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일가 사재 출연 ·SBS 지분 매각 계획 빠져
채권단 냉담…금감원장 "남의 뼈를 깎는 방안"
롯데건설도 자칫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어
건설 업황 회복 어려워…정부 지원도 한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졌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신통치 않은 자구안에 채권단이 냉담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까지 나서 태영그룹을 강도 높게 비판할 정도다. 정부는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무산돼 법정관리로 가는 상황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태영건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태영건설에 이어 롯데건설이 자칫하면 PF사업 부실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증권사 리포트가 나왔다. 건설업계 전체에 쓰나미가 몰려오는 형국인데 건설사들은 업황이 개선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법정관리행 위기로 몰리고 있는 태영건설
태영그룹은 지난 3일 오후 산업은행에서 400곳 이상의 채권단을 모아 자구안 설명회를 열었다. 태영그룹이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은 크게 4가지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1549억 원)을 태영건설에 지원한다는 것과 계열사인 종합환경업체 에코비트 지분(50%) 매각을 추진하고, 매각 대금을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한 것, 골프장과 레저사업을 하는 블루원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고 매각을 추진하는 것, 평택싸이로 지분 62.5%를 담보로 제공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설명회에 앞서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 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와 보증 채무 처리 방안이었다. 특히 태영그룹 오너 일가가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을 매각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날 설명회에서 오너 일가 사재 출연 규모나 SBS 지분 매각 가능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태영의 자구안에 대해 냉담하기 이를 데 없는 반응인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태영그룹 측이 내놓은 자구안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이었고 흡족하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태영그룹은 이미 채권단과 금융당국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를 한 바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상거래채권 1485억 원 중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451억원을 갚지 않았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일부를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의 PF 보증채무 상환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으로 윤세영 회장 아들인 윤석민 회장은 416억 원, 윤재연 블루원 대표는 513억 원, 티와이홀딩스는 1133억 원을 각각 확보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태영그룹이 이 중 1550억원 가량을 태영건설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400억 원가량만 태영건설에 지원했고 나머지는 티와이홀딩스의 보증채무 변제에 쓴 것이다.
태영그룹의 배신행위와 미흡하기 짝이 없는 자구안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조차 격분케 했다. 이 원장은 태영건설이 내놓은 워크아웃 자구계획에 대해 ‘오너 일가의 자구계획’, ‘자기 뼈가 아니라 남의 뼈를 깎는 방안’이라며 혹평했다. 이 원장은 태영건설이 채권단을 설득할 만한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는 내놔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채권단에 의해 거부되면 태영건설은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된다.
롯데건설도 자칫하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어
태영건설만으로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롯데건설도 위험할 수 있다는 리포트가 나왔다. 4일 하나증권은 태영건설 다음으로 PF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건설사로 롯데건설을 꼽았다. 도급 PF 규모가 크고 1년 내 돌아오는 PF가 유동성보다 큰 점, 양호하지 않은 지역에서의 도급 PF 보유 비중이 높은 점 등을 미뤄볼 때 롯데건설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증권의 김승준 애널리스트는 “올해 1분기까지 도래하는 미착공 PF 규모는 3조 2000억 원이며 서울을 제외한 지역 미착공 PF는 약 2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며 “최근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의 청약 결과가 부진한 점을 감안할 때 서울 외 지역에서의 본PF 전환 가능성을 다소 보수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애널리스트는 “롯데건설 보유현금은 2조 3000억 원 수준이고 1년내 도래하는 차입금은 2조 1000억 원”이라며 “여기에 1분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PF 우발채무를 고려할 때 현 유동성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미착공 PF 2조 5000억 원 모두 채무인수하거나 자금보충을 해야하는 게 아니어도, 유동성으로 보면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PF 만기가 연장돼도 본PF로 전환할 수 있는 부동산 업황 개선 없이는 롯데건설 유동성 리스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으로선 본PF로 조속히 전환될 만큼 건설 업황이 빠른 회복을 보이기가 어려워 보여 문제다.
업황 호전만을 학수고대하는 건설업계
부동산 대세상승 시기에 황금알 낳는 거위였던 부동산PF가 업황이 악화되면서 시한폭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4일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건설업의 산업과 신용도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면서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면 시공능력 상위 건설사로도 신용위험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건설업계 입장에선 정부 지원이나 업황 호전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천문학적 세수 부족을 자초한 정부가 건설업계를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업황 호전이 언제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설혹 기준 금리가 찔끔 인하된다 해도 건설업계에 온기가 감돌긴 쉽지 않다. 건설업계의 겨울은 이제 시작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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