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통신 7] 보름 앞 다가온 선거의 또 다른 변수
‘부총통 후보를 보면 다음 정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한창 달구어진 대만 총통 선거운동 과정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내년 1월 13일 치러질 대만 총통 선거에서 각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내세운 부총통 후보들의 면면과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각 당이 추구하는 노선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의 부총통 제도는 미국의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총통 궐위 시 잔여 임기 동안 총통직을 승계한다. 그러나 권한은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행정원장보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고 평가된다.
특이한 점은 부총통 후보가 총통 선거 과정에서 깜짝 이벤트 성격으로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각 당의 총통 후보가 비교적 일찌감치 정해진 데 비해 부총통 후보는 선관위 후보 등록을 앞둔 시점에서야 윤곽을 드러냈다. 따라서 머리 맞대고 정책을 함께 준비해가는 파트너라기보다는 선거운동 지원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일종의 얼굴마담인 셈이다.
후보 등록 직전에 공개된 깜짝 카드, 부총통 후보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는 지난 달 20일 총통후보 등록을 앞두고 샤오메이친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1971년 일본 고베 시에서 대만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 태어난 그녀는 대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2001년 지금은 폐지된 재외교포선거구 몫으로 입법의원에 출마하면서 미국 국적을 포기했고, 이후 총 4번의 입법의원을 역임했다. 차이잉원 총통의 두 번째 집권 시기인 2020년 주미 대만대표처 대표로 임명된 후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 기조 속 대만의 친미노선을 강화하는 역할을 자처했고, 이로 인해 중국으로부터는 ‘중국 입국금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기도 하다.
반면 중국국민당(국민당) 부총통 후보 자오샤오캉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중 인사다. 1950년생으로 같은 당 총통 후보인 허우요위보다 7살 연상인 그는 40대 시절 대만 입법의회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촉망받는 청년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1993년 국민당을 탈당해서 친중국 노선을 더욱 선명히 표방한 신당을 창당했고, 이듬 해 열린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훗날 총통이 된 민진당 첸수이벤 후보와의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정계를 떠났다.
이후 자오샤오캉은 텔레비전 토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하면서 다시 유명인사가 됐는데,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정치비판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 방송사 경영에까지 참여하며 미디어 재벌의 지위에까지 올라 대만 정부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정통 국민당 지지자들로부터 큰 신임을 받지 못했던 허우요위에게 자오샤오캉의 발탁은 천군만마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미 대표부 출신의 친미 인사 vs 국민당 노선보다 더욱 선명한 친중 인사
앞선 두 부총통 후보에 비하면 민중당의 부총통 후보는 인지도가 많이 뒤처진다.
우신잉, 1978년생, 당년 45세, 현직 입법의원이라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관계가 있는 기업 이름을 듣고 나면 모두 “아하, 그 집안”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대만에서 백화점업과 금융업으로 유명한 신광그룹이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인의 설탕 무역회사를 우신잉 할아버지가 물려받은 후 백화점업, 석유, 합성섬유, 금융업까지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해 오늘의 재벌그룹으로 키워왔다. 부유한 환경 속 미국과 대만 양쪽 국적을 모두 갖고서 자란 일명 ‘신광공주’ 우신잉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신광그룹의 자회사 여기저기에서 중역급 직책으로 일을 했으나, 실적이 좋지 않아 번번이 해임되었으며, 미국 국적은 2014년에야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2019년 커원저가 민중당을 창당하면서 2020년 치러진 입법의회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7번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당선 순번에 들지 못했고, 이후 두 명의 민중당 비례대표 입법의원이 사퇴하면서 지난 해 10월에서야 의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한 마디로 정치새내기다.
민진당의 샤오메이친과 국민당 자오샤오캉의 부총통 후보 발탁 이유에 대해서는 대만 민중들이 분명한 이유를 알고 있다. 작금의 대만 총통선거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민진당은 미국과의 외교관계 전문가이자 대만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50대 여성 정치인을, 국민당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자, 정통 국민당 지지자들로부터 양안 문제에 관한 허우요위 총통 후보의 부족한 부분을 선명하게 채워줄 수 있는 자오샤오캉 후보를 각각 선택한 것이다. 총통 후보들의 노선을 더욱 분명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부총통 후보들 간의 경쟁인 것이다.
불분명한 발탁 사유의 민중당 부총통 후보
그러나 민중당 부총통 후보의 성격은 애매하다. 한때 친미도 친중도 아닌 ‘제3의 노선’을 표방하며 젊은 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던 커원저 후보는 우신잉을 부총통 후보로 지명한 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개방적인 가치와 국제적 전망, 금융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고개를 꺄우뚱거린다. 지난 달 말 부총통 후보 지명 직후 기자들이 “커원저 후보가 금융계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묻자 우신잉은 “돈으로 사람의 애국심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고 중국어로 답한 뒤, 다시 영어로 “Don't use money to measure my patriotism!”이라고 거듭 말해 기자들을 의아해하게 만들었다. 지난 12월 17일에는 지방의 종교행사에 참석해서 타이페이 시장 시절 부채 탕감에 대한 커원저 후보의 업적을 칭찬하며 “커 후보가 나에게 ‘돈을 많이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부총통 후보직을 제안했다”고 말해 다시 한 번 청중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우신잉의 가장 큰 사달은 지난 22일 밤 세 부통령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여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정견 발표회장에서 일어났다. 여기에서 우신잉은 정견 발표 말미에 “어렸을 때 사람들이 조니 워커를 즐겨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해 모두를 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조니 워커 발언에 대해 우신잉은 “그다지 좋은 위스키도 아니지만 대만 판매량이 세계 1위”라면서 “대만인들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조니 워커를 좋아한다”고 어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미 네티즌 사이에서는 “서민인 척했는데, 다 들통났다” “정견 발표하려면 먼저 자격을 갖춰야 한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등의 비난이 쏟아진 이후였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반영된 부통령 후보 자격
이런 가운데 세 총통-부총통 러닝메이트 간의 지지율도 희비를 보였다.
민영뉴스채널 TVBS 여론조사센터가 지난 12월 15일부터 12월 2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진당 라이칭더-샤오메이친 지지율은 33%, 국민당 허우요위-자오샤오캉 지지율은 32%, 민중당 커원저-우신잉 지지율은 24%였으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유권자 비율도 11%에 달했다. 지난주 TVBS 여론조사와 비교해 보면 라이칭더 측 3%, 커원저 측 2% 각각 하락했고, 허우요위 측의 지지율은 보합세를 보였다.
뉴스웹사이트 ETtoday가 12월 25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라이칭더-샤오메이친 지지율은 38.1%, 허우요위-자오샤오캉 지지율은 34.8%, 커원저-우신잉 지지율은 19.2%로 나타났다. 일주일 전 조사와 비교하면 라이칭더 측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다.
두 여론조사 모두 라이칭더와 허우요위 양 측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반면, 한때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커원저 측은 지속적인 하락 추세임을 확인하게 해 준다. 커원저 지지율 하락에는 지난 11월 말 실패로 마무리된 허우요위-커원저 단일화 협상의 여파도 크지만, 준비되지 못한 부총통 후보에 대한 청년 계층의 실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TVB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통·부총통 선거에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87%(반드시 투표 67%, 가급적 투표 20%)에 달했는데, 4년 전인 지난 2020년 총통·부총통 선거 투표의향 여론조사 당시(79%)보다 8% 포인트 높게 조사되었다. 투표가 확실하지 않다는 비율은 3%, 투표하지 않겠다는 10%로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지난 2020년 선거 실제 투표율(75%)을 대비해 추정해 보면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80%에 육박하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매우 높은 수치다. 대만 독립이냐 양안 간의 평화냐,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친미 노선이냐 친중 노선이냐의 갈래에서 민주진보당과 중국국민당 간의 치열한 선거전은 날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2024년 1월 13일 대만은 과연 어떠한 길을 선택할 것인가. 세계의 관심이 지금 대만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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