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잔혹극의 전말] ⑨시리즈를 마치며

2000년대 초 전국 뒤흔든 백궁·정자 특혜 의혹

이재명 변호사 활약상 사설까지 쓰며 상세 보도

정치인 돼서도 원가 공개, 기획 부동산 척결 앞장

대장동 잔혹극, 기득권에 대한 저항 끝나야 종료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백궁·정자지구 쇼핑부지 용도변경 특혜의혹 관련 MBC 뉴스에 나온 30대의 이재명 변호사. 방송 화면 갈무리
백궁·정자지구 쇼핑부지 용도변경 특혜의혹 관련 MBC 뉴스에 나온 30대의 이재명 변호사. 방송 화면 갈무리

나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로서 그동안 ‘대장동 잔혹극의 전말’ 시리즈를 통해 대장동과 관련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럼 의문이 하나 남는다. 조선일보와 기득권의 주장처럼 이재명은 ‘토건 악당’이거나 토건 악당의 비호 세력인가? 영화 ‘아수라’의 황정민처럼 겉은 건실한 정치인이지만 알고 보면 어둠 뒤의 괴물인가? 과거 '이재명 변호사'의 행적을 조선일보의 보도를 통해 살펴보자.

조선일보와 이재명의 악연이 시작된 계기는 토건 비리 사건이다. 하지만 대장동 의혹 제기와 다르게 조선일보는 ‘토건 비리의 수괴 이재명’이 아닌 거악과 싸우는 30대 젊은 변호사로 주목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10월 19일 조선일보 기사에 이재명이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성남시 분당구의 ‘백궁·정자지구 쇼핑부지 용도변경 특혜의혹’(통상 ‘분당 파크뷰 불법 분양 사건’으로 불림)의 주민 반응을 소개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분당 주민들 불만 목소리 높다…부당한 개발로 쾌적한 생활환경 망친다>이다.

용도변경 특혜의혹이 다시 불거지면서 분당 신도시 주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이들은 “분당이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며 “무분별한 도시계획으로 주거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삶의 질을 지켜야 할 성남시가 앞장서 특혜의혹에 휩싸이고 있다며 시장 퇴진운동 등 집단 행동까지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남시 주민들로 구성된 ‘부당 용도변경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19일 백궁·정자지구 쇼핑부지 용도변경과 관련, 검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김병량 성남시장에 대한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공동집행위원장은 “성남시가 시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던 지역개발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는 바람에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시장 등 행정 당국이 이제 주민들에 대해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중략)

조선일보는 이틀 뒤인 2001년 10월 21일 ‘분당 백궁 쇼핑부지 용적률 50% 높여줬다’는 기사를 통해 특혜 논란을 보다 자세하게 다뤘다. 기사는 “성남시가 문제의 H개발에 당초 가이드라인보다 무려 50% 이상의 용적률을 더 허용해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는데, 기사의 근거 자료의 출처가 성남시민모임이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성남시민모임의 공동 대표가 이재명 변호사였다.

성남시민모임 이재명 변호사는 “쇼핑부지를 주상복합건물로, 다시 사실상 아파트단지로 조성케 한 것도 특혜인데, 여기다가 용적률과 건물 높이까지 높여줬다”며 “H개발은 연면적 1만6893평, 금액(분양대금)으론 1385억 원의 추가 이득을 각각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10월 22일에는 성남시민모임이 용도변경 특혜 의혹뿐 아니라 백궁·정자지구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들이 불법 특혜 분양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실렸다. 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지금의 분당 파크뷰이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으로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의 본질은 아파트가 있는 백궁·정자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토건 비리다. 토지의 용도 변경 과정에서 당시 유력 인사들이 개입됐고 비리를 주도한 세력이 큰 이득을 얻었다. 1999년부터 성남시민모임을 중심으로 비리 의혹을 제기했고, 2002년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고위 공무원과 판검사, 국가정보원 직원 등 130여 명이 특혜 분양을 받았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동아일보가 특혜 분양 리스트에 당시 정권 실세 중 한 명인 김옥두 의원 등 전·현직 국회의원 6명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관련 사설까지 게재하며 이 의혹을 크게 다뤘다. 사설은 토지 용도 변경 과정에 문제가 있는 전형적인 토건 비리라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사설에도 이재명 변호사가 등장했다.

분당 파크뷰 아파트 의혹의 본질은 특혜분양 이전에 아파트 부지 용도변경 과정에 있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용도변경을 둘러싸고 그간 언론과 시민단체의 숱한 의문제기가 있었으나 검찰은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좀처럼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 같은 의혹을 뒷받침할 녹음테이프까지 나온 만큼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지체 없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중략)

성남시민모임 이재명 변호사가 어제 공개한 김병량 성남시장의 전화 녹음테이프에는 이 의혹에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검찰간부, 청와대 고위인사가 연루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에 충분한 대화들이 다수 들어있다. 아파트건설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휴가까지 줘가며 시장 선거운동을 하게 했다는 얘기, 건설사 대표와 시장과 검찰 간부가 함께 골프를 즐긴 얘기, 청와대 비서관이 주말에 건설사 대표 집에 들를 예정이니 인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 등등이 모두 진한 냄새를 풍긴다.

 

백궁·정자지구 의혹과 관련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이재명. 인터넷 갈무리
백궁·정자지구 의혹과 관련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이재명. 인터넷 갈무리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 의혹으로 이재명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핵심 정보원은 이재명 변호사였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은 찾아온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신문과 방송에 이재명의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다. 30대 젊은 변호사가 정권 핵심이 연루됐다고 의심되는 거대 비리의 폭로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재명은 이 사건으로 전과자가 됐다. 언론과의 공조 과정에서 검사를 사칭했다는 죄목이었다. 이재명은 이 사건으로 전국적 인지도라는 ‘명성’과 검사를 사칭한 전과자라는 ‘오명’을 동시에 얻었다. 이재명의 ‘웹자서전’에는 그 전말이 공개돼 있다.

이재명은 사건의 심층보도를 준비하는 KBS ‘추적 60분’ 팀의 취재와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 도중 전에 수차례 검찰을 사칭해 김병량 성남 시장 비서진과 통화하며 시장과의 연결을 요청한 KBS 피디에게 시장으로부터 통화하자는 음성메시지가 왔다. 성남 시장은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의 최종 인허가권자로 의혹의 한 가운데 있는 인물이었다. 시장에게 전화한 피디는 자신이 파크뷰 사건 담당 검사라며 솔직하게 전모를 털어놓으라고 종용했다. 그러자 시장은 내막을 털어놓았고 취재진은 통화를 녹취했다.

며칠 후 녹취가 추적 60분에 나갔지만 반향이 없었다. 이재명은 피디에게 부탁해 녹취파일을 받아 기자회견장에서 이를 공개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녹취가 공개되자 성남 시장은 피디의 검사 사칭 배후로 이재명을 지목했다. 검찰은 이재명을 공범으로 기소했고 결국 그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반면 검사를 사칭한 피디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당시의 게이트 사건들처럼 백궁·정자지구 게이트도 권력 핵심을 처벌하지 못했다. 김병량 성남 시장은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이름이 거론된 여권 핵심 의원과 관련된 의혹은 검찰이 수사 본류가 아니라고 봐서 흐지부지됐다. 결국 거대 비리를 파헤친 인권 변호사만 범법자가 됐다.

건설 원가 공개, 공공 개발 이익 환원

토지 개발과 건설 사업은 한국 경제 발전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갖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것도 사실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정치 세력과의 결탁 등으로 개발 이익을 독점한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국민은 한정된 공유 자산인 토지의 개발 이익에서 소외됐고 소수가 혜택을 독점했다. 선진국인 한국에서 이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재명이 토건 비리 근절에 매달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8년 9월 11일 더불어민주당과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이재명은 부동산투기와 경제문제 해결 방안으로 국토보유세 신설과 공동주택 분양수익 환수를 통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구체적인 정책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이재명은 이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부동산투기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줄이고, 그 이익을 환수해 국민의 이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구체적 방안으로 모든 토지에 공개념을 도입해 보유세를 부과하고 이를 국민에게 100% 돌려주는 기본소득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재명은 “공동주택 분양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공공이 환수해 기금을 만들고 이 재원을 장기 공공임대 주택을 짓는 데 사용하도록 제도화하면 모두가 행복한 부동산정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획부동산 척결에도 나섰다. 기획부동산은 개발이 어려운 토지나 임야에 대해 이득을 얻을 것처럼 광고하고 투자자들을 모집한 후 이를 잘게 쪼개 판매하는, 지분 판매 방식으로 이익을 얻는 부동산업자들이다.

경기도는 2019년 6월 1일~8월 30일 기획부동산을 대상으로 공인중개사법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집중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4466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과태료 5억 500만원을 부과했다.

부동산 개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건설 원가도 공개했다. 2018년 9월 3일 경기도시공사는 홈페이지에 건설공사원가 정보공개방을 열어 2015년 이후 공사에서 발주한 계약금액 10억 원 이상 건설공사 원가를 공개했다. 공개 대상 공사 건수는 일반 공사 49건, 공공주택사업 9건(행복주택 8건, 영구임대주택 1건) 등 모두 58건이다.

건설사들은 반발했지만 경제정의실천연합은 논평을 내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경실련은 원가 공개가 “공공건설 계약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착취구조 및 부정부패 해소를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며 “업계 민원 해결을 위해 공사비 인상을 추진하는 중앙정부와 공기업, 타 지자체, 국회도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공공개발 이익 환수의 제도화를 위한 법률 개정에 나섰다. 이 결과 2019년 9월 ‘개발이익환수법’ ‘택지개발 촉진법’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대선 과정에서 대장동 논란이 불거지자 2021년 12월 이른바 ‘대장동 방지법’ 3개 법안 중 도시개발법과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도시개발법 개정안에는 민간 참여 개발사업에서 민간 이윤율을 정부 시행령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주택법 개정안은 민관 합작 도시개발사업 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공공 토지 개발 이익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대장동 사태의 핵심 해법인 ‘개발이익환수법’은 아직 통과됐다는 소식이 없다.

대장동 의혹으로 이재명은 끝모를 사법 탄압을 받고 있다. 대장동 잔혹극은 이재명이 다음 대선에 이겨 대통령이 돼서도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그가 대통령에서 내려온 순간 다시 공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대장동 잔혹극을 끝낼 생각이 없듯이 나도 잔혹극에 대한 대응을 끝낼 생각이 없다. ‘대장동 잔혹극의 전말’에 이어 ‘이재명 죽이기의 전말’이 이어질 것이다. 내가 못하면 다른 이들이 전말을 파헤칠 것이다. <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