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프로젝트-암태도'…창고 개조해 전시
1년 6개월에 걸쳐 진행한 현장 작업의 결실
선각자 서태석의 비극적 삶에 작가 동병상련
거친 붓질과 원색으로 역사적 사건 형상화
서울시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고 있는 T5기획전 ‘서용선 프로젝트-암태도’(2023. 11. 23.~2024. 5.5.)에 주목한다. 전시는 전남 신안군 암태면(암태도) 단고리에 소재한 서용선미술관(옛 암태농협창고) 상설전 ‘암태소작쟁의-100년을 기억하다’ 자매전이다. 작가가 2022~2023년 1년 6개월에 걸쳐 암태도에서 진행한 현장작업의 결과물인데, 서용선미술관(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 기념전시관에서 개명됨)에는 내벽에 조성된 대형 벽화를, 문화비축기지에는 움직일 수 있는 유화와 드로잉, 아카이브, 영상물을 선보인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시는 서용선, 암태도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우뚝하다. 전시장소 두 곳 다 창고(벼창고, 기름창고)를 개조한 곳인 바, 작가의 작업이 현장예술인 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필자는 암태도의 상설전을 보지 못하고 문화비축기지 전시를 보았을 뿐이라 미안한 일이나 서용선, 암태도를 말하는 데 크게 지장 없다고 생각한다.
암태소작쟁의는 1923년 암태도 소작인들이 지주들의 횡포에 맞서 1년여 투쟁 끝에 7할 소작료를 4할로 낮추는데 성공한 농민운동을 말한다. 1단계는 1923년 말 암태소작인회 창립과 소작료 불납운동. 금년 소작료는 논 4할, 밭 3할로 할 것. 불응하는 지주한테는 소작료를 내지 말 것. 익년 2월25일까지 해결이 안 되면 소작농사를 하지 않겠음 등 6개 사항을 결의한 소작인들은 이를 지주 측에 알렸다. 이를 수용한 지주들이 있었으나 대지주 문재철이 반대하며 소작료 거부로 발전한다.
2단계는 문재철의 부친 문태현 송덕비 파괴와 갈등. 이듬해 3월 송덕비 관련 오해가 생겨 지주 쪽에서 소작인회 간부를 폭행하며 실제 송덕비 파괴로 이어지고 소작인회 간부 13명이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다. 소작인회의 간부 석방운동은 면민대회를 열면서 면 단위 문제로 확대된다.
3단계는 암태도 주민들의 목포원정 투쟁과 화해. 주민 600여 명은 배를 타고 간부들이 구금된 목포로 몰려가 목포지청 검사국 앞마당에서 ‘아사동맹’을 한다. 요즘말로 하면 단식농성에 해당한다. 사건 확대를 염려한 일제 경찰은 문재철에게 화해를 종용해 8월 30일 소작료율 인하에 합의한다. 고진감래,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쟁의사태는 지주의 약속불이행, 소작인 간의 분열공작, 소작인회의 농민조합으로의 발전 등 1926년까지 이어진다.
서용선은 소작쟁의를 시간 순을 따라 콜라주 형식으로 형상화하는데 송덕비 파괴, 암태도~목포 도해, 아사투쟁은 대형 벽화로 제작했다. 전자 둘은 암태도 서용선미술관 내벽에, 후자는 문화비축기지에 전시되고 있다. 범선을 이용한 주민들의 목포도해와 검사국 앞에서의 집단 단식농성 장면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당시 상황을 상상으로 재현한 작품이 관객을 압도할 만큼 크려니와 원색의 거친 붓질에서 작가가 소작쟁의를 보는 시각과 느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작품은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서 그린 서태석 인물화다. 논바닥에 엎으러져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인데 붓질 흔적이 무수하다. 왜 작가는 이 사람에 주목했을까.
암태도 소작쟁의 관련자 숫자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면단위 쟁의이며 드물게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사동맹에 참여한 인원이 600명이며, 소작인회 회원이 529명이었다는 당시 신문기사로 미루어 600명 정도라고 해 두자. 실명이 확인된 숫자는 44명이다(최성환 ‘암태도 소작쟁의의 참여인물과 쟁의의 특징’). 이 가운데 문제적 인물은 서태석, 박복영이다.
서태석은 실질적으로 소작인회 결성과 쟁의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암태도 면장을 지냈고 쟁의 당시 40세로 쟁의 참여 남성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다.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목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돼 옥살이를 한 경력이 있어 면민들 사이에 신뢰도가 높았다고 본다. 지주 쪽의 소작인 폭행 때 표적이 되었고, 가장 먼저 체포된 인물도 그다. 구속된 소작인회 지도자 13인 가운데 가장 긴 형량을 받았고, 보석으로 잠시 풀려났을 때 열린 총회에서 의장을 맡았다. 쟁의 중 상당기간 옥중에 있었지만 소작쟁의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그는 쟁의사건으로 예심에서 징역 3년형, 복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최종 1년형으로 감형됐다. (정병준 ‘암태도소작쟁의 주역의 세 가지 길’)
박복영은 1919년 목포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수감생활을 한 바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23년 임태도청년회 회장이 되었고, 실질적인 소작인회 지도자인 서태석이 투옥되자 소작인회를 이끌었다. 1924년 8월 지주와의 협상과정에서 소작인회를 대표하여 약정서에 서명했다. 1925년 소작인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동아일보 목포지국장으로서 도초도(1925), 자은도(1926) 소작쟁의를 선동한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해방 이후 우익의 길을 걸어 대한독립촉성중앙협의회 무안군 지부장 등을 지냈다. 그는 대지주 문재철이 상해 임정에 거액을 기부했다는 증명할 길 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참고로 악덕지주로 지목되어 소작쟁의 표적이 된 문재철은 부친한테서 거액(당시 시가 2000여 원 상당)의 토지를 상속받았다. 고리대금업, 소작료 착취로 재산을 불려 1920년대 후반 300여만 평의 토지를 집적했다. 소작쟁의 당시 신문에서는 그를 ‘암태 악지주’, ‘금수보다 못한 색마악한’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간척지 개간사업을 벌여 1940년대에는 500만 평의 땅을 소유해 조선 굴지의 대지주가 되었다. 1941년 문태중학교를 설립해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서용선은 서태석이 쟁의지도자였기도 하려니와 후일담이 가슴 아팠기 때문에 마음이 쏠렸다고 말했다.
서태석은 출옥 후 노동운동,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길을 걸어갔다. 모두 네 차례 수형생활을 했다. 그런 까닭에 일찌감치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박복영, 문재철과 달리 2003년에 이르러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암태도 소작쟁의가 지주 대 소작인 간의 계급투쟁이지만 저변에는 항일의식이 깔려있는 점이 인정된 것이다. 일제가 대규모 천일염 사업을 펼치면서 암태도의 화렴 산업(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전통 제염 방식)이 몰락하고 그에 따라 주민들의 소득이 뚝 떨어진 것이 소작쟁의의 큰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가슴을 후벼판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항일운동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 외에 더 있다. 서태석은 마지막 3년간 옥고를 치르던 중 전기고문으로 정신이상 상태가 되었다. 친인척을 못 알아볼 정도로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 그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이 도망갔다고 전한다. 그는 결국 압해면 장감리 누이동생 집에 머물다 근처 논에서 객사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작가는 같은 지식인으로서 운명에 맞섰다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서태석한테서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았을까. 서태석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그의 망막에 맺힌 상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쟁의를 주도할 때 눈길을 줄 틈을 얻지 못했던 하늘일까, 아니면 일제가 패망하여 해방된 조국의 하늘일까.
작가는 암태도 소작쟁의가 가까이는 3.1 독립만세운동의 영향권이며, 멀리는 동학농민항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이번 전시에 두 가지 소재를 함께 다룬 것은 암태도 소작쟁의가 좀더 포괄적으로 연구돼야 한다는 견해의 표출이다.
서용선은 그동안 세조의 정권 찬탈과 사육신, 분단과 한국전쟁 등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작업을 해 왔다. 암태도 소작쟁의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는 “역사는 옛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며, 역사를 생각하고 그리는 과정은 나를 형성시킨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몸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궤적이 역사라는 큰 그림이고, 그 겉모습에서 사실의 흔적을 찾아내어 형상화하는 화가의 몸짓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에는 붓을 댔다가 놓은 날짜들이 표기돼 있다.) 그의 작업이 거친 붓질과 원색 위주의 페인팅이며, 때로는 드로잉 밑그림처럼 보인다거나 드로잉 자체를 완성작품으로 간주하는 데는 이런 까닭이 있다. 시서화 일체, 전신사조론(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는 초상화론)을 추구하는 동양화의 근본이념과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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