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구술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발간
생존자·유가족 9개월간 인터뷰 담아내
"기억 공유할 때 희망 이야기할 수 있어"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어났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태원에 간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 해야 할 일을 안 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참사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말한 것처럼 '왜 갔느냐'가 아닌 '왜 못 돌아왔는지'를 말이에요."(고 김의현 씨 누나 김혜인 씨 인터뷰 중)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첫 구술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창비)가 25일 발간됐다.
이 책은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뜻으로 작가·변호사·활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약 9개월 동안 생존자와 유가족을 직접 만나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동안 드러나지 못한 이들의 애타는 마음과 트라우마, 참사 이후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물론 증언하는 이도, 기록하는 이도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록단으로 참여한 시민활동가 이현경 씨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몸이 힘들었다"면서 "왜 이럴까 생각했는데, 내가 운 좋게 살아남은 것 같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할까라는 막막함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진실'의 무게는 지난 1년간 아무런 진상도 규명되지 못한 채 국가에 의해 방치되면서 그만큼 더 무거워졌다. 구술집에 담긴 14편의 글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앞으로를 살아갈 공동체의 회복에 가치있는 기록물이지만, 이들이 용기를 내 말한 생생한 증언을, 국가가 부재했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참사를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눈물나고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파란색 옷을 입으셨던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분이 너무 괴로운 표정으로 "꺼내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러는 거예요. 살면서 그런 표정을 처음 봤는데 너무 놀라 상황 판단이 잘 안 됐어요. (…) 핸드폰을 켜 119에 신고하려는 순간, 완전히 깔렸어요. 제 뒤에 있던 몇명인지도 모를 사람들이 제 위로 한꺼번에 쓰러진 거예요. 한순간이었어요.(생존자 이주현 씨 인터뷰 중)
○…외국인 한분이 막 울면서 제 손을 잡고 정말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해주었어요. 그런데 손을 뻗는 사람이 저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몇십 몇백명이 손을 뻗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외국인이 네 손만 잡아줄 수가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손도 잡아줘야 한다면서 정말 미안하다고….(생존자 이주현 씨 인터뷰 중)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누구 하나 피드백해주는 사람도 없고, 경찰관도 소방관도 119구급대원도 전부 붙잡고 물어봤지만 다 모른대요. (…) 참다못해 한 경찰관에게 따지듯 물어보니까 신원 확인이 안 됐기 때문에 체육관에 들어갈 수 없다, 주민센터(한남동주민센터)로 가서 신고부터 하라고 하더라고요.(고 이주영 씨 오빠 이진우 씨 인터뷰 중)
○…그렇게 돌고 돌다 새벽 2시 반이 넘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동생을 찾았어요. 엄마가 왠지 서울대병원에 있을 것 같다고 해서 그리로 향했어요. 도착해서 병원에서 나오는 경찰한테 동생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를 대며 물어보니까 여기 있다는 거예요. (…) 두시간 후에야 저희가 동생을 찾은 거죠. 동생은 그때까지 계속 응급실에 있었어요. 그리고 영안실로, 장례식장으로….(고 김유나 씨의 언니 김유진 씨 인터뷰 중)
○…나중에 의현이 구급일지를 받아봤어요. 신원 미상, 이름도 없이 의현이를 '다-28'이라고 명명한 구급일지에는 의현이를 원효로다목적체육관에서 동국대병원으로 옮긴 구급대원들의 최초 접촉시간이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 새벽 6시 30분경, 그때 의현이 체온이 34.0도라고 적혀 있었어요. 체온이 34도가 되려면 세시간 전에 사망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구급일지상 의현이 사망 추정시각은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 전후'예요. 그치만 그전 참사가 발생한 시각일 뿐이지 실제 의현이가 사망한 시각이 아니잖아요. 다음 날 새벽 6시에 체온이 34도였으면 의현이가 30일 새벽까지는 살아 있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무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요.(고 김의현 씨 누나 김혜인 씨 인터뷰 중)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해되는 건 없어요. (…) 다들 병원에 좀 다녀오라고 할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누가 "누나분 되시죠? 이거 하나 서명만 해주세요"하는 거예요. (…) 문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를 못해서 사진을 찍어놓고 장례 다 치른 후에 봤어요. 장례지원금, 그거 때문에 그 와중에 서명을 하라 그런 거였더라고요.(고 양희준 씨의 누나 양진아 씨 인터뷰 중)
아울러 이 책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대다수인 20~30대 청년의 기록이기도 하다. 참사의 목격자이자 당사자인 청년들은 보수적인 정치 세력에 의해 이른바 'MZ 세대'로 묶여 부정적 편견에 재단됐고, 편견과 낙인은 이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한국 사회는 참사 자체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됐다.
기록단에 참여한 인권기록센터 사이의 유해정 활동가는 "이태원 참사는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심했다. 이들은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고, 현장에 대해 증언하고, 그날 수많은 사람들을 국가로 대신해 구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우리 사회에 등장하지 못했다"며 "우리 사회가 왜 20대, 30대들을 침묵하게 했는가, 이들이 왜 침묵하고 있는가를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 활동가는 또한 "(희생자의) 20~30대 형제자매들은 이 생애 주기 속에서 졸업, 취직, 결혼, 출산도 해야 하고, 자립도 해야 하고 수많은 사회 격변기를 거치게 된다"며 "이 안에서 또래 집단의 지지가 없다면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에 20~30대 형제자매와 목격자들 그리고 이태원을 자기의 삶의 공간이자 일터의 공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고 전했다.
책은 그렇기에 일상이 일상이기 힘든 '일상' 속에서 아픔을 감내하는 청년들의 시선으로 기록을 이어갔다. 재난으로 평범한 삶을 빼앗긴 또래 생존자와 유가족, 연인, 친구들 그리고 이태원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청년 주민과 노동자들은 먼저 떠난 이를 그리워하면서도, 책의 '여는 글'에 나온 문구처럼 "지난 1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법과 속도로 이태원 참사라는 사회적 재난을 겪어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전화벨이 울리더라고요. 아빠였어요. 아빠는 아침에 전화 잘 안하시거든요. 놀라서 전화를 받는데 아빠가 우느라 제대로 말씀을 못하시면서 저한테 빨리 삼성서울병원에 가보라고만 하셨어요. (…) 아직도 아침 8시 30분만 되면 심장이 떨려요. 엄마 아빠 인터뷰 기사 보니까 엄마도 아침 8시 30분마다 힘들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고 이지현 씨의 동생 이아현 씨 인터뷰 중)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요. (…) 아무런 관련 없는 드라마에서 심폐소생술 하는 장면만 나와도 너무 힘들고. 이태원 참사 관련된 건 안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 어렸을 때는 꿈이 컸는데, 지금은 그냥 보통의 삶을 살고 싶어요. 그냥 평범하게, 힘들지 않게. 사실 그 평범하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아니까요.(고 김의현 씨의 여자친구이자 생존자 김솔 씨 인터뷰 중)
○…요즘 저는 다시 취업을 준비해보려 하고 있어요. 조금씩 주변 사람들도 만나볼까 싶어요.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참사를 겪은 걸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은 돼요. 이태원 참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실 저도 움찔할 것 같아요. 주변에서 단순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쉽게 한다면 크게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직 두렵긴 하지만, 저도 이제 저로서 살아 가야겠죠.(고 박지혜 씨의 동생이자 생존자 박진성 씨 인터뷰 중)
○…저는 자격증 시험 보고 합격하고 이런 성취도 되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데 그 억울한 감정과 분노와 그리운 마음에만 사로잡혀 있다보니까 제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잡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려면 준비해야 할 미래가 있고 지금의 삶도 소중하게 보내야 되잖아요. (…) 계속 직면하고 있어요. 단지 지금 너무 힘드니까 어떻게든 버텨나가려고 노력하는 거에요.
○…지난 3주간 많은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원의 사망,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묻지마 칼부림 사건 등등…. 희상자는 대부분 청년이었고요. (…)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다 내 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남 일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내 일이라고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슬픈 소식은 덜 발생할 거라고 생각해요.(고 송영주 씨의 언니 송지은 씨 인터뷰 중)
○…사람들이 이태원을, 이태원 참사를 잊지 않고 타임캡슐처럼 마음에 잘 담아뒀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풀리지 않는 과제들이 많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떤 이 무력감을 잘 담아두고 할 수 있는 일을 앞으로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이태원 주민 윤보영 씨 인터뷰 중)
○…(유가족분들에게) 제가 뭔가 메시지를 전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여기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이태원 참사를 항상 기억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들 잊은 것 같아 보이지만 여전히 마음 아파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이 이태원에 어서 생겼으면 좋겠어요.(이태원 노동자 심나연 씨 인터뷰중)
이러한 청년들의 구술은 세대와 세대, 가족과 가족 간의 이해를 확장시키고 서로를 치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자 고 이주영 씨 아버지인 이정민 씨는 "참사 초기에 굉장히 슬픔에 빠진 우리 부모들은 슬픔의 감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형제들의 슬픔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어 서운한 마음도 많이 들었고 원망도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러면서 "나중에 알게 됐다. 이 아이들은 그 슬픔 자체를 감내하기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부모들의 슬픔에 더 보태주기 싫어서 참고 감내하고 있었다"며 "그러한 마음들을 이렇게 글로 나타낼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젊은이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 남은 이들에게 중요한 과제는 '기억'이다. 열심히 살았던 동생을 기억하고자 구술에 참여했다는 고 김의현 씨 누나 김혜인 씨는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억해야 한다"며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와 정부는 2022년 10월 29일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전했다.
구술집을 펴낸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은 "재난을 직시하는 일은 힘들고 괴롭지만 이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진실이 있다"면서, 기억의 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토닥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폐허와 절망에서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존엄하고 평온한 일상을 향한 열망을 품을 수 있다."
유가족과 기록단은 이날 오후 7시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 홀에서 북토크를 진행한다. 기록단도 전국 각지에서 청년, 시민들과 기억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구술집은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며, 책의 수익금 일부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공익적 활동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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