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악화 20세대 만에 근친교배 쪽 진화 결론

벌이 줄면 식물도 줄어드는 하방 나선형 악순환

자가·타가수정 다 하는 팬지 20년 전 씨앗 심어

현재 것과 비교해보니 현재것이 자가수정 27% 많아

다른 식물들도 동일한 생존전략상의 문제 직면

팬지꽃
팬지꽃

벌들이 사라지면 그들의 도움으로 꽃가루 받이를 하던 식물들은 어떻게 될까?

4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인간들에 의한 급격한 생태환경 변화로, 화려한 색깔과 꿀로 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끌어들여 수정을 하던 식물들 가운데 일부가 자가수정을 하는 쪽으로 생존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팬지, 생태파괴 20세대 만에 생식전략 바꿔

연구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인간들의 살충제 살포와 서식지 파괴로 벌과 같은 매개 곤충들이 줄어들면서, 다른 꽃들의 꽃가루를 묻혀 온 그들의 도움으로 수정(타가수정)을 해 온 식물들 중에 일부가 다른 꽃들의 꽃가루보다 자신의 꽃가루로 수정하는 자가수정을 더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런 생식(번식)전략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식물들은 단 20세대만에 그런 전환을 이뤄냈다.

연구를 이끈 피에르 올리비에 솁투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의 진화 생태학자는 그런 전환을 “빠른 진화”라고 했다. 솁투 박사는 벌을 비롯한 꽃가루 매개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꽃가루 매개자에게 생식을 의존하는 꽃들이 다른 방식을 찾아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자가수정과 타가수정 모두 할 수 있는 팬지

연구는 유럽 전역의 들판과 길가에 흔하게 피는 흰색, 노란색, 보라색 야생 팬지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야생 팬지들은 보통 호박벌을 타가수정의 매개자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 식물은 자신의 꽃가루로 자신이 수정하는 자가수정도 할 수 있다.

자가수정은 벌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른 꽃의 꽃가루와 수정하는 타가수정보다 더 편하다. 하지만 자가수정하는 꽃은 자신의 유전자만으로 새로운 씨를 만들어 낸다. 일종의 근친교배인 셈이다.

다른 꽃들의 꽃가루와 수정하는 타가수정을 통해 꽃들은 유전자(DNA)를 서로 섞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함으로써 질병이나 가뭄 등 미래 세대가 직면하게 될 고난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

 

호박벌
호박벌

1990년대 이후 자가수정 27% 늘어

지난 수십년 간 솁투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야생 팬지의 진화를 추적하기 위해 1990년대~2000년대 초에 프랑스의 국립식물원이 채집한 씨앗 저장소를 활용했다.

연구자들은 이 오래 된 씨앗의 야생 팬지들과 프랑스 전역 시골에서 피는 새 야생 팬지들을 비교했다. 이들의 씨를 실험실의 동일한 조건 속에 나란히 심어 자라게 한 뒤 조사해 보니, 1990년대 이후 자가수정 쪽이 27%나 더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또 이들 식물을 해부해서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새 야생 팬지들은 예전 야생 팬지들에 비해 전체 크기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꽃은 10% 줄었고, 꿀 생산도 20% 줄었다.

연구자들은 새 야생 팬지들의 이런 변화들이 호박벌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 알아 보기 위해 그들은 호박벌 벌통들을 예전의 야생 팬지와 새 야생 팬지들을 함께 심은 폐쇄 공간에 갖다 놓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호박벌들은 새 야생 팬지들보다 예전의 야생 팬지를 더 많이 찾았다.

다른 식물들도 동일한 생존전략상의 문제 직면

솁투 박사는 호박벌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꿀과 크고 매력적인 꽃을 만들어 내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커졌고, 그것은 팬지에게 짐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꽃가루 매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에너지에 투자하는 야생 팬지보다 그것을 생장과 질병에 대한 저항 쪽에 투자하는 야생 팬지가 더 성공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

연구자들은 다른 많은 꽃들도 생존전략상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고, 야생 팬지들과 같은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식물들이 그렇게 진화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솁투 박사는 말했다.

벌이 줄면 식물도 줄어드는 악순환

이것이 사실이라면, 식물들은 꽃가루 매개 곤충들을 더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셈이 된다. 꽃들이 꿀 생산을 줄이면 매개 곤충들 개체수는 더욱 줄어들 것이고, 그것은 타가수정이 식물들에게 베푸는 혜택 또한 줄어들게 만들 것이다.

이런 하방 나선형의 악순환은 곤충들에게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솁투 박사는 경고했다. 만일 일부 식물들이 결국 타가수정을 통한 번식전략을 포기해 버릴 경우, 그들은 그 능력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자가수정은 그에 따른 유전적 한계 때문에 식물들을 멸종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 “그들은 적응할 수 없게 돼, 더 큰 멸종 가능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솁투 박사는 말했다.

식물 멸종 현실은 실험 결과보다 더 나쁠 수도

캘리포니아 대학 샌타 바버라 캠퍼스의 식물학자 수전 메이저 교수는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런 결과를 두고 “안타깝지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메이저 박사는 하방 나선형 악순환이 솁투 박사의 연구가 시사하는 것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했다. 꽃식물들은 꽃가루 매개자들의 감소 외에도, 타가수정 생식전략을 포기하게 만드는 다른 여러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예컨대 지구 온난화로 꽃식물들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 결과 꽃들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끌어들일 꿀을 제공할 새도 없이 시들어 버릴 수 있다.

거꾸로 타가수정 전략을 더 강화하기도

역시 그 연구에 참가하지 않은 또 다른 진화 식물학자인 사샤 비숍 미시간 대학 교수는 그러나, 일부 꽃들은 꽃가루 매개자들의 감소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숍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미국 남부지역에서 수행한 나팔꽃에 관한 연구에서, 2003~2012년 사이에 꽃들이 작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진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그런 변화를 흔치 않게 된 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비숍은 “그들(식물들)은 자가수정에 투자할 수도 있고, 꽃가루 매개자들을 더 잘 끌어들이는 쪽에 투자할 수도 있다”면서 “둘 다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꽃식물들의 생존에 불리

식물들이 인간이 야기한 생태계 교란에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생존을 위한 고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생존에 불리하다. 과학자들의 이런 경고를, 생태계가 파괴되고 벌이 사라져도 식물들은 어떻게든 적응해서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을 거야, 걱정할 것 없어, 라는 쪽으로 해석할 사람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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