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로 인한 글로벌 손실, GDP의 2.5%~7%

고피나스 "2차 냉전 시 개방 경제 혜택 소멸"

블록 간 무역, 블록 내보다 훨씬 빨리 둔화

비동맹, GDP·무역·인구 면에서 영향력 급상승

'최대 수혜자' 베트남·멕시코는 '커넥터' 역할

필수적 광물·식품·의약품 공급 보장 협정들 제안

"세계화에서 광범위한 후퇴 조짐은 없지만, 지경학적 '분절'(分節·Fragmentation)이 날로 현실이 되면서 단층선들이 드러나고 있다. 분절이 심화하면 우리는 새로운 냉전을 겪게 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기타 고피나스 수석 부총재는 작년 12월 국제경제협회 20차 총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제2차 냉전의 경제적 비용은 막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세계 경제의 분절 현상과 신냉전의 위험을 재차 경고하고 나섰다. '정책결정자는 분절되는 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란 '포린 폴리시'(2월 6일 자) 기고문을 통해서다. 기고문에서 그는 "우리는 전환점에 있다. 많은 나라가 '프렌드 쇼어링'(우방국끼리 공급망 구축) '디리스킹'(위험 완화) '자립'이란 이름 아래 장벽을 세우면서 무역이 분절되고 있다"며 "단기적으론 일부 나라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신냉전으로 끝나고 평화, 안보, 번영의 위축을 포함해 그 비용이 혜택을 압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세션에서 기타 고피나스 IMF 수석 부총재(오른쪽)가 스위스 UBS의 세르지오 에르모티 최고경영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2024 01. 17 [AFP=연합뉴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세션에서 기타 고피나스 IMF 수석 부총재(오른쪽)가 스위스 UBS의 세르지오 에르모티 최고경영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2024 01. 17 [AFP=연합뉴스]

미·중 이념·경제 경쟁, 글로벌 경제 '분절' 초래

비동맹, GDP·무역·인구 면에서 영향력 급상승

글로벌 경제 관계를 이렇게 바꿔 놓은 주요 요인으론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2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긴장 격화를 들었다. 고피나스는 "오늘의 분절화를 추동하는 힘은 냉전 때와 비슷하게 두 초강대국 간의 이념적, 경제적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고피나스에 따르면, 그러나 무대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첫째, 냉전(1940~1980년대) 때에 비해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훨씬 더 높아졌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글로벌 무역이 점하는 비중이 25%에서 60%로 증가했다. 그래서 분절 비용도 당연히 증가한다.

둘째, 미국-소련 두 블록(진영)으로 확실하게 나뉘었던 냉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어느 나라가 어느 블록에 속하는지가 더 불확실해졌다.

셋째, 미국-유럽의 서방 블록, 중국-러시아의 동방 블록 어느 쪽에서 가담하지 않은 비동맹 국가들의 눈에 띄는 부상이다. 이제 이들 나라는 GDP, 무역, 인구 측면에서 볼 때 훨씬 큰 경제적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1950년에 동서 두 블록은 합쳐서 글로벌 GDP의 85%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70% 수준으로 떨어졌고. 게다가 인구는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2022년 글로벌 무역에 대한 비동맹의 기여는 절반이 넘었다.

이에 고피나스는 "날로 증가하는 경제적 통합을 감안할 때 이들 나라는 무역과 투자의 우회 조치로부터 직접적인 혜택을 보면서 (미·중) 경쟁자들 간 '커넥터'(연결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총생산(GDP)와 무역, 인구 측면에서 비동맹 국가들의 영향력이 과거 냉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국내총생산(GDP)와 무역, 인구 측면에서 비동맹 국가들의 영향력이 과거 냉전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지정학적 라인 따라 세계 무역·투자에 단층선

블록 간 무역, 블록 내보다 훨씬 빨리 둔화

생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로벌 무역이 감소하는 것을 '반세계화'라고 규정한다면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2011년 이후 세계 GDP에서 점하는 글로벌 무역의 비중은 55~60%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비교적 안정적이어서다. 하지만 글로벌 무역과 투자 저변에서 "의미 있는" 분절 현상이 나타나면서 단층선들이 확대되고 있다.

고피나스 부총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모든 곳에서 무역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블록 사이 무역은 블록 내의 무역보다 훨씬 더 둔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저탄소 기술 등 일부 제품 개발에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기계류와 같은 전략 분야에서 뚜렷하지만, 비전략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글로벌 외국인직접투자(FDI)도 지정학적 라인들에 따라 나눠지는 분명한 조짐이 있다. 우크라 전쟁 이후 발표한 블록 간 FDI 계획들은 블록 내의 그것들보다 더 줄었다. 반면, 비동맹 국가들에 대한 FDI는 가파르게 상승하며 전체 FDI의 40%를 차지했다.

 

각 나라의 지정학적 고려들로 인해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며 단층선들이 나타나고 있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각 나라의 지정학적 고려들로 인해 무역과 투자에 영향을 미치며 단층선들이 나타나고 있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미·중 '간접 링크' 전환…늘어난 공급망 길이

'최대 수혜자' 베트남·멕시코는 '커넥터' 역할

이런 가운데 무역과 투자에서 미·중 간 직접적 링크들은 끊기는 중이고, 멕시코와 베트남 등과 같은 일종의 '커넥터 국가'들을 통한 간접적 링크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 수입 중 중국의 비중은 2018년 22%에서 2023년 상반기에 13%로 급감했다. 2018년 미·중 무역분쟁 개시 이후 고율 관세 부과 등 무역 규제 조치들 탓이었다. 미국의 대외 FDI도 더는 중국이 아니고 인도, 멕시코, 아랍에미리트(UAE) 등 신흥 시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일례로 미국의 수입 점유율을 가장 많이 높인 멕시코와 베트남은 중국의 수출 점유율도 높였으며, 중국 대외 FDI의 주된 수혜자이기도 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고려해 대규모 가전 업체들이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베트남은 중국에서 생산에 투입하는 요소들을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오고 완제품을 대부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도 크게 늘어 중국을 잠식하고 있지만, 멕시코에 세워지는 신규 기업 5곳 중 1곳은 미국 시장을 겨냥한 중국 기업들이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미·중 무역이 둔화하는 대신에, 무역이 다른 나라들을 통해 우회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이는 공급망의 길이가 늘어나고 효율성이 감소하며, 그래서 잠재적으로 새로운 취약성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중국 간 무역에서 직접 링크는 끊기고 멕시코, 베트남 등을 통한 간접 링크로 대체되면서 공급망의 길이도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미국-중국 간 무역에서 직접 링크는 끊기고 멕시코, 베트남 등을 통한 간접 링크로 대체되면서 공급망의 길이도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분절로 인한 글로벌 손실, GDP의 2.5%~7%

"손실은 불균형하게 개도국에 더 돌아간다"

이미 현실이 된 '분절'의 경제적 비용 문제도 다뤘다. 고피나스에 따르면, 무역 규제는 전문화에 따른 효율성 개선을 축소하고, 더 작은 시장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제한하며, 경쟁의 압력들을 감소시킨다. IMF의 최근 작업 결과, 분절의 경제적 비용은 막대하며, 글로벌 손실은 GDP 약 2.5%.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최대 7%에 이를 수도 있다. 특히 그 손실은 불균형하게 저소득국과 신흥 경제에 더 돌아간다. FDI 경우도 장기적인 글로벌 손실은 GDP 약 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극단적 시나리오에선 분절의 혜택을 보는 이들조차도 훨씬 작은 파이의 큰 조각이 차례질 뿐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패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분절 흐름은 기후 변화에서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다른 글로벌 도전들에 대한 인류의 공동 대처를 방해할 우려가 크다. 고피나스는 "최근 IMF의 분석을 보면, 구리·니켈·코발트·리튬 등 녹색 전환에 필수적인 광물들의 무역에서 분절 현상은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더욱 늘린다"면서 결과적으로 재생 에너지와 전기차 생산 등에 대한 투자를 억제할 것으로 봤다.

 

무역과 투자의 분절 비용은 막대하다. 특히 신흥시장과 개도국 경제의 손실이 훨씬 심각하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무역과 투자의 분절 비용은 막대하다. 특히 신흥시장과 개도국 경제의 손실이 훨씬 심각하다.  2023. 12. 11 [IMF 홈페이지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고피나스, 공동 이해관계 분야서 다자 접근 주문

필수적 광물·식품·의약품 공급 보장 협정들 제안

고피나스는 분절의 피해를 최소화할 3원칙을 각국 정책결정자들에게 제안한다. 그는 "그 초점은 안보와 (공급망) 회복력이란 자국의 목표들을 달성해가면서도, 자유 무역의 혜택을 가능한 한 지키고 글로벌 도전 해결을 보장하는 실용적 접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3원칙 중 첫째는 적어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 분야에선 다자 접근법을 주문했다. 일례로 청정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광물들의 국제적 유통을 보장할 '녹색 회랑 협정'(green corridor agreement)을 거론했다. 또한 필수 식품과 의약품 공급을 위한 유사한 협정도 언급했다. 그는 "그런 협정들은 기후 변화 재앙, 식량 불안정, 팬데믹 관련 인도적 재앙 등의 방지란 글로벌 목표들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무역과 FDI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국가일지라도 복수의 나라들이 참여하는 비차별적인 접근법이 통합을 심화하고 다각화하며 회복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차선책이긴 하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이 세계무역기구(WTO)와 일치하는 복수 국가 간의 지역협정들을 맺어 △ 규모의 경제 △ 더 확대된 시장 접근 △ 다각화된 공급자 등과 같은 몇몇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공급망 회복력 차원에서 생산의 국내 이전을 검토할 때 정책결정자들은 경제안보 차원에서 개입을 정당화하는 극히 일부의 제품과 기술에 국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셋째로 산업정책과 같은 일방적 정책 행위는 반드시 기한을 정해 놓고 외부 요인 개입과 시장 왜곡 대처에만 국한시켜야 한다.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과 같은 정책들은 보복을 불러오면서 분절 흐름을 더 심화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은 1월 26~27일 태국 방콕에서 회동을 갖고 양국 관계와 국제 및 지역 현안에 관해 논의했다. 2024 01. 27. [중국 외교부 제공]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은 1월 26~27일 태국 방콕에서 회동을 갖고 양국 관계와 국제 및 지역 현안에 관해 논의했다. 2024 01. 27. [중국 외교부 제공]

고피나스 "2차 냉전 시 개방 경제 혜택 소멸"

블록 간 대립에 비동맹의 통합 역할 확대 촉구

고피나스는 "제2차 냉전에 빠져들더라도, 그 비용을 알기에 우리는 경제적 상호확증파괴를 보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방 경제에서 비롯되는 혜택의 소멸은 볼 수 있다"며 "지금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이 하듯 지속적으로 소통라인들을 열어 놓는 것이 최악의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소 간 핵대결 시대에 나온 '상호 확증 파괴'(MAD)는 어느 일방의 공격이 궁극적으로 공멸을 초래할 것을 서로 알기에 핵억제가 유지된다는 개념이다. 고피나스는 또한 "비동맹 국가들은 주요 20개국(G20) 회의 개입을 통하는 등 세계의 통합을 유지하는데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비동맹 국가들의 역할 확대도 주문했다.

고피나스 부총재는 "모든 사람이 경제 통합의 혜택을 받은 것은 물론 아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약 15억 명의 절대빈곤 탈출을 포함해 수십억 명이 더 부유하고 건강하고 교육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한 뒤 더 밝고 번영하는 미래를 위해 "다자간 규칙 기반 무역 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구들에 대한 강력한 옹호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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