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경쟁·저출산·지역 불균형 원인 제공

상위권 대학 졸업자 대기업·정규직 독식

중소기업 취업자는 임금·복지 모두 불리

‘헬조선’ 단일 정책만으론 해결 어려워

“극심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급증, 결혼 기피와 저출생,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 불균형….”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든 한국 사회의 병폐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2배 이상 벌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7일 발간한 ‘KDI 포커스 :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연구 보고서에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의 실태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분석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극심한 입시경쟁과 저출산, 지역 불균형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사진은 2022년 3월 민주노총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상여금 등의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2022. 3. 22. 연합뉴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극심한 입시경쟁과 저출산, 지역 불균형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사진은 2022년 3월 민주노총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상여금 등의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2022. 3. 22. 연합뉴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5~9인 사업체의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54%에 불과했다. 100∼299인 사업체의 임금은 71% 수준이었다. 이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리기업 중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월 591만 원(세전 기준)이었던 데 비해 중소기업 근로자는 월 286만 원에 불과했다. 대-중소기업 월 평균 소득 격차는 305만 원으로 2.07배에 달했다. 전년의 2.12배보다 격차가 소폭 줄었으나 대기업 근로자가 중소기업 근로자보다 2배 이상 소득이 많은 것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런 양극화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위권 대학을 나온 학생이 대기업에 입사해 고소득자가 되고 여기에 속하지 못한 대다수 젊은이는 낮은 소득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 대기업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중소기업은 지방에 분포해 지역 불균형도 커질 수밖에 없다. 대-중소기업이 제공하는 복지 수준도 하늘과 땅 차이다. 대기업은 출산 휴가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데 비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이 같은 현실은 결혼 기피와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KDI는 설문조사와 회귀분석, 관련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이를 증명했는데 한국에서 상위 20% 대학교 졸업생은 하위 20%보다 최대 50% 많은 임금을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대학 졸업자가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대기업에만 입사하려고 하려는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청년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만큼 취업난이 극심한데도 중소기업은 만성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자리 미스매치'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 만큼이나 힘들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다른 국가에 비해 대기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대기업(250인 이상)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하다. OECD 32개국 중 대기업 비중이 가장 낮다. 중소기업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독일조차도 대기업 비중이 41%다. 스웨덴(44%)과 영국(46%), 프랑스(47%), 미국(58%)은 더 높다. 통계청 조사에서 300인 이상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은 2021년 기준 전체 종사자의 13.8%, 임금 근로자의 18.4%에 그쳤다. 이에 비해 10인 미만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은 전체 종사자의 45.6%, 임금 근로자의 30.7%에 달했다.

KDI는 수능성적(1998~2000년)을 활용해 4년제 대학의 서열을 정한 후 이들을 5개 분위로 구분하고 각 분위 대학 졸업자들의 임금 격차를 연령대별로 추정해 봤다. 그 결과 1분위(하위 20%) 대비 5분위(상위 20%)의 임금 격차(임금 프리미엄)는 20대 후반(25~29세)에 25%, 30대 초반(30~34세)에 34%, 30대 후반(35~39세)에 46%로 점점 늘었다. 40대 초반(40~44세)에 격차가 51%로 가장 컸고 이후 은퇴 시기와 맞물리면서 45~49세에 33%, 50~54세에 10%, 55~59세에 1%로 좁혀졌다.

 

 자료 : KDI. 사업체 규모별 일자리 비중과 임금 격차 추이.
 자료 : KDI. 사업체 규모별 일자리 비중과 임금 격차 추이.
 자료 : KDI. 대학 서열과 임금 격차 추이
 자료 : KDI. 대학 서열과 임금 격차 추이

이처럼 대기업 일자리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임금 격차가 크다 보니 대학 입시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KDI의 분석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 임금이 높은 이유는 대기업 취업과 정규직 취업, 장기근속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 등 국가가 보장한 제도 활용 측면에서도 중소기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위에 있다.

대-중소기업의 임금 격차와 함께 남성과 여성 소득이 벌어지는 것도 ‘헬조선’이 된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남성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414만 원으로 1년 전보다 6.5% 늘었다. 이에 비해 여성 근로자는 271만 원으로 5.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여성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남성 근로자의 65.5%로 1년 전(65.8%)보다 줄었다. 남성 근로자 대비 여자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2018년 64.8%, 2019년 65.5%, 2020년 66.6%로 증가하다가 2021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성 근로자의 소득이 남성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경력 단절과 관련성이 크다. 여성가족부의 지난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력 단절 이후 재취업했을 때 일자리의 질이 대체로 하락했다. 재취업 일자리 중 상용근로자 비중은 36.7% 포인트 하락한 반면 임시근로자와 고용원 없이 일하는 자영업자 비중은 각각 9.4%포인트와 16.4% 포인트 증가했다. 재취업시 그 만큼 일자리 질이 나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입시경쟁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하며,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높이고 비수도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개별 정책분야 각각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들 문제 전반에 공통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규모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정책당국과 일반 국민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료 :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자일자리 소득(보수) 현황
 자료 :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자일자리 소득(보수)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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