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 교도소에서 산책 뒤 쓰러져
가족과 서방세계 암살 의혹 제기
2020년 신경독 암살 위기서 기사회생
바이든 대통령, 재집권 재료로 활용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에 반대해 온 러시아 반정부세력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7)의 갑작스런 사망이 다음달 대통령선거를 앞둔 러시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극권 교도소에서 산책 뒤 쓰러져
나발니는 16일 오후 2시 17분께 수감 중이던 북극권의 야말로 네네츠 자치구 교도소에서 소내 산책 뒤 갑작스레 쓰러져 사망했다고 그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시가 17일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야르미시는 이날 엑스(X. 예전의 트위터)에 “알렉세이 나발니는 살해당했다”며 “우리는 알렉세아 나발니의 주검을 가족에게 즉시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야르미시는 나발리 사망과 관련한 결과를 다음 주에나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들(정부)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주검 인도를 피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 조사위원회는 사인 조사가 완결될 때까지 주검을 가족에게 넘겨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가디언> 16일)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산책 뒤 상태가 나빠졌고 의식을 잃었다. 필요한 응급조치를 했으나 구급대원이 사망을 확인했다. 사인은 조사중”이라고 밝혔으며, 국영 텔레비전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혈전이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가족과 서방세계 암살 의혹 제기
16일 뮌헨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안전보장회의에 등단한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우리는 푸틴과 그의 스탭, 그의 친구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서 “그들은 우리나라와 내 가족, 내 남편에게 한 짓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날이 곧 닥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 등 서방 외교장관들, 그리고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도 일제히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직접적인 사인이 무엇이든 푸틴 정권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당해 온 나발니의 죽음에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뒤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크 등 러시아 주요 도시들과 런던, 파리, 베를린, 로마,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리스본, 제네바, 헤이그 등 유럽 주요 도시들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다.
바이든 대통령, 재집권 재료로 활용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긴급 연설을 통해 “놀라진 않았으나 격분했다”면서 “의심의 여지 없이 나발니 죽음의 책임은 푸틴에게 있다”고 단언하며, 이를 자신의 재집권을 위한 재료로 활용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오는 11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 유세 집회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회원국들이 방위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 러시아 마음대로 하라고 하겠다고 한 발언을 다시 거론하며 “내가 대통령직에 있는 한 나토 동맹국들과의 신성한 약속을 충실하게 지킬 것”이라며, 나토의 결속 강화를 강조한 뒤, 하원에 대해 지체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승인을 서둘러 줄 것을 요구했다.
2020년 신경독 노비초크 중독 암살 위기
나발니는 2012년 3월 러시아 대통령선거 때 “푸틴 없는 러시아”를 구호로 내세운 반푸틴 운동의 선두에 서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반정부세력과 시민운동에 대한 푸틴의 철저한 탄압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2018년 대선 때 나발니는 후보로 나섰으나 그 전의 경제사건과 관련한 판결 때문에 자격을 상실했다. 그 조치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는 “자의적이며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하며 나발니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러시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나발니는 푸틴의 호화저택 의혹 등 그와 고위관리들의 부패 오직을 적발하고 비판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비정부기구(NGO) 시민운동 박해에 대항하는 시민운동 네트워크를 결성해 힘을 키웠다.
2020년 8월 시베리아 여행 중에 나발니는 신경독 노비초크를 통한 암살미수 사건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이 때문에 러시아 안팎에 큰 파문이 일자 러시아 정부는 그가 서독에 가서 치료하는 것을 허용했다.
노비초크는 1970~80년대에 당시 소련에서 개발된 신경독으로, 신경에서 근육으로 가는 신호전달을 방해해 전신이 기능부전에 빠진 뒤 죽음에 이르게 한다. 초미세 입자 형태로 은밀하게 확산시킬 수 있으며, 독성이 강한 것은 30초에서 2분 안에 중독효과가 나타난다.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목숨을 앗아간 VX도 유사한 신경독이었다.
푸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나발니가 이번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암살당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당선 가능성 있는 야당 후보에게 투표를!”
나발니가 다시 귀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독일에서 신경독 중독을 치료한 뒤 2021년 1월 귀국을 강행하자, 러시아 당국은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그를 바로 체포해 지금까지 구금해 왔다. 예전의 그 경제사건에서 보석조건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발니는 자신이 선거에 후보로 나서지 못했으나 선거 때마다 “지지하지 않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야당 후보에게 투표를!”을 슬로건으로 러시아 전역에서 광범한 대중동원력을 발휘했다.
그는 2022년 3월 수감 중에 사기와 법정모독 등의 죄목으로 징역 9년 선고를 받았고, 2023년 8월에는 ‘급진파 조직 창립’ 등의 죄목으로 19년 형을 추가로 받았다. 진행 중이던 재판에서까지 유죄를 받을 경우 30년이 넘는 징역형을 받게 돼 있었다.
나발니는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인근 교도소에서 야말로 네네츠 자치구의 교도소로 이감됐다. 야말로 네네츠는 노바야젬랴 섬을 마주보는 북극권 지역으로, 푸틴 정부가 야심차게 개발한 야말 반도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있는 곳이다. 바닷물이 얼어 한국 조선사들이 건조한 쇄빙 LNG 선박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다는 추운 지역이다.
나발니는 그곳 교도소에서 장기간 독방생활을 했고, 사망 하루 전에 출두한 법정에서도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변호사와 가족을은 얘기했다.
대선에 어떤 영향 끼칠까
5번째의 집권을 위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푸틴이 이번 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발니 외에도 얼마 전 반란을 일으킨 예브게니 프리고진 암살 의혹, 2015년 야당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의 총격 사망 등의 예에서도 보듯 무참한 정적 제거 의혹들로 비판받아 온 그에 대한 러시아 안팎의 곱지만은 않은 여론이 이번 사건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그의 30년 집권 야망이 이번 사건으로 흔들릴 것 같진 않으나,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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