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 NIC보고서에 포함된 시나리오 넷
우크라이나전쟁에 끼여들면서 그대로 실현
무르기도, 나아가지도 못하며 깊은 수렁으로
미국의 신하 유럽, 유럽의 용병 우크라 운명은?
지난달 2월 22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이나) 전쟁은 개전 만 2년을 맞았다.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고 해결책 역시 미궁에 빠져있다. 지난 2월의 해리스/퀸시 연구소 여론조사 결과, 70%에 가까운 미국민들은 신속한 협상을 통한 전쟁 중단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의 같은 조사보다 무려 1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쟁을 빠르게 끝내는 방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고 휴전이든, 정전이든, 평화든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3주 만에 종료된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원을 중단하면 24시간 안으로 전쟁은 중단된다. 전직 이스라엘 고위 장성의 발언이다. 그런데도 바이든의 미국은 해결책을 모색하기는커녕, 우크라이나에 600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추가 군사원조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스라엘에도 어떻게든 추가로 지원할 방안을 모색 중이고, 예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는 미군을 공격한 ‘반군 기지’에 미사일 공습을 가하면서 중동전쟁의 당사자로 직접 뛰어들었다.
바이든-미국이 평화 외면하는 이유/ 푸틴-러시아 제국론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도 포함된) 추가원조 법안과 관련한 상원 토론에서 M. 롬니 의원(유타주 연방상원의원.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은 우크라이나 지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 미국이 우크라를 지원하지 않으면 푸틴이 다른 나토 국가를 침략할 것, 평화보장 기구인 나토는 해체될 것, 민주주의 수호의 병기창, 자유세계의 지도자인 미국은 추락하고 중국, 러시아, 이란 그리고 북한이 지배하는 세계가 올 것.
2.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하는 것은 푸틴의 입장이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푸틴이 원하는 대로 뒷짐을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중국의 대만 침략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3. 유럽이 안보 비용을 공평하게 내지 않고 있다, 즉 미국의 부담이 불공평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또 미국의 국가부채가 너무 많다고 하지만 미국은 지금 잘 버티고 있다. 유럽보다 아시아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만, 일본, 한국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려면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더 지원하라고 말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킬 무기도 부족하다고 하지만 국방부에 따르면,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군수산업 기반을 다시 세우는 유용한 정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4. 무엇보다 자유국가의 인민을 돕는 것은 올바른 일이며,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국가로서 나토를 보호하고 동맹에 충실한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다.
바이든-미국의 주장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잘 요약했다. 그중에 상투적 수사, 실체 없는 명분, 사실의 왜곡 등을 빼고 줄이면 핵심은 ‘러시아 제국론’이다. 침략과 정복의 야욕을 가진 권위주의 제국 러시아를 응징해야 한다는 것. 미국과 유럽 정치지도자들, 주류 매체들이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루소포비아(러시아 공포증)’ 내러티브의 기본얼개다.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 불렀던 냉전 시대 주장의 재탕이다.
여기서 이와 관련한 핵심적 사실 하나만 상기하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 4월,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에 평화협상으로 종결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포기’를 기본 틀로 하는 협상은 큰 틀에서 완결되었다. 이후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양국은 4월 중 협정을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이 직접 개입, 우크라이나에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 당시 영국 총리 B. 존슨이 예정에 없이 키이우를 직접 방문했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은 이번의 평화협상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했다. 협상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전쟁을 원한 쪽은 미국이다/ 세 개의 수렁
문제는 전황이 뒤집히면서 기획의도와 달리 정작 미국 자신이 전쟁의 수렁에 빠졌다는 것이다. 합리적 판단의 실종, 허위·왜곡 정보의 유포, 목표와 전략의 부재라는 세 가지 수렁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러시아 제국론의 고갱이는, 러시아는 악이며 그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선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국제정치를 선한 자유주의 국가와 사악한 권위주의 국가 사이의 대립으로 바라보는 네오콘 세계관의 산물이다. 그들에게 악은 척결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현실적 해결책인 외교가 경시되고 군사적 응징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합리적 판단이 실종되는 첫 번째 수렁이다. 2월 14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러시아의 정전협상 제안을 거부했다. 러시아를 몰아낼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결국 영구전쟁(?)을 선택한 셈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교조적 사고방식은 적대적 태도를 낳고 그러는 사이 합리적 판단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분법적 사고는 사실을 왜곡한다. 선이 패배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허위의 사실을 만들어내거나, 비틀거나, 진실을 감춘다.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무시하거나,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허위·왜곡 정보의 수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방어요충지인 아브디브카에서 패퇴하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중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서방 주류언론은 전쟁 중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3만 1000명이라는 허무개그(?) 수준의 젤렌스키 발언을 진지하게 기사화한다. 한편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정당한 이유 없는 공격’이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 침공 십수 년 전부터 CIA는 우크라이나군과 함께 러시아 국경과 심지어 후방지역에서까지 비밀 군사작전을 벌여왔다. 그 사실이 2월 25일 뉴욕타임스 보도로 드러났다. 그뿐 아니다. 2022년 9월에 터진 북해 가스관 테러 사건과 관련, 스웨덴과 덴마크는 조사를 질질 끌다가 아무것도 밝혀내지 않은(?) 채—비공식적으로는 미국이 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지난달 슬며시 막을 내렸다.
합리적 판단이 작동하지 않고 가짜 정보로 대중과 자기 자신을 기망하는 수렁 속에서 제대로 된 전략이 만들어질 리 없다. 당연히 전쟁의 목표도, 전쟁 종료 방안이나 경로도 설정하기 어렵다. 목표와 전략 부재의 세 번째 수렁이다. 상원의 원조법안 토론회에서 J. 밴스 공화당(오하이오주) 의원은,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서, “의회가 아무리 우크라이나 원조액을 늘린다 한들 지금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교착상태를 지연시킬 뿐이다. 문제는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이 취해야 할 책임 있는 태도는 협상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반대토론은 토론으로 끝났고 상원은 원조법안을 통과시켰다.
정확히 맞아 떨어진 ‘2025년 미국 헤게모니 쇠락’ 예언
지난 2008년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2025년, 달라진 세계(Global Trends 2025: A Transformed World)’라는 일종의 미래전략 보고서를 발표한다. 위원회는 “지금 세계 경제의 축은 서에서 동으로 이동 중이며,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중이다. 세계는 미국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할 것이다”라고 보고서에 썼다. 역사학자 W. 맥코이(위스콘신대 역사학) 교수는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미국의 미래: 네 가지 시나리오’라는 글을 2010년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했다. 요약하면 2025년을 전후하여, 미국경제의 쇠퇴, 석유 위기의 재현, 군사적 모험주의의 발동, 3차 대전 수준의 긴장 고조 같은 네 가지의 중대한 국제적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각변동의 결과는 미국 헤게모니의 쇠락이다.
지금의 미국과 세계를 돌아볼 때, 십여 년 전 국가정보위원회와 맥코이 교수의 2025년 미래 예측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교수가 지적한 군사적 모험주의의 적확한 사례다. 그리고 전쟁 2년을 넘기면서 드러나는 것은 러시아의 정치·경제·군사적 역량에 대해 미국이 크게 오판했다는 점이다. 바이든-미국의 주장이나 희망, 또는 선전과 달리 전문가들의 판단을 종합하면, 러시아는 우세한 병력과 무기, 지휘역량과 무기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동북쪽에서 남쪽에 이르는 전선의 주요 거점에서 압도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정치적 이견과 전쟁 반대여론, 무기 재고 부족 등으로 한계에 부딪힌 미국과 유럽의 지원, 그리고 수세에 몰리면서 한층 더 취약해진 우크라이나군으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이해영 교수(한신대 글로벌인재학과)가 지적하듯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제압 혹은 전략적 약화를 도출해 패권의 계속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 기획은 지금 실패하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더 깊은 전쟁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물러서는 것도 여의치 않고, 나아가는 것은 자신을 더 깊은 딜레마로 빠뜨리는 길이지만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미국을 쇠락으로 이끌지는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사족처럼 보이는 마지막 한 가지 질문: 그렇다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어떻게 될까? 3월 5일 칼럼에서 영국의 가디언은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용병’과 다름없는 처지라고 썼다. 작년 4월 유럽연합 정상회의(European Council) 산하 외교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사실상 안보의 주체성을 상실한 ‘미국의 신하(vassal)’가 되었다는 보고서를 냈다. 용병과 신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별도의 답이 필요 없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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