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러 관계 냉각에 막대한 어부지리

중국 브랜드, 시장 점유율 상위 10곳 중 7곳

현대차 점유율, 2021년 24% → 올 8월 2.6%

서방 제재후 급감 러 신차 판매량 원상회복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외무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회담하고 있다. 2023.09.19.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외무부 리셉션 하우스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회담하고 있다. 2023.09.19. 연합뉴스

현대차‧기아 등 외국 업체들이 빠진 러시아에서 중국차가 질주하고 있다.

시장분석기관 오토스탯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9월 신차 판매량은 작년 같은 달의 4만4398대보다 148.6% 폭증한 11만358대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4일 보도했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로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다수 외국 자동차 업체들이 러시아를 떠나면서 2022년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보다 무려 59% 줄었다. 투자와 장비, 부품에 대한 대외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자동차 산업은 서구의 제재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제재에 끼지 않은 중국 회사들이 그 공백을 메우면서 원상을 회복한 수준이다. 러시아 제조업체인 아브토바즈도 약진 중이다. 지난주 아브토바즈는 러시아에서의 승용차‧ LCV(경상용차) 올해 판매량 예상치를 87만5000대에서 100만 대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4일 중국 장쑤성 창저우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리 자동차의 작업 현장 모습. 2023.08.04. 신화 연합뉴스
지난 4일 중국 장쑤성 창저우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리 자동차의 작업 현장 모습. 2023.08.04. 신화 연합뉴스

러 시장서 중국 자동차 브랜드 질주 '독보적'

러시아 시장에서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질주는 독보적이다.

오토스탯에 따르면, 러시아 아브토바즈의 주력 모델 라다가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체리와 하발, 지리, 창안 등 무려 7개 중국 브랜드가 시장 점유율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이들 중국 업체는 러시아에서 철수한 서구 브랜드들을 대체하기 위해 들어왔으며, 르노와 닛산 등이 철수한 공장들의 자동차 조립시설을 활용해 러시아에서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지난 8월 러시아 신차 판매량을 봐도 추세는 비슷하다. 총 10만9731대 중 1위인 러시아 라다가 2만8721대로 1위에 올랐고, 뒤이어 △ 체리(1만3412대) △ 하발(1만979대) △ 지리(8383대) △ 창안(6869대) 등 중국 자동차 브랜드가 2위부터 7위까지 휩쓸었다.

시장 점유율을 보면 더 극적이다. 1위를 유지한 러시아 라다의 점유율은 전년의 37%에서 26%로 줄어든 반면, 중국의 경우 체리 4.5배, 하발 3.6배, 지리 3배, 창안 37배 폭증했다.

현대차‧기아의 상황은 처참하다. 현대차는 서구의 대러 제재에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작년 3월부터 부품 수급 등을 이유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으며, 신차 판매량과 점유율 동반 추락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러시아 완전 철수설마저 나오고 있다.

이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공개한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연도별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은 전쟁 직전인 2021년 37만3132대(24%)에서 2022년 12만906대(19.7%), 올 8월 기준 1만71대(2.6%)로 급전직하다. 현대차만 보면 지난 8월 한 달간 고작 6대를 팔았다. 현대차 러시아 법인은 작년 230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봤고, 올해 상반기만도 2270억 원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키이우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서로 팔을 마주잡고 있다. 2023.7.16. 대통령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키이우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서로 팔을 마주잡고 있다. 2023.7.16. 대통령실 연합뉴스

현대차 점유율, 2021년 24% → 올 8월 2.6%

이런 와중에 러시아 텔레그램 채널 '마시'는 4일 현대차와 기아가 연말까지 러시아 사업을 완전히 폐쇄할 예정이라면서 현대차·기아의 판매점들이 재고를 처리 중이며, 일부는 간판과 전시 차량을 중국 브랜드로 바꾸고 있다는 글을 게시했다.

앞서 러시아의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현대차 공장 매각과 관련해 "곧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간판 기업인 현대차‧기아가 러시아에서 공식으로 철수한다면 그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철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한국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해당 분야 중국 기업들이 그 공백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곧바로 대러 제재 동참했다. 작년 3월 러시아 은행 거래 중지와 57개 수출 통제 품목 고시에 이어, 지난 2월에는 741개 품목을 추가했다.

그에 따라 현대차는 자동차 생산 중단, 대한항공은 러시아 항공편 취소, 삼성은 모든 제품 수출 중단, LG전자는 신제품 수출 중단 등의 조치에 들어갔다. 이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 명단'에 올렸음은 물론이다.

물류회사를 운영 중인 권순건 모스크바 한인회장은 "대러 제재로 러시아로 들어오지 못하는 한국 상품이 늘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사이 중국 회사들이 이익을 얻고 있고, 한국 기업들이 어렵게 일군 판매망이 무너지고 있다"라고 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의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9.16.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시의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9.16. 연합뉴스

중국, 윤석열-푸틴 싸움 덕 막대한 '어부지리'

러시아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날개 없는 추락과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비상은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다. '자유의 전사'를 자처하며 굳이 '남의 나라 전쟁'에 뛰어들어 러시아 규탄과 제재, 분수 넘치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여념이 없는 윤 대통령이 자초한 면이 크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무기·탄약 지원 시 한·러 관계 파탄'이란 작년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경고에도 윤 정부가 지난 3월 우크라 지원 목적으로 155mm 포탄 50만 발을 미국에 대여하면서 한‧러 관계는 본격적으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4월 24일 우크라에 '조건부' 군사 지원 의사를 밝힌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지뢰 제거 장비와 긴급 후송 차량 등 비살상 군사 장비 지원, 2025년 이후까지 최소 25.5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의 재정 초특혜 지원 공약, 윤 대통령 부부의 7월 우크라 직접 방문과 "생즉사 사즉생" 공동 투쟁 발언 등으로 이어지면서 도는 극에 달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이 대응 카드로 윤 대통령에 보란 듯이 내놓은 카드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전격으로 개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북‧러 정상회담이었음은 물론이다. 아직 실체가 확인된 건 없지만, 큰 틀에서 러시아의 첨단 위성기술과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위험한 거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윤 정부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집권 이후 가치‧이념 외교를 내걸고 좌고우면 없이 반중, 반러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윤 정부가 얻은 건 막대한 경제적 피해와 악화일로의 안보 위기뿐이다. 윤 정부가 러시아와 싸우는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막대한 '어부지리'를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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