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을 먹여살리는 쌀
세계 쌀 생산과 소비의 90%가 아시아
쌀 생산 증가율 떨어지고 소비는 치솟아
한국 곡물자급률 18.5, 식량자급률 40.5%
쌀 농사는 지구온난화 피해자이자 가해자
당뇨·비만의 원인, 조(기장) 재배가 대안
한국인의 주식인 쌀은 아시아 대륙 전체의 주식이기도 하다. 세계 쌀 생산과 소비의 90%가 아시아에서 이뤄진다. 아시아인들은 매일 칼로리(영양)의 25%를 쌀에서 얻는다. 유엔에 따르면, 아시아인들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쌀의 양은 한 사람당 평균 77㎏이다. 한 사람당 쌀 소비량이 크게 늘고 있는 아프리카와 유럽, 미주(아메리카)의 그것을 합친 것보다 많다. 수억 명에 이르는 아시아의 농민들이 주로 작은 농토에서 자라는 쌀 농사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쌀과 쌀 농사가 세계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는 쌀의 생산, 소비, 영양, 그리고 지구 온난화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다.
<이코노미스트> 온라인판 3월 28일 기사 ‘글로벌 쌀 위기’(The global rice crisis)를 토대로 이를 살펴 본다.
생산과 소비 문제
지금 쌀 수요가 전 지구적으로 치솟고 있다. 그런데 쌀 생산은 정체되고 있다. 쌀 생산에 필요한 땅과 물, 그리고 노동력이 점차 부족해지고 있다. 게다가 기후변화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기온 상승으로 농작물이 말라 죽고, 잦아지는 홍수가 쌀농사를 파괴한다. 쌀농사는 지구 온난화의 희생자일 뿐만 아니라 그 주요한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쌀이 자라는 논은 온실가스 메탄을 많이 방출한다. 세계 인구 60%의 성장을 떠받쳐 온 쌀이 불안정과 위협의 근원이 돼 가고 있다.
수요 증가가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2050년까지 아시아의 인구는 지금의 47억 명에서 53억 명으로, 아프리카는 14억 명에서 25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증가는 쌀 수요를 30% 증가시킬 것이라고 <네이처 푸드>는 예상한다. 쌀 증산이 그런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쌀 부족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주식을 쌀이 아닌 빵이나 파스타 등 대체재로 바꿔 위기를 피해갈 수 있는 곳은 한국, 일본 등 몇몇 부자나라들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한다.
주식을 빵이나 파스타로 바꾸거나 그것으로 보충하는 것과 식량위기 해결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은 쌀 자급율은 높지만, 쌀과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 전체의 자급율은 18.5%에 지나지 않으며, 전체 식량의 자급률은 40.5%다.(<한국농정신문> 2023년 2월 3일)
다시 쌀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이처럼 쌀 수요는 늘고 있는데 쌀 생산 증가율은 떨어지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쌀 생산은 지난 10년간 매년 평균 0.9%씩 증가했으나, 이는 그 전의 10년간 평균 약 1.3% 증가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이다. 이런 증가율 하락은 증가율이 1.4%에서 0.4%로 급락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파르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이미 상당량의 쌀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다. 쌀 생산이 늘지 않으면 이들 나라는 4억 명의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점차 다른 나라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네이처 푸드>는 지적한다.
‘녹색혁명’의 성과와 그 역설
지난 세월 쌀 생산은 1960년대에 시작된 지속적인 녹색혁명 효과 덕분에 수요 증가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 본부를 둔 국제쌀연구소(IRRI) 과학자들은 쌀 생산 증대를 위해 IR8이라는 새 품종을 개발했다. 비료와 관개시설 덕에 번성한 이 새 품종 덕분에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는 기아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IR8이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IR8이 필리핀에서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쌀 생산이 늘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쌀은 더 매력적인 작물이 됐으며, 그럴수록 더 많은 자원들이 쌀 생산에 투입됐다. 식량안보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된 아시아의 정부들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IRRI는 이런 성공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줄 새로운 쌀 품종들, 예컨대 기후변화에 잘 견디고 물을 더 적게 쓰는 품종들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1960년대만큼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왜 그런가? 급속한 도시화와 다른 용도로의 토지 분할이 쌀 생산에 필요한 땅들을 잠식했다. 1971년과 2016년 사이에 인도 농민들의 평균 보유농지는 2.3헥타에서 1.1헥타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생산성 증가에 장애가 됐다. 특히 노동력이 부족한 곳에서 더욱 그러했다. 가지런히 손질한 모판에 볍씨를 뿌리고, 다시 모를 옮겨 심고, 수확하는 일은 등뼈가 휘어지는 고된 단순노동이어서, 아시아의 노동자들은 점차 그 일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았다. 또 다른 큰 투입요소인 물도 점점 부족해졌다. 많은 지역의 농지가 비료와 농약을 지나치게 사용하면서 땅심이 고갈되고 독성물질에 오염됐다.
기후변동의 피해자이자 가해자
지구 온난화에 쌀만큼 취약한 농작물도 없다고 IRRI 과학자들은 얘기한다. 2004년의 연구에서 최소기온이 섭씨 1도 올라갈 때마다 쌀 생산이 10% 줄어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수면 상승도 온난화의 또 다른 결과다. 이 때문에 이미 메콩강 델타의 저지대가 바다의 염분에 침습당하고 있고, 이는 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 4위의 쌀 수출 대국인 파키스탄이 대규모 홍수로 쌀 수확량의 15%를 잃었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가 쌀 농사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쌀 농사가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키는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에 쌀 농사가 미치는 영향은 저평가돼 왔다. 관개시설이 돼 있는 논은 토양 속의 산소를 고갈시켜 메탄을 방출하는 박테리아를 번성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쌀 생산은 메탄 방출 총량의 12%, 그리고 온실가스 방출 총량의 1.5%에 책임이 있는데, 이는 항공기의 방출량에 비견될 수 있다. 베트남의 논들이 방출하는 탄소량은 이 나라 교통기관들의 방출량을 능가한다.
영양학상의 문제
쌀의 영양학상의 문제도 점차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쌀은 글루코스(포도당) 농도가 높은 대신 필수 미네랄인 철과 아연 함량이 낮다. 남아시아 지역에 당뇨와 영양실조가 많은 현상은 쌀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일 수 있다.
정부 정책의 문제
이런 많은 문제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하기 쉽지 않다. 첫 녹색혁명이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면, 다음의 녹색혁명은 시스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진 발리에 IRRI 소장은 얘기한다. 이것은 더 좋은 품종 개발과 함께 더 좋은 쌀 정책을 요구한다.
대다수의 생산성 및 환경 문제들에는 빈약하고 낡은 정부 개입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정부의 잘못된 개입은 시장을 왜곡하고 변화를 위한 인센티브를 무디게 만든다. 북부인도 하르야나 주의 작은 마을 바시 아크바르푸르의 산디프 싱은 쌀 농사를 짓지만 밀로 만든 빵인 로티를 더 즐겨 먹는다. 밀은 하르야나의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 훨씬 더 적합한 작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인센티브를 통해 쌀과 밀을 번갈아 재배하도록 압박한다.
인도는 쌀 가격을 보장해 주면서 종종 보조금을 활용해 농민들로부터 쌀을 시장가격 이상으로 구매해 가난한 이들에게 싸게 팔아 쌀 소비를 지탱한다. 비료와 물에도 보조금을 푼다. 그런 개입방식은 아시아 전역에서 일반화돼 있는데, 당뇨와 환경 비용이 지금처럼 관심사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 도입된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이런 정책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농민들 표를 의식하는 정부는 감히 그들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필요한 조치를 과감하게 취해왔다고 자부하는 인도 집권 바라티야 자나타 당은 2021년에 농민들의 항의 때문에 농업개혁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이를 깨달았다.
새 품종 개발 등 생산성을 높이는 법
깊어가는 쌀 위기 해결에 단일한 해법은 없다. 여러 부분적인 해법들이 있을 뿐이다. 생산성이 낮은 미얀마, 필리핀과 같은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심각한 환경파괴 없이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IRRI의 과학자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홍수와 가뭄, 열파를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쌀 품종들, 그리고 영양학적으로 더 나은 품종들을 개발해 왔다. 물과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는 파종법인 직파농법과 같은 재배방식의 혁신과 함께 이런 변화들을 통해 환경파괴를 줄이면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이는 아시아 전역에서의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홍수에 강한 쌀 품종인 수브1(Sub 1)을 재배하는 방글라데시 농민들은 6%의 생산 증가와 55%의 수익증대를 실현했다고 2021년 <푸드 폴리시>에 실린 연구는 보여 준다. ‘글로벌 식량안보’(Global Food Security)의 필드 시험 리뷰에는 가뭄에 내성이 있는 품종이 1헥타당 0.8~1.2톤의 증산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규모에 맞게 볍씨(종자)와 재배방식을 개량하는 것이 과제다. 많은 농민들은 개량 사실 자체를 모르고, 일부는 새로운 것을 채택하기를 꺼린다. 2017~18년에 쌀 농사를 짓는 인도의 농민들을 전국적으로 관찰한 결과 2004년 이후 새 품종을 채택한 농민들은 전체의 26%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
새 품종과 재배방식이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는 정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가 이를 선도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은 ‘저탄소’ 쌀을 100만 헥타에서 재배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노동력을 절감하고 효과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이를 추진하는데, 농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배출 경감 광고 같은 것은 피해야 한다고 IRRI의 기후전문 과학자 비외른 올레 샌더는 말했다.
상향식 접근 또한 중요하다. 농업확장 노동자들이 노하우 전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데도 정책입안자들은 종종 이를 무시한다. 대다수 공공농업 예산이 보조금과 관개에 투입되는데, 이는 더 많은 땅을 가진 더 부유한 농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사람들이 쌀 의존도를 줄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엔은 인도의 요청으로 2023년을 '조(기장)의 해'로 선언했다. 조는 쌀이나 밀보다 영양이 훨씬 더 풍부하고 물도 적게 든다. 인도네시아도 조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지금은 건강에 신경쓰면서 유행에 민감한 대도시 델리의 시민들이나 쌀이 아닌 조 비르야니를 선택할 것이다. 엘리트들이 앞장서면 대중들도 따라간다. 큰 시장이 나타나면 농민들이 조 재배에 이끌릴 것이고, 열성적인 쌀 농가들도 다른 작물을 재배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녹색혁명
첫 녹색혁명은 기근으로 인한 아시아의 파국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날의 상황은 그때만큼 불안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과제는 더 커진 면이 있다. 국가들은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이 생산하고, 환경에 훨씬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녹색혁명’이라고 IRRI의 발리에 소장은 얘기한다.
그럴 경우 그 보상도 전례없이 클 것이다. 더 많은 지속 가능한 재배와 늘어난 수확이 농민들에게 더 많고 안정적인 소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기후변동에 적응하고 그것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요컨대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처럼 쌀 농사에만 전력투구 하지 말고, 더 적은 자원을 투입해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새 작물이나 새 품종을 재배하되, 중요한 것은 온난화 등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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