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역사학자'에서 윤 정부 국교위 위원장으로

"뉴라이트 아니다" 부인하지만 지나온 행적 보니…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2022.9.27.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2022.9.27. 연합뉴스

“평소 국민을 사랑하고 두려운 줄 아는 애민정신이, 진정한 국가지도자상임을 강조해온 그의 가치관이 윤석열 정부와 지향점이 일치한다.”

지난해 3월 24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이화여대 총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역사학자 이배용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하면서 한 말이다.

당시 한겨레신문은 “윤 당선자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인물을 특별고문이라는 상징적 자리에 앉히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시도된 ‘역사적 퇴행’이 새 정부에서 재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자는 각계각층의 여론을 살피는 창구 등 역할로 특별고문을 활용했다. 윤 당선자는 이미 그 자리에 최근 방통위원장에 임명한 이동관, 전 중앙일보 부사장 박보균 등을 앉혀놓고 있었다.

뉴라이트가 ‘백년지대계’ 책임질 국교위 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27일 다시 이배용을 장관급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위원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그에게 임명장을 주며 “어려운 일을 맡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덕담을 건넸다.

국교위 위원장 자리는 허튼 자리가 아니었다. 이배용 임명 약 70일 전인 7월 21일 신설된 ‘국가교육위원회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조정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국교위 홈페이지 ‘기관 소개’)였기 때문이다.

다시 이배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에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교육자를 앉혔다’는 비판과 우려였다. 이배용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며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추진 주역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다. 언론은 이배용에게 뉴라이트라는 딱지를 본격적으로 붙이기 시작했다. 이배용은 그 딱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지난해 10월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7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2.10.17 연합뉴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7일 오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2.10.17 연합뉴스

“나는 뉴라이트 아니다” 부인

기자가 “박근혜 정부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했던 이력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 정파성 우려를 제기한다. 위원장의 해명을 듣고 싶다”고 질문하니 이배용은 “나는 뉴라이트 사학자가 아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2022.10.17)

그러나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보면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당시 검인정으로 나온 책들이 우편향이다, 좌편향이다, 친북 성향이다, 친일 미화다, 혼란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을 때 책임있는 균형잡힌 교과서가 나와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주도로 제작됐다. 학생들의 균형 잡힌 역사관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시대별 최고 전문가 교수들이 집필진으로 투입됐고 편집도 무난하게 구성됐다.” 이배용이 밝힌 ‘책임있는 균형잡힌 교과서’가 바로 ‘국정 교과서’다.

이 인터뷰 기사가 나온 17일 이배용은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국교위 국정감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느냐”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 당시에는 필요했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답변했다. 강 의원이 다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신념을 확실히 접은 것이냐”고 묻자 이배용은 “네”라고 답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철회한 답변이었다.

인터뷰에서 밝힌 앞뒤 안 맞는 얘기와, 국감장에서의 답변이 또다시 어긋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한국대학신문은 기사 출고 다음날인 18일 기사를 수정했다.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고 발행은 교육부 소관이긴 하나 저 개인으로서는 지금 시점에선 국정화 발행은 아니라고 본다”는 이배용의 ‘답변’을 추가한 것이다. 이배용 측의 수정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내 김활란 동상 앞에서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제막식’ 행사를 열고 있다. 2017.11.13 민족문제연구소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내 김활란 동상 앞에서 ‘김활란 친일행적 알림팻말 세우기 제막식’ 행사를 열고 있다. 2017.11.13 민족문제연구소

‘친일 교육자’ 김활란 미화…‘명성황후’ 아닌 ‘민비’ 호칭

이배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시절이던 2005년 발간한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이라는 책에서 이화여대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인 김활란(1899~1970)에 대해 “일제의 극심한 회유가 교차되는 가운데 끝까지 이화를 지키려던 그는 크나큰 시련과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겪게 되었다”고 썼다.

이배용은 김활란이 마치 일제에 항거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전혀 다르다. 김활란은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친일 활동에 나서 각종 단체를 결성하거나 발기인으로 참여, 일제의 조선인 동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강연과 글 등을 통해서도 ‘학도병’ ‘징용’ ‘위안부’ 등으로 나서도록 독려했다.

김활란은 이런 행적으로 2008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인물로 등재됐다.

다시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을 보자. 이 책에서 이배용은 또 ‘명성황후’를 ‘민비’로 호칭했다. ‘민비’는 일제가 명성황후를 비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부적절하며 강압적인 표현이다. 일제가 조선을 ‘이조’(李朝, 이씨조선), 조선의 임금을 ‘이왕’(李王)으로 호칭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뉴라이트 추천'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회가 이배용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선출한 것은 2013년 9월 13일이다. 추천한 사람은 이성무 이사(당시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제청한 사람은 손병두 이사(당시 박정희재단 이사장)였다. 이성무는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역사교과서를 만든 교과서포럼의 고문 출신이다.

교과서포럼은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기존 교과서가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2005년 1월 25일 창립한 학계의 뉴라이트 단체다.

창립 약 1개월 전 서울 연세대에서 있었던 준비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현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유석춘 전 연세대 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었다.

교과서포럼은 2008년 3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세상에 내놨다. 당시 편집자로 참여한 학자는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등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김영호는 통일부 장관, 김광동은 진실화해위원장(장관급) 자리에 앉아 있다. 교과서포럼 참여·후원 단체는 자유주의연대,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북한민주화 포럼 등이었다.

이배용은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부인한다. 교회에서 열심히 간증하더니 난데없이 나무아미타불 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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