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운송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 속 생존권 지키기
가장 심각한 건 고속도로 위 상시적 죽음의 공포
피곤한 몸으로 더 많은 짐 싣고 더 빨리 달려야
최저임금 보장하는 ‘안전운임제’, 사고 위험 낮춰
시범 실시 기간 연장이 아니라 정식 도입 필요
화물노동자 42만 명 중 6%에만 적용…확대해야
10.29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바로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국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 집회 관리와 윤석열 대통령 경호에만 신경 쓴 윤희근 경찰청정, 참사 직후 농담이나 한 한덕수 총리, ‘마약과의 전쟁’에 매달린 한동훈 법무부장관 등이다.
동일한 인물들이 어제 목청 높여 한목소리를 냈고 합동 기자회견도 했는데, 그것은 소중한 생명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반성과 사과가 아니었다.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 폭력’이라고 비난하며 끝까지 추적해서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겁박하는 자리였다.
윤석열 정권은 화물연대 파업이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이기적 행동’이고 ‘민생 경제에 찬물을 끼얹고 성장 동력의 불씨를 꺼뜨리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확대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고 물가를 인상시켜 소비자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윤석열 정권은 화물연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과태료 부과, 경찰력 투입과 법적 처벌, 강제적 운송개시명령 발동 등의 위협을 꺼내들고 있다. 재벌 대기업들로 구성된 화주(화물주인)들은 파업 참가 노동자에 대한 계약 해지와 손배 가압류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지금 한국 경제의 위기와 고물가 등 민생 경제의 악화는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김진태(레고랜드)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는 황당한 자충수, 초부자 감세와 복지예산 삭감에만 매달리는 거꾸로 된 경제정책 탓이 핵심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이러한 고물가와 민생 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생존권을 지키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몸부림에 가깝다. 겨울이 오면 아랫목부터 추워지는데, 화물운송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도 하층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하루에 13시간씩,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고 고속도로 위에 살면서 간신히 월 250만~30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특수고용직으로서 노동3권과 4대보험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든 ‘계약 해지’ 될 수 있다는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언제든 고속도로 위에서 죽을 수 있다는 공포다. 많은 사람들이 고속도로에서 앞차나 뒤차로 화물트럭이 등장하면 괜시리 불안해지고,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안도감이 들 것이다.
그렇게 ‘도로 위의 흉기’라고 낙인이 찍힌 화물트럭 운수 노동자의 마음은 더하다. 언제든 사고가 나서 내가 죽거나 남을 죽이고 삶이 망가질 수 있다는 공포를 달고 산다. 고속도로에서 사망사고의 64%가 화물차로 일어나고, 1년에만 700명이 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곤한 몸으로 더 많은 짐을 싣고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릴수록 불안은 커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문재인 정부 때 가까스로 도입됐던 ‘안전운임제’이다. 안전운임제는 졸면서 더 많은 짐을 싣고 더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도록 최저임금을 보장해 줬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3년간 조금이나마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줄고 임금은 늘고 사고 위험은 낮아졌다. 하지만, 화주들과 국민의힘이 가로막고 문재인 정부가 타협하면서 안전운임제는 3년간 시범 실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했다.
이제 ‘친윤’ 족벌언론들은 말한다. ‘그래서 정부가 최근에 시범 실시를 3년간 연장해주지 않았냐. 그러니 명분 없는 떼쓰기다.’ 이것이 거짓인 이유는 3가지다.
첫째, 화물연대가 요구한 것은 시범 실시 기간 연장이 아니라 안전운임제 정식 도입이었다. 이 모든 것을 3년마다 반복하고 싶어 할 바보는 없다.
둘째, 국민의힘은 안전운임제의 껍데기만 남기고 알맹이를 빼는 개악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3년 연장해도 이 제도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셋째, 현재 안전운임제는 42만 화물노동자 중에 6%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나머지 94%에게도 확대하자는 것이 화물연대의 오랜 요구였다. 정부는 이것을 모르쇠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운임제를 정식 도입하고, 확대 적용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화물연대의 요구와 투쟁은 정당하다. 더구나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단지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화물연대의 20년 역사는 화물운송 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면 물류의 심장과 동맥을 움켜쥐면서 자본과 권력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역사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지난 6월 화물연대가 파업 8일만에 정부를 한발 물러서게 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힘 덕분이었다. ‘강성노조에 맞서서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던 윤 대통령은 당시의 후퇴를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당시 친윤 족벌언론들도 윤석열 정권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 그 후 반년간 윤석열은 자신의 가장 믿을만한 측근과 충성파들을 핵심 요직에 내리꽂으며 억압적 국가기구의 중심축인 법무무-행안부-검찰-경찰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공안 탄압 체제 마련에 힘을 쏟았다. 화물연대를 ‘북한’,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던 김문수는 장관급 경사노위 위원장 자리에 앉아있다.
여기에 너무 힘과 자원을 쏟다 보니 핼러윈 축제에 모인 청년들에 대한 안전 대책 등에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고, 그것이 낳은 엄청난 비극은 이상민 장관, 윤희근 청장 같은 중심 인물들에게 심각한 부담과 오점으로 남고 말았다. 하지만 어제 기자회견은 이들이 그런 죄책감에 얽매여서 자신들의 ‘원래 하고자 했던 일’들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줬다.
10.29 참사에 대해서 ‘나는 경찰 지휘 권한이 없다’던 이상민 장관이 이제 경찰을 지휘하며 화물연대 공격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월드컵으로 쏠려있는 지금이 10.29 참사를 덮어버리고 화물연대를 공격할 적기라고 볼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화물연대를 희생양 삼아서 짓밟으며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계산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결은 6개월 전과는 다를 것이고, 화물연대에게 결코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자본과 정권은 대체운송 수단과 계획들을 마련하고 있고, 전체 화물운송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화물연대 비조합원들이 파업에 동조하거나 동참하지 못하도록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던 운송개시명령도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은 트럼프를 흉내내며 어제 페이스북에 화물연대 공격 글을 올렸다.
승패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파업을 유지하면서 비조합원들의 동참을 끌어내고, 고물가와 민생경제 위기에 맞서는 저항의 희망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은 이어서 예고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 전국철도노조 파업에도 중요한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태원 골목에서 생명과 안전에 관심 없었던 세력에 맞서서 ‘고속도로 위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이기길 바라는 국민이 더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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