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자구안 뒤늦게 이행…혼란 자초
"티와이홀딩스·SBS 지분도 담보 제공"
워크아웃 개시 후 특혜 논란 없애려면
사주 ‘자기책임 원칙’ 엄중히 물어야
지난달 28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차입금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 사주 일가의 무책임한 행태가 금융시장과 건설업계의 불확실성과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들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전액을 태영건설 지원에 투입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가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반발하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검토하겠다고 하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태영그룹은 8일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중 채권단이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890억 원을 추가로 태영건설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그룹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는 이날 공시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리며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직접 지원하겠다는 약속 이행을 완료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머지 자구 계획도 이른 시일 내 이사회 결의를 거쳐 실행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존 자구안만으로는 태영건설 PF 사업을 정상화하기 힘든 상황이다. 추가 금융 지원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태영건설 부실에 가장 책임이 큰 사주 일가의 ‘뼈를 깎는 노력’이 이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채권자와 협력업체, 분양계약자 피해에 더해 각종 특혜를 제공하면서까지 워크아웃을 개시하는 것에 찬성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윤세영 창업 회장 등 사주 일가가 보유한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안을 비롯해 추가 자구 계획을 요구했던 이유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직후 태영그룹 사주 일가가 보인 태도는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하고 확보한 자금 중 890억 원을 태영건설 지원에 쓰지 않고 티와이홀딩스의 연대보증 해소에 사용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약속 위반이라며 성토했고 대통령실까지 나서 이런 식이라면 워크아웃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압박했다.
궁지에 몰린 태영그룹은 윤세영 회장의 딸 윤재연 씨 지분 매각 대금과 티와이홀딩스 자금 등으로 890억 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크아웃 개시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추가 자구안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했다. 이에 태영그룹은 9일 추가 자구안을 발표했다. 4월까지 태영건설 유동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티와이홀딩스와 SBS 지분을 담보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윤세영 회장과 그의 아들인 윤석민 회장 등 사주 일가의 티와이홀딩스 지분은 약 33.7%다. 티와이홀딩스는 SBS 지분을 36.9% 보유하고 있다.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의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필요하면 이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다. 다만 SBS 지분 매각은 방송법상 대기업 지분 제한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최대 주주 변경 승인 등 제약이 많아 당장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태영그룹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의 투입에 이어 환경 기술 회사인 에코비트 매각과 레저 계열사 블루원 지분 담보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제공 등 나머지 자구안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워크아웃 신청 직후부터 말과 행동이 달랐다는 점에서 약속을 이행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 채권자협의회에서 결정된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확정된다고 해도 금융시장과 건설업계는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PF 보증 규모가 50%를 넘는 주요 건설사는 롯데건설(212.7%)과 현대건설(121.9%), HDC현대산업개발(77.9%), GS건설(60.7%), KCC건설(56.4%), 신세계건설(50.0%) 등이다. 이들 건설사가 모두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업장의 위험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사 회사채 규모가 약 2조 37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부담이다. 신용 경색으로 자금이 끊기면 공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자 비용이 불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 부실한 PF 사업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중소 건설사의 연쇄 부도 사태가 더 심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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