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제도 개선 때까지 공매도 금지”

외국인 자금 이탈·증시 거품 위험성 커져

핵심 가치로 내세웠던 ‘시장경제’와 모순

“무분별한 관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을 언급하며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공매도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밝힌 말인데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공매도 금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파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2023.11.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2023.11.14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공매도 금지 기간이 길어지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뿐 아니라 기업 가치로 주가가 결정되는 시장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도 불리하다. 공매도는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하고 나중에 그 주식을 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빌린 주식을 싸게 사서 갚을 수 있어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공매도 물량이 몰리면 주가 하락이 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법 공매도는 이런 허점을 노려 부당 이익을 챙기는 범죄 행위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투자자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를 아예 금지해야 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공매도는 시장을 활성화하고 주가의 거품을 제거하는 순기능도 있다. 정부가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를 공매도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시장의 필요성 때문이다. 시장조성자와 유동성공급자는 거래가 부진한 종목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공매도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의 공매도까지 금지하면 시장에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공매도는 과열 종목을 식히는 기능도 있다. 주식시장은 정보 비대칭으로 기업 가치에 비해 고평가돼 비정상적으로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에 몰리는 일이 빈번하다. 이럴 때 개인투자자보다 많은 정보를 보유한 기관투자자는 공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거품을 제거하고 가격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과열된 종목의 거품을 제거하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잘못된 정보를 듣고 묻지마 투자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과거 공매도 금지 전면 금지 사례. 연합뉴스
  과거 공매도 금지 전면 금지 사례.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식 수탁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은행(SSBT)은 지난달 세계 주요 기관투자자들에게 한국 주식 전산 대여 서비스를 내년부터 제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SSBT는 증권 자산이 약 40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수탁은행이다. 투자자들의 주식을 보관하거나 다른 금융사에 빌려주는 업무를 수행하며 수수료를 받는다. 공매도 투자자들도 이 은행의 주요 고객이다. 시장에서는 한국 정부의 공매도 규제 강화 움직임에 SSBT가 선제 대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게 사실이면 SSBT 서비스 중단은 외국인 자본이 한국 증시를 이탈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팬데믹 등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시장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삼성증권이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3월 공매도 금지 후 투자자별 자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공매도 금지 후 약 3개월 동안 개인투자자는 순매수를 기록했으나 외국인 투자자는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기관, 개인투자자와 함께 국내 증시를 지탱하는 3대 기둥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장기적으로 증시에 악재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개인투자자 비중도 높아 (공매도 금지)가 장기적으로는 우리 증권시장 경쟁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길이라 판단한다”고 했는데 희망사항이 될 확률이 높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시장적 주장이기 때문이다.

공매도 금지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국내외 경제 전망이 불투명한데도 자금이 증시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 후 한 주간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이 3조5000억 원 증가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늘고 있다. 공매도 금지로 증시가 과열돼 거품이 낄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징후다. 주가가 급락하면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금리가 뛰고 있는데도 집값을 띄우려고 부동산 규제를 풀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과 같은 정책 헛발질이 주식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2.5.10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22.5.10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와 시장경제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민간은행의 금리 결정에 관여하는가 하면 고물가를 이유로 기업의 가격 결정에도 수시로 간섭하고 있다. 그러더니 이번엔 시장경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증시까지 관치의 손길을 뻗쳤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고 시장경제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시장이 실패하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 정책은 시장의 효율성과 공공성을 모두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당장 인기를 얻겠다고 여론에 편승해 잘못된 정책을 펼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공매도 금지도 마찬가지다.  그 파장을 과소평가한 정책 실패의 최대 피해자는 개인투자자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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