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운동 진압의 역효과가 아직도 이어져

민진당 친미보수? 국민당 반미진보? 사실과 달라

장개석 일당독재의 후예가 '친중' 된 역사의 변증법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인권'도 위선적인 허구

민주주의, 평화, 복지, 성평등의 실질 성과가 중요

2024년은 ‘선거의 해’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 대선, 한국 총선 등 중요한 선거가 많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이고 동아시아 지정학에도 큰 영향을 미칠 대만 총통 선거에서 결국 민진당(민주진보당)이 승리했다.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는 558만 표(40.05%),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467만 표(33.49%),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는 369만 표(26.46%)를 얻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5년 전에 중국 정부가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밟은 결과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국에 맞서는 이미지가 강하고 중국이 매우 싫어한 후보인 라이칭더가 더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포기는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하며 계속 대만 주변에 군함을 보내고, 선거 당일에도 주변 하늘에 군용기를 띄우며 압박한 것이 낳은 역효과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보수적 족벌언론들이 민진당의 승리를 반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민진당의 승리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시민들에게 다행으로 느껴질 측면들이 있다. 민진당은 대만의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계승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 투쟁 덕분에 대만에서 1996년부터 일당독재가 종식되고 총통 직선제가 가능해졌다. 그 투쟁을 주도했던 민진당은 기본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복지국가, 노동권 등을 강조해 왔다.

반면 국민당은 오랫동안 대만을 지배해 온 일당독재의 후예들이다.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이후에 대만으로 쫓겨난 장개석 군대와 세력에 뿌리가 있고, 특히 1947년 2.28 사건 때 본성인(대만 원주민) 수만 명을 학살한 세력의 후예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탈색과 변화 과정이 있긴 했지만, 지금도 국민당은 민주주의, 사회복지, 노동권보다는 경제 발전과 국가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는 보수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당선된 민진당의 라이칭더(왼쪽) 후보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당선확정 뒤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4.1.13. UPI 연합뉴스.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당선된 민진당의 라이칭더(왼쪽) 후보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가 당선확정 뒤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2024.1.13. UPI 연합뉴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의 ‘민주냐 독재냐’라는 구호가 국민당의 ‘전쟁이냐 평화냐’보다 좀 더 큰 호소력을 나타냈다. ‘민진당이나 국민당이나 다를 게 없는 기득권 양당일 뿐이다’라는 주장은 이런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인데, 민중당이 바로 이런 입장이다. 민중당 후보인 커원저는 실제 의사 출신이기도 해서, 일부에서는 ‘대만의 안철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중당은 양당 체제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나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생’이라며 등장한 중도적 실리주의 정당이다. 청년들의 정치 혐오를 부추기며 ‘제3세력’을 말하면서도 국민당과 선거 연합을 시도한 것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는 중도우파적이고 국민당과 좀 더 가깝다. 실제로 민중당과 국민당의 지지기반은 겹쳐있고, 이번에도 민중당으로 지지가 분산되면서 국민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요인이 됐다.

중국 공산당과 전쟁까지 했던 국민당이 오늘날 ‘친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된 것은 아이러니한 역사의 변증법이다. 내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한 후 대만으로 쫓겨가 본토 회복을 말하던 국민당은 오늘날 막강한 세계적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힘을 인정하고 협력하고 싶어 한다.

특히 시장 개혁 과정에서 대만의 상층 권력자와 대자본들은 중국 국가나 공산당과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발전시켰다. 민주주의보다는 독재와 권위주의에 친화적이라는 점도 양쪽의 ‘화해’를 추동한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한국과는 달리 대만의 보수적 족벌언론들은 대체로 민진당이 아니라 국민당과 더 가깝고 ‘친미’가 아니라 ‘친중’적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도 현재의 대만 시민들의 민주주의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더 눈엣가시로 여긴다. 따라서 국민당이 말하는 ‘평화’는 중국의 독재적 권력에 ‘타협하고 협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쟁과 침략을 위협하는 강대국에 맞서서 반전 평화를 위해 투쟁한다는 의미하고는 거리가 멀다. 대만의 시민들에게는 전쟁과 침략을 위협하는 강대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인데, 국민당은 중국의 위협에 굴종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대만과 중국 관계에 대한 많은 진보좌파들의 판단이 복잡해지는 이유다. 일반적으로도, 글로벌 남반구에서는 더더욱 ‘친미’는 진보적이기 어렵다. 미국은 제국주의 최강대국이고 역사적으로 제삼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하거나 폭격하고, 군부독재나 쿠데타를 후원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대학살을 돕고 있고 예멘을 폭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그런데 대만에서 민진당은 ‘친미’이고 국민당이 ‘친중’으로 분류된다.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당선이 확정되자 환호하는 타이베이의 민진당 지지자들. 2024. 1.13. AP 연합뉴스.
13일 실시된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 당선이 확정되자 환호하는 타이베이의 민진당 지지자들. 2024. 1.13. AP 연합뉴스.

그렇다고 대만에서 국민당이 민진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정치세력인가? 앞에서 봤듯이 그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은 중국이 비록 제국주의 최강대국은 아니지만,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유지하면서 다국적 기업과 협력해 노동자의 권리를 억누르고 성장한 유력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오늘날 제국주의 질서의 새롭게 떠오르는 도전자로서 미국의 지위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 국가와 지배권력은 자국 내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들뿐 아니라 홍콩의 민주화 운동도 폭력으로 짓밟았다. 이어서 대만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대만 시민들에게 ‘친중’이 진보적인 의미로 다가올 수 없는 이유가 되고 있다. 홍콩 출신 좌파 학자인 홍호펑도 ‘중국 지배계급은 특히 대만의 민주주의가 홍콩과 중국 본토에까지 반독재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키울까 봐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민진당의 ‘친미’를 좋게 볼 수만은 없고 그것이 부를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단순히 ‘친미 보수 우파’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물론 미국이 대만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정말 관심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던 미국이 지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지하고 돕는 것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사실 지난 30년간 미국과 중국이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 속에서 서로 사이좋게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과실을 나눠 먹는 동안에는 중국의 ‘권위주의와 독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급성장이 이제 자신들의 패권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면서 동맹을 구축하는 핑계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웠고, 그것을 지속해서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 최첨단 무기들을 배치하고 동맹국들과 함께 수시로 군사 훈련과 전쟁 연습을 하고, 중국의 반작용을 유도해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이 지역의 불안정과 전쟁 위험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이러한 미국의 행태도 대만 시민들이 바라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민진당은 더 이상 일당독재에 맞서던 진보적 야당이 아니다. 세 번이나 집권해 본 세력으로서 오늘날 대만의 양대 정당 중에 하나다. 여러모로 대만의 역사나 민진당의 성격은 한국의 민주당과 비슷한 점이 많다.(반대로 국민당은 국민의힘과 비슷) 둘 다 민주화 운동에 뿌리가 있고, 자유주의적 개혁 정당이면서 집권 이후에 개혁의 지지부진과 부패 스캔들 등으로 많은 실망을 낳았다. 민진당 집권 동안에 시민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불평등도 커졌다.

 

민진당 지지자들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무지개 모양의 깃발을 들고 있다 - 13일 대만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타이베이/AFP 연합뉴스.
민진당 지지자들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상징하는 무지개 모양의 깃발을 들고 있다 - 13일 대만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앞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타이베이/AFP 연합뉴스.

다만 민진당이 한국 민주당보다 더 나은 점은 차별금지법과 동성 결혼 등에 대한 대응이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 점에서 민진당은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새로운 세대의 요구를 받아안으며 지지기반을 넓혔고, 그것이 이번 승리에도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것은 대만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 결혼을 요구하는 아래로부터 운동이 낳은 성과였다.

이번에 국회에서는 국민당 52석, 민진당 51석, 민중당 8석으로 여소야대가 됐다. 사실,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걱정하고 있지만, 아직 큰 우위에 있기에 당장 전쟁을 하면서까지 중국과 대립할 생각이 없다. 중국도 힘을 키워서 미국을 넘어서는 것이 우선이지 대만을 침공하면서 미국과 정면 대결할 정도로 무모하지 않다. 민진당과 국민당도 ‘통일’이나, 그 반대로 ‘독립’을 하자는 게 아니라 결국은 ‘현상 유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진당이 미국 바이든 정부나, 일본 기시다 정부와 손잡고 중국과 대결하는 데 치중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 사회복지와 일자리, 성평등을 위한 실질적 개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중국과 대립보다 협력’을 주장하는 국민당과 ‘민생이 더 중요하다’는 민중당이 그 공백을 이용해 성장하면서 권력을 빼앗아 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은 한국의 민주진보 세력에게도 비슷하고 마찬가지일 수 있다. 당장은 대만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일당독재의 계승자이고, 민간인 학살의 후예이고, 민주주의보다는 국가경쟁력을 우선하고, 성소수자의 권리에 무관심하고, 족벌언론의 지지를 받고 있고, 외부 강대국의 군사적 위협과 군사훈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보수 우파 세력, 즉 국민의힘이 패배할 것인지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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