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업 운송 노동자들 대상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국제노동기구 '강제노동 폐지' 협약 위반, 위헌 소지도
尹 "명분 없는 요구 계속, 모든 방안 강구해 단호 대처"
노동계 "파국 선택" 총력 투쟁 예고…화물연대 삭발식
윤석열 정부가 파업 중인 화물 운송 노동자들에게 사상 처음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우선 시멘트 운송 분야 화물차주 2500여 명과 관련 운수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명분 없는 요구를 계속한다면 정부도 모든 방안을 강구해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공권력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노동계는 즉각 "계엄령", "파국으로 가는 결정"이라고 강력 반발하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친기업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하며 경사노위 위원장에 극우 인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앉히는 등 노동계 무시로 일관해온 윤 대통령이 '무관용 원칙'을 내세워 또 다시 힘의 논리로 밀어붙임에 따라 노·정 관계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과 9호선 신논현~중앙보훈병원 구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노조(30일)와 전국철도노조(다음달 2일)도 이번 주 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29일 오전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자 성명을 내고 "화물노동자에게 내려진 계엄령"이라고 규정했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은 태생부터 오로지 화물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고 탄압하기 위하여 도입됐다"며 "법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으로 2004년 도입 이후 단 한 번도 발동된 적 없는 사문화 된 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즉각 업무 복귀를 명령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시 화물노동자의 화물운송 종사자 자격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죽으라는 명령"이라며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업무개시명령은 1994년 1월 '의료법'과 '약사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다. 2000년 의료계가 의약분업에 반발해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갔을 때 발동됐고, 최근엔 2020년 역시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을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벌였을 때 다시 이 명령이 내려진 바 있다.
의료 관련이 아닌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이 조항이 신설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월이다. 전년도인 2003년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가 의료법과 약사법을 참고해 화물자동차법에 이 조항을 넣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 및 약사와 달리 화물 운수 종사자들에게까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다는 건 위헌 소지가 다분해 역대 정부에서 한 번도 실제 발동을 한 적이 없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인식돼 왔던 제도다.
노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은 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105호 '강제노동 폐지' 협약에 위반되거나 위반 소지가 높다. 이 협약에는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로서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105호 협약은 ILO 4가지 기본원칙 중 하나로 176개국이 비준하고 있다. OECD 36개 회원국 중 미비준 국가는 비준이 임박한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모든 ILO 회원국은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회원이라는 사실 자체로 기본협약의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할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화물연대는 "백 번 양보해 화물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 하더라도 업무개시명령은 헌법 제15조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직업선택의 자유에는 특정한 일을 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화물노동자가 개인사업자라면서 '파업'이 아닌 '운송 거부'라고 부르고 있다. 개인사업자가 자신의 영업을 중단하겠다는데 정부가 일하라고 강요하고 개입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하루 14시간 이상씩 운전하며 버는 돈은 많아야 월 300만 원이고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이다.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은 심혈관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함께 졸음운전을 야기한다. 달리는 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먼저 사망하고 사고가 난 화물 노동자들이 수백 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교통사고'라는 통계로 잡힌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또 귀족 노조' 프레임을 꺼내 들고, 업무개시명령과 별개로 정부가 직접 주체가 돼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화물연대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 거점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잇따라 지도부 삭발 투쟁에도 나섰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그릇된 노동관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파국을 가져온다"면서 명령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투쟁에 화물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 노동권이 달렸다"며 "비상체계를 가동해 화물연대와 조합원을 보호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투쟁하겠다"고 천명했다.
민주노총은 30일 긴급 임시중앙집행위를 연 뒤 투쟁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노총도 성명에서 "이번 화물노동자들 단체행동은 불가피했다"면서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속·과적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어 "정부에 (화물노동자) 노동자성을 인정하라고 촉구했을 땐 '개인사업자'라더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더 운송하지 못하겠다고 하니까 강제로 업무를 지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정부가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오전 "정부는 오늘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하게 물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는 "집단 운송 거부를 빨리 수습하고 현장에 복귀한다면 정부가 화물운송 사업자 및 운수 종사자의 어려운 점을 잘 살펴 풀어줄 수 있겠지만, 명분 없는 요구를 계속한다면 정부도 모든 방안을 강구해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무회의 직후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정당한 사유 없이 운송 업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운행정지 및 자격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물차운수사업법 14조에 따라 국토부 장관은 운송 사업자나 운수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으로 거부해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다. 이번 업무개시명령 대상자는 시멘트업 운수 종사자 2500여 명이고 관련 운수사는 201곳이다.
시멘트업을 업무개시명령 대상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원 장관은 "피해 규모, 파급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물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총파업 이후 시멘트 출고량이 평소보다 90∼95% 감소했고, 시멘트 운송 차질과 레미콘 생산 중단으로 전국 대부분 건설 현장에서 공사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