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유대인, 농부 사살…팔'사망자 8000명

"중동, 이스라엘 통제할 미국 능력‧의지에 달려"

이스라엘 일방 지지 바이든에 아랍 분노 임계점

아랍‧중동국들, 지상 침공 이스라엘 일제히 규탄

에르도안 "전쟁범죄"…라이시 "레드라인 넘어"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를 묵살한 채 하마스 섬멸을 구실로 '2차 독립전쟁'을 선언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본격적인 지상 작전, 이른바 '전쟁 2단계'에 돌입했다. 이스라엘군은 23일째 전면 봉쇄된 가자 지구에 무차별 공습을 지속하는 동시에, 탱크와 보병, 공병부대 등 지상군 병력을 대폭 증강하면서 가자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이에 따라 취약한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연일 속출하고 있다. 29일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29일 현재 8000명을 넘어섰다. 더욱이 이스라엘군이 대대적 공습을 위해 최후통첩성 "즉시 대피" 명령을 내림으로써 상상을 넘는 대참극을 예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 북부 지역을 이스라엘군이 포격한 뒤 화염이 치솟고 있다.  2023 10.29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 북부 지역을 이스라엘군이 포격한 뒤 화염이 치솟고 있다.  2023 10.29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즉시 대피" 통첩…팔'사망자 8000명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8일 밤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번째 단계의 목표는 분명하다. 하마스의 통치와 군사력을 파괴하고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이튿날인 29일 이스라엘군(IDF)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매우 긴급한 요구"라면서 가자 주민의 즉시 남쪽 대피를 재차 요구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피란민과 환자가 가득한 가자 내 알쿠드스 병원 바로 옆을 3차례나 공습했다. 또한 IDF 지상군은 대전차 유도탄 진지와 관측소 등 하마스 기반 시설 타격도 지속하면서 이스라엘 남부 지킴 마을 인근에서 하마스 무장대원 다수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하마스도 "침략군을 맞아 기관총과 대전차 무기로 격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전날 완전히 끊겼던 가자지구의 인터넷과 모바일 등 통신 서비스는 이날 새벽 복구 중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도 무법천지로 바뀌고 있다. 무장한 일부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하거나 감금한 채 고문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일을 대낮에 버젓이 저지르고 있으나 속수무책인 상태다. AP 통신에 따르면, 29일 서안의 나블루스 인근 마을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유대인 정착민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 남성은 부인과 네 어린 자녀와 함께 밭에서 올리브를 수확하던 중 일군의 유대인 정착민이 공격해와 피신하려 했으나 그중 한 명이 이 남성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이로써 지난 7일 이후 서안에서 유대인 정착민에 의해 살해된 팔레스타인 주민은 7명으로 늘었다.

 

수천 명의 시민이 29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스라엘과의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형 펼침막에는 아랍어로 "모로코에서 예루살렘까지 우리 모두는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씌여 있다. 2023 10.29  [AP=연합뉴스]
수천 명의 시민이 29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스라엘과의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형 펼침막에는 아랍어로 "모로코에서 예루살렘까지 우리 모두는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씌여 있다. 2023 10.29  [AP=연합뉴스]

아랍‧중동국들, 지상 침공 이스라엘 일제히 규탄

아랍‧이슬람권의 반발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AP와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은 28일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이 어제 유엔 결의에 추가 폭격과 파괴로 응답했다"고 규탄한 뒤, 아랍연맹에 긴급 정상회담 소집을 요구하고 이스라엘의 '침략'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유엔 회원국들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 총회를 열어 요르단 주도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촉구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 섬멸을 위해 "현시점에 인도주의적 중지든 휴전이든 반대한다"며 지상전을 강행하고 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오만 등이 일제히 외교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지상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주민이 생명의 위협과 비인간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면서 "어떤 지상 공격도 규탄한다"고 했고, UAE도 "민간인들이 표적이 되지 않도록" 즉각 휴전을 촉구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유엔 총회의 결의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고, 오만은 이스라엘의 가자 봉쇄와 폭격이 "전쟁 범죄 수준"이라면서 지상 침공은 "심각한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이스탄불에서 열린 대규모 친팔레스타인 집회에 참석해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유엔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구테흐스 총장은 29일 네팔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2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 피난처, 의료서비스의 접근이 차단된 채 끊임없는 폭격에 노출돼 있다. 가자 상황은 시시각각 더 절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 지지를 받는 인도적인 전투 중단 대신 군사작전을 강화한 것은 유감"이라면서 양측에 즉각 휴전과 무조건적 인질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0일 오후 뉴욕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가자 상황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그동안 자위권 보장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을 전폭 지지해왔던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주요국들은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일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일시 교전 중지를 요청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7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진행된 팔레스타인인 지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인도 국기를 태우고 있다. 2023. 10.27 [EPA=연합뉴스]
27일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진행된 팔레스타인인 지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 인도 국기를 태우고 있다. 2023. 10.27 [EPA=연합뉴스]

이스라엘 일방 지지 바이든, 아랍 분노 임계점

그동안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해온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3일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완전 봉쇄와 무차별적 공습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제노사이드' 위기에 처했는데도 바이든 행정부는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권만 운운했을 뿐 팔레스타인이 겪는 참극은 사실상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5일 가자지구 보건부의 사망자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함으로써 아랍‧이슬람권은 물론, 미국 내 무슬림‧아랍계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에 이르렀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대선 때 바이든을 지지했으나 내년 대선엔 지지 철회도 불사할 태세다.

국제사회의 시선이 싸늘하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보장을 지지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9일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민간인 방패 전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도 "국제인도법에 따라 테러리스트와 민간인을 구분해야 할 이스라엘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가자지구의 압도적 다수는 생명이 보호돼야 하는 무고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설리번은 이스라엘의 공격이 '무차별적'인지 묻는 말에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매시간 이스라엘군과 정부는 적법한 군사적 목표물인 테러리스트와 그렇지 않은 민간인을 구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안으로 네타냐후와 통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인질들이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인 (교전) 중지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인질 석방 협상 기간 중 교전 일시 중지를 이스라엘에 촉구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와 관련해 하마스는 억류 인질 200여명과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교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네타냐후가 미국의 말도 듣지 않고 '마이웨이'를 외치며 사태를 극단으로 끌고 가는 점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의 회담 중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상의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EPA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의 회담 중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상의하고 있다. 이날 회담 후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에 대해 가자지구 내 테러그룹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2023.10.19. EPA 연합뉴스

"중동, 이스라엘 통제할 미국의 능력‧의지에 달려"

이란의 반응도 격해지고 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시오니스트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 이것이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더 악화될 경우 미국의 잇단 경고에도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정부군과 민병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의 본격 참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라이시 대통령은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 전방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설리번은 "위험은 현실이며 높은 경계 상태에 있다"며 "이란은 우리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며 전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역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 국방장관이 30일 방미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설리번  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과 만나 팔레스타인 상황을 논의한다.

아랍조사정책연구센터(ACRPS)의 마르완 카발란 국장은 28일 자 알자지라 기고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중동의 역학 변화를 촉발했다"며 "그 변화의 범위는 이스라엘을 통제할 미국의 능력과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 정부에 압력을 넣어 가자에서의 전쟁을 중지시키고 봉쇄를 해제하고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지 못한다면 (중동) 전 지역은 결국 화염에 휩싸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어 카발란은 "그 충돌이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로 확대되고 나머지 아랍 세계 전역의 대격변을 촉발할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미국의 지역 동맹들이 타격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훨씬 더 깊이 개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놓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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