사에 문제가 있고, 대선전이 무르익어 유권자들 관심이 더 쏠리게 되면 그런 추세는 바뀔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미국인 85%와 민주당원 70%는 바이든이 재선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8월의 민주당 전국대회에서 바이든이 공식 후보로 지명되기 전에 경합주들 여론조사에서 그가 여전히 뒤처진 것으로 나온다면, 자신이야말로 트럼프의 재집권을 막는 최선의 방어책이 될 것이라는 바이든의 주장이 계속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그럼에도 바이든이 자발적으로 물러날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그 시점에서의 후보 교체는 위험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트럼프의 맞상대로서는 바이든보다 더 취약할 것이라는 평이 많다.
따라서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일종의 재능경연대회로 바꿔 새 후보를 지명하거나, 당 간부들이 젊은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 지사나 라파엘 워노크 조지아 주 상원의원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웅변가로 후보를 교체하도록 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렇게 해도 위험과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부담을 피할 수 없지만, 트럼프가 재판을 받으며 마이너스 효과에 시달리는 몇 개월간 민주당은 후보 교체에 쏠리는 미디어의 관심 속에 그 부담을 덜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외부자가 이렇게 훈수를 둘 만큼, 바이든의 나이로 인한 민주당 쪽 약점은 트럼프의 공화당보다 커 보인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해지면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상사로 소비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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