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당대표 정치테러 언론보도 어떻게 달랐나

박근혜 땐 '정치테러' 규정…범인 이름·당적 밝혀

상처 상세 보도…공범·배후·부실수사 의혹 제기

'병상정치' '상처 이긴 지도자' '불쌍한 공주'로

이재명 땐 '테러'아닌 '피습'…부실수사에 침묵

'혐오 피해자' '특권' '지역갈등 유발자'로 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 흉기테러에 대한 경찰의 ‘맹탕’ 수사결과 발표 이후 이 대형사건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낳고 있다. 수사 당국이 테러범의 이름, 당적 등 신상을 밝히지 않은데다 범행동기, 공범, 배후 등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왜, 누구의 지시로 야당 대표 테러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지가 이제 새로운 의혹이다.  

해소되지 않은 여러 의혹에 관해 언론들마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또다른 의혹이다.  사건 발생 직후 주류 언론들은 △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가 흘린 ‘1cm 경상’ 내용을 마구 받아쓰고 △서울대 병원 헬기이송을 부각시키고 △이 사건을 ‘정치테러’가 아닌 ‘단순 피습’으로 명명해 기사화하는 등 이번 사건을 축소·왜곡하고 본질을 흐리는 기사를 보도했다.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주류 언론들이 이를 문제제기하거나 추가취재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경찰 수사도 부실했지만, 언론의 취재보도도 부실했고,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말 부실하고 편파적이었다면 그것은 어떤 정치적 의도로 인한 것일까?  혹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축소· 왜곡해 보도하고 있을까? 약 18년 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지금의 국민의힘) 대표 테러사건 보도와 비교해보면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지방선거를 열흘 정도 앞둔 2006년 5월20일 토요일 박근혜 대표는 서울시내 유세도중 커터칼을 휘두른 50대 남성에게 ‘습격’당한다. 이 소식은 당일 방송 뉴스를 통해서는 보도되었으나 신문은 대부분 일요일 휴간된 관계로 22일(월요일)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호관찰 대상자가 테러/박 대표 피습...60바늘 꿰매/전과8범...작년에도 야 의원 폭행/난동 50대는 열린 우리 기간당원”(조선일보)

“박대표 피습...지방선거 자상(刺傷)/여 기간당원 밝혀져/한나라 ‘배후의혹 규명’ 열린우리 ‘선거테러 엄단’”(동아일보)

“박근혜 테러 충격, 테러는 분열·증오 먹고 자란다/칼 힘껏 찔러...뼈에 닿을 정도/60바늘 꿰매 성형해도 흉터 남아...6개월 치료받아야”(중앙일보)

“박대표 테러범 ‘억울한 옥살이 불만’/왜 야 대표를? 범행동기 의문/경찰, 중간수사결과 발표/난동자는 여 당원...검경 합동수사”(한국일보)

“‘계획적 테러’ 왜 야당대표 노렸나/박근혜 대표 피습....주변 ‘한나라당에 억울한 옥살이 호소해도 도움 못받아’/작년 사학법때도 폭력/공범·배후 의문점 남아”(한겨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테러 직후인 2006년 5월22일 주요 신문의 1면 보도. 윗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테러 직후인 2006년 5월22일 주요 신문의 1면 보도. 윗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위의 1면 제목에서 보듯이, 주요 언론들은 초기부터 △박근혜 대표 피습을 ‘정치테러’로 규정했고 △테러범의 당적·전과를 밝혔으며(기사 본문에서는 이름도 밝힘) △박근혜 대표 피해 정도의 심각성(‘칼 힘껏 찔러’‘뼈에 닿을 정도’‘60바늘 꿰매’ ‘생명선 아슬아슬 비껴가’ 등)을 강조했다. 여러 언론들이 박 대표가 얼마나 ‘위험한’ 피해를 입었는지 그림까지 동원해 상세히 보도했다.

범행동기·공범·배후 등에 관해서도 의문을 크게 제기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박근혜 대표 테러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표까지 그려 ‘①정치테러인가 ➁계획적 범행이었나 ③배후는 있나 ④지씨와 박씨는 공모했나’ 등의 의문을 던졌다. 경향신문도 “정치테러인가, 단순범죄인가” 제목의 기사를 작성해 이 사건의 의미와 의혹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모든 언론이 사건발생 이틀만에 나온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을 크게 보도했으며, 특히 경찰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경찰, 범행에 쓰인 칼도 확보 못해/오락가락하며 어설픈 초기대응”기사, 조선일보)

이재명 대표가 목을 흉기로 공격당한 다음날인 2024년 1월3일자 주요 신문의 1면 제목과 비교해보자. 

“혐오의 정치 칼날에 쓰러진 야당 대표/이재명, 부산 가덕도 행사서 피습...목 찔렸지만 생명엔 지장 없어”(조선일보)

“이재명 대표 피습...‘총선’이 테러 당했다/총선 99일 앞두고...이, 가덕도 신공항 부지서 흉기에 찔려”(동아일보)

“이재명 피습...‘총선의 해’ 열자마자 쇼크/이재명 목에 1.5cm 열상...경정맥 수술, 중환자실서 회복중”(중앙일보)

“이재명 피습...‘민주주의 심각한 위협’”(한겨레)

“이재명 ‘흉기피습’...여야 ‘테러 규탄’”(경향)

이재명 대표 테러 기사는 사건 다음날 모든 신문 1면 톱에 올랐지만, 이날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기사, ‘일본 이사카와현 7.6 강진 발생’ 기사 등도 1면에 함께 게재됐다. 박근혜 대표 테러기사가 당일 1면 가득히 채워진 것과 비교된다. 

또 이재명 대표 테러사건에는 ‘테러’가 아닌 ‘피습’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했으며, 테러범의 이름은 물론, 당적도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피해정도는 ‘1cm 열상’‘경상’‘생명엔 큰 지장 없다’는 보도가 대부분이었으며, 심각성을 보여주는 그림 이미지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테러의 동기나 공범·배후를 반드시 규명해야한다는 지적도 드물었다. 오히려 이 범행의 배경을 ‘극단의 정치’ ‘증오와 혐오 정치’로 돌렸으며, 공범·배후를 묻는 것은 음모론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건 터지자마자 음모론·배후론 쏟아졌다”기사, 조선일보) 이런 지적은 사실상 공범·배후를 캐묻지 말라는 뜻이다. 

 

조선일보(위)의 이재명 대표 테러보도와 중앙일보의 이재명 대표 퇴원 보도. 
조선일보(위)의 이재명 대표 테러보도와 중앙일보의 이재명 대표 퇴원 보도. 

박근혜 테러범에 대한 경찰 수사에 대해서는 ‘어설펐고, 초기대응도 부실했다’고 야단쳤던 언론들이 이재명 테러범 수사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조중동은 이재명 테러범 수사발표 내용을 단신처리하거나 이재명 대표 퇴원 뉴스에 몇줄 걸쳐 썼을 뿐이다.

더욱이 이재명 대표 테러 보도에는 박근혜 대표 때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이슈가 하나 있었다. ‘헬기이송 특혜’ 혹은 ‘지역병원 홀대’ 보도였다. 일부 주류언론들은 이재명 대표가 병원에 입원치료 중에도 그의 안위·회복에 대해 묻지 않고 이 이슈를 계속 기사화했다. 이는 테러 동기·배후·공범 등 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는 프레임으로 작용했다. 박근혜 대표 테러를 떠올리게 하는 연관어가 ‘대전은요?’였다면, 이재명 대표 테러 연관어는 ‘헬기이송 특혜’‘지역병원 홀대’ 등 부정적 키워드였다.

이처럼 두 사건에 대한 주류 언론들의 보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확연히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당대표에 대한 테러 사건이었지만 이를 대하는 주류 언론들의 태도와 관점, 프레임도 달랐다.

김춘효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선임연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피습보도 프레임으로 읽는 박근혜와 이재명’ 보고서에서 두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의 차이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언론이 박근혜 대표에는 ‘불쌍한 공주’ 이미지를, 이재명 대표에는 ‘특권의식에 찌든 머슴’ 이미지를 씌웠다는 것이다.

그는 두 사건을 6개 언론사(조선·동아·중앙일보와 부산일보·국제신문·경남도민일보) 보도를 통해 비교하고, 전체적인 분석 결과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박근혜는 ‘테러’를, 이재명은 ‘피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 대표 테러 때에는 ‘상처부위’ ‘범인’ ‘수사당국 대처’ 등 3가지를 강조해서 보도했으나 이재명 대표 때에는 이 부분이 축소·생략되었다고 했다.

특히 테러보도로 만들어진 박근혜·이재명의 이미지는 완전히 다르다. 박근혜 대표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의지로 극복한 ‘전사’ △정권(당시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수사당국의 초기대응 부실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위기 상황에서도 ‘병상정치’ ‘편지유세’로 이를 이겨낸 ‘의연한 국가지도자’ △잘못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에게 테러를 당한 ‘불쌍한 공주님’ 등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박근혜 대표가 테러직후와 퇴원 이후 한 발언을 보도한 중앙일보(좌)와 조선일보 기사.
박근혜 대표가 테러직후와 퇴원 이후 한 발언을 보도한 중앙일보(좌)와 조선일보 기사.

반면, 이재명 대표는 언론보도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극단적 정치가 낳은 증오·혐오에 빠진 개인에게 흉기테러를 당한 ‘수동적 희생자’ △크지 않은 상처를 입고 엄살을 피우는 환자 △‘지역차별 갈등 유발자’의 모습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한 정치인 등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언론 뉴스 속의 이재명에게는 ‘배제’의 프레임이 작동했다”고도 했다. 이재명에게는 △최초 보도부터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배제된 채 보도되었고(조선일보 등) △상처에 대한 수사당국의 정확한 언론브리핑이 없었고 △테러범의 이름, 당적은 물론 카드지출액, 휴대폰 사용료, 여당의원에게 한 취직 부탁, 카드깡 내역 등이 감춰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오리무중의 사건’으로, 공범도 배후도 없는 ‘혐오의 칼날을 맞은 피습 사건’으로 프레임이 왜곡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는 ‘커터칼’ 테러를 당해 얼굴에 자상(刺傷)을 입고 열흘 뒤 열린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선거의 여왕’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표는 3개월 뒤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똑같은 정치테러를 주류언론들이 다르게 보도한 것은 이 질문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의 보도는 ‘보수세력의 선거승리’라는 정치적 목적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