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선택 뒤에 남은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거부하면서 자초한 비극
피해자 중심주의 말하던 국힘의 노골적 내로남불
성폭력 사건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던 태도만 남아
공동체 책임 반성하며 사과하고 피해자 보호해야
생명이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사실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잘못을 많이 한 악한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던 부모나 자식, 형제·자매나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장제원 전 의원의 죽음을 누구도 쉽게 조롱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다.
죽음 앞에서는, 그것을 슬퍼하는 주변 사람들 앞에서는, 누구든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이 무책임하고 유감스러운 선택이라는 평가와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장 전 의원은 끝까지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고 떠났고,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뿐 아니라 새로운 트라우마까지 남겨주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이것은 결코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서 증언에 나선 피해자의 탓이 아니다.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통해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준 장 전 의원이 스스로 불러온 결과이다. 그는 결코 잘못을 바로잡지 않았고 피해자는 9년이 넘게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가 이번에 고발에 나섰을 때가 잘못을 바로잡을 또 다른 기회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처벌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와 호텔에 간 적 자체가 없다'라는 거짓말로 대응했고, '이제 와서 고소를 제기한 데는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음모론으로 피해 가려 했다. 언론 보도와 비판에 법적 대응을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일종의 '꽃뱀'으로 몰리며 의심받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매도당하던 피해자는 구체적인 증언과 증거들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 해바라기센터 상담 기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감정서, 피해자가 사건 당시에 촬영한 호텔 방 영상들이다. 특히 성폭력 당시 영상은 결정적이었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그는 또다시 반성과 사과를 거부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족벌 사학재단의 후손으로 태어나 돈과 권력을 누리다가, 윤석열 정권의 핵심 실세에까지 올라가서 <뉴스타파> 같은 비판 언론에게 "국기 문란", "가짜뉴스"라면서 "폐간"과 "패가망신"까지 협박하던 사람의 비극적이고 서글픈 마지막이었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장 전 의원과 국민의힘이 과거 민주당 소속의 자치 단체장들이 책임 있는 성폭력 사건들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장 강력하고 신랄한 비난을 쏟아내 왔다는 사실에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지도부가 조금이라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모조리 '피해자 중심주의가 사라진 2차 가해'라고 매도했었다.
장 전 의원 자신도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금수만도 못한 짓"을 했다고 비난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방송에 출연해서 "피해자는 영원히 억울함을 풀 길이 없어졌다"라면서 민주당을 향해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상 규명에 앞장서야 한다"라고 압박했다. 그러더니 막상 자신들 스스로가 저지른 성폭력이 문제가 되자 태도가 돌변한 셈이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5년이나 있었는데, 그때는 왜 참고 계셨는지 모르겠다"라며 피해자를 공격했다. 장 전 의원의 비극적 선택 이후에는 윤석열, 권영세, 권성동, 오세훈 등 국민의힘 최고 지도자들과 지도부가 나서서 조문과 조의를 표하고 있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당시에 국민의힘이 보였던 태도와 상반된다.
"누구보다 열심히 온 힘을 다해서 나를 도왔던 사람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윤석열), "제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장제원은 재능 있고 의리 있는 정치인이다. 비난보다는 고인의 명복을 빌어달라"(하태경) 등의 발언들이 이어졌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지원하려는 조치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가 문제였지만, 적어도 진상이 밝혀지고 나서는 당 차원에서 공식적 사과를 했던 민주당보다도 더욱 더 문제적이고 전혀 피해자 중심주의를 찾아볼 수가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국민의힘에게서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을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태도만 찾아볼 수 있다.
민주당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에서 보인 적극적이고 선정적인 접근과 달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전하는데 소극적인 족벌언론들의 취재와 보도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이러니 국민의힘과 족벌언론 같은 기득권 우파 진영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상대적으로 적은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결코 보호받을 수 없다는 공포 속에 침묵을 택하게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들 간의 문제를 넘어서서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봐야 한다. 단지 가해자 개개인만을 비난하고 도려내거나 꼬리 자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가부장적 남성성을 부추기는 사회적 구조와 공동체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가해와 피해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우리는 책임이 없고 가해자가 사망했으니 공소권도 사라졌다'라는 식으로 이 넘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당 차원에서 사과하며 진상 규명에 앞장서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여성혐오를 부추기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던 시도도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가 겪고 있을 이중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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