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작년 초 대미 관계 정상화란 30년 정책 포기"

헤커 "위성·로켓 기술 도움, 민간 부문서 시작 가능"

러, 민간 핵 원조 명분으로 북 경수로 지원할 수도

김정은 "기하급수적 핵무기 증대"…플루토늄 '절실'

"플루토늄 100~1000㎏ 넘기는데 기술 장애 없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23.09.13.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둘러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23.09.13. 연합뉴스

"지난 2년간 (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고 내 걱정이 크게 늘었다."

미국 최대 핵 연구시설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11년 간 소장을 지낸 세계적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S. 헤커 박사가 21일 조엘 위트 스팀슨 센터 수석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연구소의 초대 소장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관했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였다.

헤커 박사에 따르면, 북한은 2022년에 접어들면서 대미 관계 정상화란 30년 정책을 포기하고 러시아, 중국과의 전략적 연계 추구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러시아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과 전쟁 장기화를 패권국인 미국에 맞선 조국 수호 투쟁으로 묘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관이 극적으로 바뀌었고 '이제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러시아의 가능한 지원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은 △ 핵폭탄 연료 생산 △ 무기화 △ 지휘·통제 체제를 포함한 운반 체계 등으로 나뉜다. 이 세 부분 모두에서 러시아가 도울 수 있다는 얘기다.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러 협력, 핵연료·무기화·운반체계 전 분야서 가능

김정은 "기하급수적 핵무기 증대"…플루토늄 '절실'

첫째 핵폭탄 연료 부분이다. 원자폭탄(핵분열 폭탄)에는 그 연료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그리고 수소폭탄(핵융합 폭탄)에는 삼중수소(트리튬)가 각각 있어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야 한다면서 특히 핵분열 물질 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지만, 북한은 현재 이를 뒷받침할만한 능력이 안 된다는 게 헤커 박사의 진단이다.

본인이 2010년 11월 방문했던 영변의 소규모 5MW 원자로가 유일하며, 가동 이후 지난 37년간 대략 플루토늄 50㎏(핵폭탄 1개에 약 6㎏ 필요)을 생산했을 뿐이다. 연간 생산 능력도 고작 6㎏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력 생산용 원자로의 원형인 실험용 경수로(ELWR)가 있지만 아직 가동되지 않았다. 또한 영변에는 1960년대 소련의 지원으로 건설한 IRT-2000 연구용 원자로가 있으나 연료 부족으로 가끔 보조적으로만 가동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제78차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3. 09. 20 [UPI=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제78차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얻게 된다면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동맹, 우방국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3. 09. 20 [UPI=연합뉴스]

플루토늄, HEU보다 강력…두 가지 '확보' 시나리오

러, 당장은 '직접 제공'…장기론 경수로 가동 지원

북한의 플루토늄 대량 확보를 위한 러시아의 지원과 관련해 장·단기 두 가지를 제시했다.

헤커 박사는 "장기적으로 러시아는 북한에 평화적 전력 생산을 돕는다고 정당화하면서 실험용 경수로 가동을 도울 수 있으며, 추후 이를 플루토늄 생산용으로 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IRT-2000에 새 연료를 공급하면 소량의 플루토늄과 삼중수소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단기적으로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가 은밀하게 플루토늄을 (북한에) 직접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커 박사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의 핵분열 물질 저장시설에는 옛 소련 시절 생산해 보유 중인 플루토늄 약 12만5000㎏ 가운데 미국과의 플루토늄 처리 협상을 거치고 남은 3만5000㎏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헤커 박사는 "100㎏이나 심지어 1000㎏이라도 이 시설에서 북한으로 넘기는 데 어떤 기술적 장애물도 없다"며 "그러면 북한은 '기하급수적으로' 핵무기를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전승절(정전기념일) 70주년을 맞아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벌인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 지나가고 있다. 2023.7.27.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전승절(정전기념일) 70주년을 맞아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벌인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 지나가고 있다. 2023.7.27.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플루토늄 100~1000㎏ 넘기는 데 기술적 장애 없어"

비축량 풍부한 러, HEU와 삼중수소 제공 가능성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확보 상황은 플루토늄보단 낫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원심분리기 등 생산시설 은폐가 쉬워 그 위치와 규모, 확보한 HEU 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연간 HEU 생산 능력은 150㎏(핵폭탄 6개 분량)이며, 1200㎏ 정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러시아의 HEU 재고는 소련 시절 140만㎏을 생산해 그 중 비확산 협력 차원에서 미국에 전력 생산용 저농축우라늄(LEU) 형태로 바꿔 50만㎏을 판매했다. 헤커 박사는 여기서 수 천㎏을 북한에 제공해도 러시아의 재고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9월 수소폭탄 실험 주장을 감안하면 북한은 HEU보다 플루토늄을 더 필요로 한다. 플루토늄은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소형 핵탄두용으론 훨씬 더 강력한 핵연료이고, 핵탄두가 수소폭탄일 경우 특히 그렇다. 1차 플루토늄을 기폭제로 사용해 초고열, 초고압 환경을 만든 뒤 2차로 삼중수소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겪는다.

북한의 삼중수소 보유량도 보잘것없다고 한다. 수소폭탄 핵연료인 삼중수소도 플루토늄과 마찬가지로 원자로에서 만들어지는데, 현재 보유량은 수소폭탄 두어개 제조할 정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삼중수소 비축량도 엄청나 북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서해 위성 발사장에 새로 설치된 발사대에서 천리마-1 로켓이 위로 솟구치고 있다.  2023.05.31 조선중앙통신. [38노스 누리집]
서해 위성 발사장에 새로 설치된 발사대에서 천리마-1 로켓이 위로 솟구치고 있다.  2023.05.31 조선중앙통신. [38노스 누리집]

"북, 핵탄두 장착 ICBM 미국 본토 운반 능력 없어"

"러, 북한에 없는 대기권 재진입 실험 데이터 풍부"

둘째로 핵무기화 과정이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폭탄 설계와 제조 능력을 과시했지만, "러시아에서 배울 게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련 시절인 1940년대 말부터 715회 핵실험을 실시했고 1980년 중반에 보유 핵폭탄이 최대 4만1000개에 달했다.

북한은 핵탄두를 ICBM에 장착해 미국 본토까지 운반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헤커 박사는 "러시아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핵무기의 설계와 제조를 해봤다"며 "러시아가 몇몇 설계 정보와 핵실험 데이터 공유를 통해 북한이 그곳에 더 빨리 닿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소련 시절에 석유·가스 파쇄와 지하발굴 등의 평화적 목적에 활용하는 'PNEs'(평화적 핵폭발물) 실험을 29차례 시행했다. PNEs의 필요조건이 전술핵무기와 상당 정도 동일해 러시아의 관련 정보도 북한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운반 체계 부분이다. 올해 초 북한이 두 차례 고체 로켓 추진 ICBM 발사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미사일 기술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뤘지만, 관련 기술을 마스터하려면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바로 러시아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게 헤커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그동안 북한은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고각 발사했다면서 "북한은 그 미사일들의 실제적인 (대기권) 재진입 관련 실험 데이터가 전혀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풍부하다"고 말했다.

헤커 박사에 따르면, 우주에서 군사 정찰을 위한 로켓 및 위성 기술과 함께, 운반 체계의 다른 두 가지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및 중력탄이나 크루즈 미사일(공중 운반) 관련 기술들도 러시아가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분야로 거론했다.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 06. 30. 연합뉴스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9 06. 30. 연합뉴스

러, ;민간 핵 원조 명분으로 북 경수로 지원할 수도

헤커 "위성·로켓 기술 도움, 민간 부문서 시작 가능"

지금까지 언급한 북·러 간 핵무기 프로그램 협력 시나리오 중 '현실성'이 가장 큰 것은 러시아도 당사국인 핵비확산조약(NPT)을 우회해 민간 차원의 핵 원조란 명분으로 이중 용도의 기술 제공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헤커 박사는 "러시아가 북한의 실험용 경수로 완성과 IRT-2000 재가동을 도울 수 있다. 우라늄 측면에선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 연료라면서 몇 톤의 저농축우라늄(LEU)을 제공하고 북한은 그것을 손쉽게 무기급으로 농축을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위상 발사 서비스 등 우주 프로그램과 로켓 관련 도움은 민간 부문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헤커 박사는 "이런 모든 분야에서 러시아가 북한이 오직 민간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하도록 담보하고자 면밀하게 모니터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헤커 박사는 본인의 저작 '힌지 포인트'(Hinge Points·결정적 순간)에서 1994년 10월 영변 핵시설 동결과 경수로 2기 제공, 북한의 NPT 탈퇴 유보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을 골자로 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로 1차 북핵 위기가 해소됐으나, △ 2002년 10월 북한의 HEU 개발 의혹과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제네바 합의 파기 선언 △ 2003년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와 대북 체제 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골자로 한 6개국의 9·19 공동성명과 부시 행정부의 합의 훼손 △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 2019년 2월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등을 포함해 30여 년간 주로 미국의 잘못으로 북핵 문제 해결 기회를 놓친 결정적 순간들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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