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보다 군사쿠데타에 취약한 한국 상황

갑작스런 계엄령 선포와 무장 군인이 투입된 가운데 진행된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결의 그리고 계엄 해제 이후 내란죄 처벌과 대통령 탄핵 추진 공방은 전세계의 이목을 한국으로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 가운데 대만에서는 한국의 계엄을 지지하는 게시물이 올라와 또 다른 논란을 빚었다. 잠시의 논란 그 뒤로는 계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과 함께 계엄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대만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계엄 발표 직후 대만 SNS에 올라온 계엄 지지글. ID 중 'ddpcausus'는 민진당 전당대회를 의미
계엄 발표 직후 대만 SNS에 올라온 계엄 지지글. ID 중 'ddpcausus'는 민진당 전당대회를 의미

‘남한 국회는 친북 세력에 의해 통제당하고 있다. 남한 대통령 윤석열은 자유로운 헌정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긴급히 전국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만 입법원은 청백 세력(국민당과 민중당 등 야당을 지칭)이 국방 예산을 삭감하고, 위헌적으로 권한을 확대하고, 대법관을 무력화시키고, 재정계획법을 악의적으로 개정하고, 연금 개혁을 후퇴시키고 … Team Taiwan이 실제로 매분, 매초, 우리 나라를 갉아먹고 있는 세계적인 어둠과 사악한 세력에 저항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12월 3일 밤, 윤석열 발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SNS의 일종인 스레드(Thread)에 올라온 글이다. 이른바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계엄 선포 명분에 동조하면서 대만의 입법원(한국 국회에 해당)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고 밝히고, 나아가 이러한 친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이 논란이 된 것은 대만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 입법원 전당대회(한국의 원내 교섭단체에 해당) 공식 계정을 통해 올라온 글이었기 때문이다.

집권 민진당 간부가 게시한 한국 계엄 지지 글

게시글은 대한민국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 처리한 12월 4일 오전 1시 1분 이후에도 1시간 가량 더 게재되며 대만 내에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다가 한국시각 새벽 2시쯤 아무런 설명 없이 블라인드 처리되었다.

당시 해당 글에 대한 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거셌다. “처음 봤을 땐 가짜 뉴스인 줄 알았다”부터 “글 올린 사람이 국민당이 아니고 민주진보당이었나?”, “(한국)윤석열보다 더 나쁜 정부가 있다”, “계엄 반대운동으로 탄생한 정당이 이제 계엄을 지지한다고 한다”, “국민당 시절 계엄령 경험을 잊은 올챙이와 같다”는 비판들이었다.

 

대만 민진당의 한국 계엄령 지지 관련 해외 보도 내용(왼쪽은 대만 연합신문에 실린 '민진당 계엄평 지지로 국제 추문' 기사, 오른쪽은 '왜 한국 계엄령 선포가 대만과 비교되는가' 제목의 뉴블룸 기사
대만 민진당의 한국 계엄령 지지 관련 해외 보도 내용(왼쪽은 대만 연합신문에 실린 '민진당 계엄평 지지로 국제 추문' 기사, 오른쪽은 '왜 한국 계엄령 선포가 대만과 비교되는가' 제목의 뉴블룸 기사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해당 게시글을 둘러싼 논란은 곧바로 해외 언론의 관심사까지 되었다. 미국의 『뉴스위크』는 12월 4일자 「대만군, 한국 계엄령 공포 이후 국민 안심시켜」 기사에서 앞선 민진당 계정 게시물을 거론하며 “일부 대만 네티즌이 야당이 합동 입법 다수당을 사용하여 논란이 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섬의 집권당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대만 프리랜서 특파원 밀리엄 양의 발언을 소개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도 같은 날 「한국 계엄령: 대만 민주진보당이 야당의 맹렬한 비난을 촉발하는 글 게재」 기사를 냈고, 터키 『아나돌루 통신사』도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대만 입법의원인 왕훙웨이(국민당)는 『연합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계엄령 선포 이후 민진당이 계엄령을 공식 지지한 최초이자 유일한 집권당이 되었다”고 비꼬기도 했다.

한국은 물론,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된 대만의 계엄지지글

정작 민진당은 해당 글을 누가 작성했는지 밝히기를 거부한 채, 해당 글에 대한 논란을 야당의 정치 공세로 치부하는 발언을 내놓아서 다시 한 번 네티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작성자로 지목된 한 젊은 입법의원은 ‘터무니없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고, 민주진보당 입법원 전당대회 우시야오 사무총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다른 나라의 내정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고만 밝혔다. 물론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도 없다는 아쉬움은 남겼지만. 그렇게 스레드 게시물은 경험 부족한 입법의원의 아무말 대잔치 정도로 일단락되었다.

이후 대만 안팎에서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계엄 지지입장이 나오게 된 배경들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해당 게시물이 첫째,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위협당하는 체제의 위기, 둘째로 여소야대의 입법기관으로 정책추진의 어려움 그리고 세번째로 계엄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의 문제 해결에 대한 긍정적 수긍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민진당은 정신을 잃고 계엄을 지지하고 민주 이념을 저버렸다'는 제목의 12월 6일자 연합시보 사설.
'민진당은 정신을 잃고 계엄을 지지하고 민주 이념을 저버렸다'는 제목의 12월 6일자 연합시보 사설.

대만 『연합시보』는 6일자 사설을 통해 한국 윤석열 정부는 야당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으며, 정부 예산 삭감과 여러 장관들의 탄핵으로 행정부를 마비시켰다고 말했는데, 대만의 라이칭더 정부도 ‘작은 정부, 큰 반대’라는 딜레마에 빠져 있고, 그 결과 행정원의 내년 일반예산과 많은 법안이 유보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상황에서 민진당은 윤석열의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에 매우 흥분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야당을 ‘종북세력’으로 연결해 야당을 ‘나라의 적’으로 만들고자 한 윤석열의 접근 방식은 그간 민진당이 ‘중국 공산당 노선에 동조’라는 낙인찍기를 통해 야당을 훼손하려는 시도와 맥을 같이하기에 민진당은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를 보고서 즉시 ‘보물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민진당이 기쁘게 주운 보물은 단 6시간 만에 냄새나는 독으로 변했다는 것이 『연합시보』의 말이다.

대만에서도 다시 계엄령이 일어날 것인가?

이 짧은 시간, 대만 사회에서는 38년간의 계엄령 트라우마에 대한 불안감도 나타났는데, 바로 ‘대만이 다시 계엄령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사실, 계엄령에 대한 대만의 기억은 한국 못지않게 부정적이다.

한국의 1980년 광주민주항쟁에 종종 비견되는 대만의 1949년 2·28사건 이후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은 대만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 계엄령은 1987년까지 무려 38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그런 까닭에 대만의 계엄령 발동 요건은 한국에 비해 더욱 엄격하다. 먼저 대만 총통은 스스로 계엄령을 선포할 권한이 없다. 절차 상 입법부의 승인·비준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 발동 요건에 있어서도 아주 까다롭다. ‘전쟁이나 반란’ 경우에만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야당의 보이콧과 반대가 비록 헌법을 훼손하고 정부를 교란하더라도 계엄령의 요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입법의원이 이러한 게시물을 올렸을까.

 

1986년 '519계엄취소녹색행동' 연좌시위 장면. 이후 이 운동은 현 집권 민진당의 근간이 되었다.
1986년 '519계엄취소녹색행동' 연좌시위 장면. 이후 이 운동은 현 집권 민진당의 근간이 되었다.

대만 징이대학교 법학과 왕딩춘 강사는 대만 내에 계엄령 지지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과거 권위주의의 유령이 여전히 대만에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대만 민주주의가 아직도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는 과도기적 성향이라는 지적이다.

대만 문화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연구자인 자오젠민 겸임교수는 “대만과 한국이 제3차 국가 발전의 물결과 중국 본토에서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 몇 안 되는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대만에서 다시 계엄령이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자오젠민의 분석에 따르면 대만과 한국이 비슷한 발전 맥락을 갖고 있지만 경제 발전과 권위주의 체제라는 두 틀에서 시스템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지적했다. 중소기업이 주도한 대만의 경제발전과 달리 재벌 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날로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불안정한 역동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 또한 차이를 보였는데, 대만은 장개석 가문이 통치한 '정치적 권위주의'로 분류한다면 한국은 지속적인 군사 쿠데타에 기인한 '군사 권위주의'로서, 사회·경제적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군사 개입에 ‘더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군사권위주의의 시작이 된 5.16 쿠데타와 10.26 계엄 (사진자료_민주화기념사업회).
한국 군사권위주의의 시작이 된 5.16 쿠데타와 10.26 계엄 (사진자료_민주화기념사업회).

싱가포르 국제문제연구소 후이샨 수석연구원은 과거 『미국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체제의 성장은 실제로 여전히 매우 취약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선진국이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퇴행이 가능하기에, 권력 분립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장기적 불안정성으로 인한 군사 개입에 더 좋은 토양….

지난 3일 밤, 민주주의의 어둠을 보았고, 곧이어 이겨낼 희망도 발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여전히 취약하고, 다시는 퇴행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지금 눈 부릅뜨고 지켜내야 할 것이다. 계엄령 선포 만 사흘이 지나가는 시점, 1600킬로미터 떨어진 타이페이에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